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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최태원, 반도체 낙관의 이유

  • 2019.01.25(금) 09:19

"가격조정일뿐…하반기 회복 전망"
메모리 영향력 탄탄…속도조절도

"요즘 반도체 경기가 안좋다는데 어떻습니까?" (문재인 대통령)
"좋지는 않습니다만 이제 진짜 실력이 나오는 거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지난 15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청와대에서 열린 '기업인과의 대화'가 끝난 뒤 영빈관부터 녹지원까지 25분간 경내 산책을 하며 이 같은 대화를 나눴다.

함께 있던 최태원 SK 회장은 "삼성이 이런 소리하는 게 제일 무섭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고는 문 대통령에게 "반도체 시장이 안좋은 게 아니라 가격이 내려가서 생기는 현상으로 보면 된다. 반도체 수요는 계속 늘고 있다. 가격이 좋았던 시절이 이제 조정을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기업인과의 대화' 이후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최태원 회장 등 재계 총수들이 청와대 산책에 나섰다./사진=대한민국 청와대


반도체 경기 하강에 대한 우려가 심심찮게 흘러나오는 가운데 전세계 메모리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삼성과 SK 두 수장이 낙관론을 내놓은 배경을 두고 반도체 업계가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D램 가격(DDR4 8Gb 1Gx8 2133MHz 기준)이 한달새 10% 가량 급락한 것을 계기로 주식시장에선 비관론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지만 최고경영진의 발언에선 공통적으로 자신감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통령을 만나기 전 무슨 말을 할지 사전에 준비하고 근거를 확인하는 건 기본이다. 단순히 '립서비스'로 나온 얘기는 아니다"라고 귀띔했다.

청와대 산책 발언이 나오기 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전문경영인들도 삼성과 SK 총수들과 비슷한 맥락의 얘기를 꺼낸 바 있다.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은 이달 초 신년사에서 "우리가 마주한 상황을 '위기'라는 단어로 표현하지 않겠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올해도 메모리 반도체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며, SK하이닉스 또한 더욱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의 반도체 부진은 지난 2년간 반도체 호황을 촉발시킨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구글·애플·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들의 데이터센터(IDC) 투자가 지난해 3분기를 기점으로 주춤해진 영향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동안은 서버에 탑재하기 위해 비싸더라도 반도체를 미리 확보하려는 경향이 강했다면 지금은 IDC 수요가 어느정도 충족된 만큼 굳이 값을 높게 쳐주면서 반도체를 챙겨둘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반도체 제조사들에 재고가 쌓이면서 가격 하락세가 가파르게 나타났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는 올해 1분기 D램 가격이 서버용 제품을 중심으로 20% 가까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하지만 메모리 시장이 침체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치킨게임'을 불사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3사가 D램 시장을 안정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데다 상대적으로 경쟁강도가 심한 낸드 시장도 기술력 격차가 상당해 후발주자들의 추격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2년간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면서 반도체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것"이라며 "지금은 가격이 조정을 받는 것이지 위기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투자에 대한 속도조절에 나선 것도 소프트랜딩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한국의 반도체 장비 투자액이 지난해 185억달러에서 올해는 121억달러로 35% 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재고 증가에 대비해 메모리 수급조절에 들어갔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차진석 SK하이닉스 부사장은 24일 실적발표 후 컨퍼런스콜에서 "시장 흐름을 반영해 올해 장비 투자를 전년대비 40% 축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관심은 재고 조정폭이 얼마나 크게, 또 오래 지속될지에 모아진다. 현재로선 반도체 경기 하강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잠정실적을 발표하면서 별도의 자료를 내고 "올해 하반기부터 메모리 업황이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했고, SK하이닉스 역시 올해 하반기를 회복시점으로 꼽았다.

짐 펠드한 세미코리서치 대표는 "올해 반도체 시장은 4810억달러로 작년보다 1% 정도 감소하지만 내년에는 5035억달러로 3.3%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인공지능·빅데이터·사물인터넷 등 4차 산업혁명으로 반도체의 쓰임새가 늘어나는 추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에는 전문가들도 토를 달지 않는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낸 보고서에서 "단기적으로 기대감을 낮출 필요성이 생긴 건 사실이지만 인공지능 시대가 여기서 끝날 스토리는 절대 아니다"라면서 "데이터센터 관련 투자는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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