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에 대한 수출규제가 일본에도 부메랑이 돼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다. 당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의 간판기업들이 피해를 보겠지만 양국간 관계악화로 일본 기업들의 손실도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지난 15일 보고서를 내고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는 삼성전자, LG전자, SK하이닉스 등 메모리와 디스플레이업체에 피해를 줄 수 있다"면서도 "소재를 공급하고 메모리나 디스플레이를 구매하는 일본기업들도 피해를 입을 수 있어 수출규제가 장기화하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피치는 특히 "일본 수출업체들은 이 분쟁이 심화할 경우 잃을 것이 많다"고 분석했다.
한국 기업들이 일본을 대신할 다른 공급처를 찾게 되면 일본 기업이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의 수요감소로 일본의 장비 제조업체들이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거론했다. 결국 이번 조치가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 기술 생태계에 참여하는 다른 기업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한국 기업들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레지스트, 에칭가스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의 대체 공급처 확보에 속도를 내며 활로를 모색 중이다.
중국 상하이증권보 인터넷판은 16일 산둥성에 있는 화학사인 빈화(濱化)그룹이 한국의 일부 반도체 기업으로부터 에칭가스 주문을 받는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빈화그룹은 납품을 위해 여러번의 표본 검사와 실험을 진행한 뒤 한국의 반도체 기업과 정식으로 협력관계를 맺은 것으로 전해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삼성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삼성전자가 일본 이외의 회사에서 제조한 에칭가스를 테스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삼성전자가 다른 공급처의 에칭 가스로 현재의 품질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데 2~3개월이 걸릴 것"이라면서 "이러한 움직임은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일본의 소재 의존도를 줄이는 광범위한 노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또 "SK하이닉스가 에칭가스 공급업체를 일본 이외의 국가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앞서 러시아도 외교라인을 통해 한국에 에칭가스 공급 가능성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산 에칭가스의 품질을 알 수 없어 일본 제품을 대체할 수 있을지 미지수지만 일본의 빈틈을 메울 선택지가 차츰 늘어나는 분위기다.
주식시장 역시 극단적 우려로 치닫지는 않고 있다. 이날 현재 삼성전자 주가는 일본의 수출규제가 발표된 지난 1일에 견줘 1.2% 하락에 그쳤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는 6.6% 상승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단기적으로 메모리 공급과잉을 해소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주 DDR3 4기가비트 현물가격은 1.6달러로 한주간 12.7%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