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41) LG그룹 회장이 총수로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 실적부진의 책임을 물어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를 교체한데 이어 24일에는 취임 후 처음으로 계열사 최고경영진(CEO) 30여명을 한데 모아 사장단 워크숍을 열었다. 취임한지 1년 남짓한 40대 총수가 많게는 스무살 이상 연배가 많은 CEO들을 쥐락펴락하는 위치에 올랐다는 걸 의미한다.
이날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LG인화원에는 구 회장을 비롯해 권영수 ㈜LG 부회장,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등 LG그룹 CEO들이 총출동했다.
LG그룹은 매년 9월께 사장단 워크숍을 열고 경영전략을 논의했으나 지난해는 구본무 회장 별세와 구 회장의 승계작업 등이 맞물려 워크숍을 열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워크숍은 지난해 6월말 별도의 취임식 없이 회장직에 오른 구 회장이 계열사 CEO들과 단체로 만나 경영현안을 논의하는 첫번째 모임 성격이 짙다.
LG그룹 관계자는 "올해 초 신년행사 때 CEO들과 인사차 만난 것을 제외하면 (구 회장이) CEO들과 함께 회의를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워크숍 주제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으로 모아졌다. 사업전반에 걸쳐 사물 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을 결합해 혁신적인 변화를 꾀하자는 취지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 디지털 기반으로 기업의 전략, 조직, 프로세스, 비즈니스 모델 등 전반을 변화시키는 경영전략. 일반적으로 사물 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솔루션 등을 활용해 전통적인 운영방식과 서비스 등을 혁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일환으로 AI를 활용해 신약 후보군을 발굴하는 LG화학 생명과학본부와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상품·콘텐츠를 추천하는 LG유플러스 사례 등이 공유됐다.
구 회장은 이 자리에서 "앞으로 몇년이 우리의 생존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라며 "위기극복을 위해 근본적인 경쟁력을 빠르게 확보하고 사업방식과 체질을 철저하게 변화시켜 나가야겠다”고 말했다.
특히 "사장단이 몸소 주체가 돼 실행 속도를 한 차원 높여달라. 제대로 그리고 빠르게 실행하지 않는다면 미래가 없다는 각오로 변화를 가속화해 달라"고 당부했다.
LG그룹은 "최고 경영진들이 불확실한 경영환경을 단순히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사업모델, 사업방식 등 근본적인 혁신을 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고 밝혔다.
재계에선 LG그룹이 경쟁사와 소송을 불사하고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서는 등 '독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구광모 시대'의 변화와 무관치 않다고 해석하고 있다.
앞서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한데 이어 국내에선 형사 고소까지 했다. 최근에는 TV화질 논쟁을 하고 있는 LG전자가 삼성전자를 공정거래위원회에 허위과장 광고 혐의로 신고했다.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원만한 합의를 중시했던 과거와는 달라진 풍경이다.
내부적으로도 '인화'보다는 '책임과 성과'에 무게를 두는 흐름이 확연히 감지된다. LG전자는 평택 스마트폰 공장을 폐쇄했고, 대규모를 적자를 내고 있는 LG디스플레이는 희망퇴직에 돌입했다. 이와 함께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은 실적부진의 책임을 지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한 부회장은 1955년생으로 LG그룹에 37년간 몸담은 인물이다.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에 이어 계열사 대표이사 중 두번째로 나이가 많다. 중국 업체들의 액정표시장치(LCD) 물량공세로 LG디스플레이가 대규모 적자를 낸 게 퇴임의 직접적인 계기였지만, 이 과정에서 구 회장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재 LG그룹의 부회장단은 모두 1950년대생이다.
이 때문에 재계에선 올해 연말 부회장과 사장단 인사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구 회장이 그룹 전체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세대교체형 인사를 단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 회장 취임 첫 해인 지난해는 세대교체보다는 조직안정에 무게를 둬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을 제외하고는 LG그룹 부회장들이 모두 자리를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