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디스플레이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정호영(사진) 사장이 지난 14일 위기극복을 강조하는 내용의 이메일을 모든 직원들에게 보냈다. 집행임원으로 공식업무를 시작한지 약 한달만이다.
"안녕하십니까? 정호영입니다. 6년여만에 다시 인사드립니다"로 시작하는 이메일은 지난 10일 경기도 파주사업장에서 열린 LG디스플레이 분기모임에서 정 사장이 임직원들에게 당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정 사장은 실적부진의 책임을 지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한상범 부회장을 대신해 지난달 17일부터 LG디스플레이 수장을 맡고 있다. 희망퇴직 접수 등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회사경영을 책임진 그는 부임한지 보름여만에 임원과 담당조직을 25% 축소하는 악역을 수행했다.
최고경영자 부임 후 직원들과 첫 대면식 자리라고 할 수 있는 분기모임에서 정 사장은 "전례없는 상황" 등의 표현을 쓰며 위기감을 불어넣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같은날(10일) 삼성디스플레이가 충남 아산에서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퀀텀닷 디스플레이'에 13조1000억원을 투자하는 내용의 청사진을 발표할 때 정 사장은 LG디스플레이의 생존을 걱정했다.
LG디스플레이는 중국발 액정표시장치(LCD) 공급과잉으로 올해 상반기에만 5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LCD를 대신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사업을 재편하고 있지만 LCD 침체를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메일에서도 정 사장의 위기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과감하고 신속한 구조혁신 ▲대형 OLED 대세화 ▲중소형 OLED 정상화를 당면과제로 제시했다. 그러고는 "이러한 과제들을 속도감 있고 강도 높게 추진해나가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회사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에 있다"고 했다.
정 사장은 그 해법으로 '전략적 통찰력'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관습과 타성에 젖은 채 산업의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면 상당히 어려운 지경에 빠질 것이라는 경고다.
특히 경영진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리더들은 장기적 안목으로 전략적 대안들을 제로 베이스에서 검토하고 결심해 과감히 추진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직 전반의 '민첩함'과 '팀워크'도 당부했다. 경영환경에 대한 예측과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상황변화에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과 용기를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정 사장은 "우리는 전례 없는 위기상황에 있고 앞으로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면서 "리더들의 통찰력, 조직의 민첩함, 팀워크가 제대로 살아난다면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세계 1등 디스플레이 회사의 위상을 되찾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1984년 금성사에 입사한 정 사장은 LG전자·LG생활건강·LG화학 등 LG그룹 주요 계열사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지낸 재무통이다. 현재 LG그룹의 2인자로 불리는 권영수 ㈜LG 부회장과도 손발을 맞췄다. 정 사장은 권 부회장이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시절인 2008년부터 6년간 이 회사 CFO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