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 최대 IT 박람회 '컴퓨텍스 2025'가 지난 23일 나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막을 내렸습니다. 1981년 대만 컴퓨터 부품 전시회로 출발한 컴퓨텍스는 이제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서버·통신 등 첨단 기술이 총집결하는 아시아 최대 기술 전시회로 자리 잡았는데요.
올해 행사는 'AI 넥스트(AI Next)'를 주제로 지난 20일부터 타이베이 난강전람관에서 개최됐습니다. 전 세계 34개국 1400여개 기업이 참가, 차세대 AI 기술과 생태계를 선보였죠. 개막 첫날부터 참관객이 전시장에 몰리며 높은 관심을 입증했고 AI 인프라 공급망에서 대만이 차지하는 전략적 위상 또한 현장서 부각됐습니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개막 축사에서 "대만의 반도체·통신·AI 산업 체인은 매우 완전하게 구축돼 있다"며 "AI 세계에서 대만이 중심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고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역시 TSMC·폭스콘·에이수스·MSI 등 대만 대표 기업들과의 파트너십을 거듭 강조하며 'AI 인프라의 중심은 대만'이라는 메시지를 반복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한국 기업들은 대만 중심으로 짜여진 AI 인프라 서사에서 주인공으로 조명되진 않았지만, 기술력으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는 평가입니다.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심으로 한 풀라인업을 선보이며 글로벌 메모리 기술 리더십을 다시 한 번 입증했죠. 삼성전자는 디스플레이(삼성디스플레이) 계열 전시를 통해 AI 시대를 겨냥한 고화질 솔루션을 조용히 내세웠고, 데이터센터용 SSD 컨트롤러 전문 기업 파두 역시 협력사 부스를 기반으로 차세대 제품군을 공개하며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섰습니다.
일각에선 "이번 컴퓨텍스를 계기로 국내 기업들은 기술 중심의 단독 플레이를 넘어서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보다 조직적인 글로벌 연대와 민관 협력을 통해 AI 공급망 생태계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입니다.
SK하이닉스, 엔비디아 손잡고 AI 메모리 왕좌 공략
컴퓨텍스에 2년 연속 참가하는 SK하이닉스는 단독 부스를 마련했습니다. 국내 메모리 반도체 기업 중 유일한 독립 부스 참가사로, HBM을 비롯한 전 제품 라인업을 전면에 배치하며 글로벌 기술 리더십을 입증하는 무대로 활용했죠.

부스 중심에는 차세대 주력 제품인 HBM4(6세대)와 HBM3E(5세대)가 나란히 전시됐습니다. HBM3E는 12단 적층 구조로 최대 36GB 용량과 1.2TB급 대역폭을 구현하는 제품으로, 현재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독점 공급 중인데요. 이번 전시에선 엔비디아의 차세대 GPU '블랙웰 GB200'과 함께 배치되며, 양사 간 전략적 협력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주목 받았습니다.
또 HBM4는 16단 적층 구조 기반으로 최대 48GB 용량과 2TB 대역폭을 구현, 전력 효율도 전 세대 대비 38% 향상됐습니다. 고성능 AI 반도체와의 결합을 고려해 설계된 만큼 열처리 및 수율 안정성 면에서 개선이 이뤄졌다는 설명입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3월 미국에서 열린 'GTC 2025'에서 HBM4를 처음 공개된 이후 이번 컴퓨텍스에서 일반 관람객에게 실물로 처음 선보였습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SK하이닉스 부스를 직접 찾아 제품을 확인하며 "아름답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죠.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 역시 황 CEO의 기조연설에 참석해 양사 간 전략적 파트너십을 외교적으로 강조했는데요. SK하이닉스는 현재 HBM4를 주요 고객사에 샘플링 중이며 올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본격적인 생산 체계 구축에 돌입한 상태입니다.

HBM 외 다양한 AI용 메모리 솔루션도 공개했습니다. △모바일용 LPDDR5X(10.7Gbps) △저장장치 UFS 4.1(최대 1TB, 4500MB/s) △오버클럭 기반 DDR5(최대 10000MHz) △그래픽용 GDDR7(최대 24GB) 등 전 제품군이 망라됐죠. 고성능 SSD인 PCB01은 순차 읽기 1만4700MB/s, 쓰기 1만3400MB/s를 구현하며 AI 워크로드에 최적화된 성능을 강조했고요.
서버 부문에선 △DDR5 RDIMM △MRDIMM △SOCAMM을 비롯한 다양한 폼팩터와 함께 △PCIe Gen5 SSD 제품군(PE9010·PEB110·PS1010)도 소개됐습니다. 속도·용량·전력 효율을 모두 아우르는 'AI 메모리 풀라인업' 전략을 부각하기 위함으로 해석됩니다.
업계에선 이번 전시를 기점으로 SK하이닉스가 'HBM 원톱'을 넘어 '풀스택 AI 메모리 솔루션 기업'으로 외연 확장에 본격 나섰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고성능·저전력·고집적 메모리를 아우르는 전 라인업을 갖춘 세계 몇 안 되는 기업으로서 엔비디아를 포함한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력도 더욱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죠.
삼성디스플레이, 초경량·저전력 OLED 솔루션 공개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번 컴퓨텍스에 처음 참가해 차세대 초박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을 중심으로 고객사 대상 프라이빗 부스를 운영했습니다.
눈길을 끈 제품은 'UT One' 패널입니다. 기존 OLED의 양면 유리기판 구조에서 상부 유리를 제거하고, 유·무기 복합 박막을 적용해 무게와 두께를 각각 30% 이상 줄인 초경량 구조를 구현했죠.

여기에 1Hz에서 120Hz까지 가변 주사율을 지원하는 하이브리드 OLED 기술도 더해졌습니다. 디스플레이 사용 환경에 따라 주사율을 동적으로 전환할 수 있어, AI 노트북이나 초절전 모바일 디바이스에 최적화된 플랫폼이라는 호응을 얻었습니다.
회사 측은 "해당 기술을 통해 디스플레이 소비전력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며 "줄어든 무게만큼 배터리 용량을 증대하거나 휴대성을 높이는 등 제품 설계 자유도 또한 크게 향상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외에도 삼성디스플레이는 △QD-OLED 기반 5K 초고해상도 모니터 △자발광 기준 업계 최고인 500Hz 주사율 게이밍 디스플레이 △34형 와이드형 360Hz 패널 등 고화질·고주사율 제품군을 대거 공개했습니다.
특히 로봇 플랫폼 전문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양팔 이동형 로봇을 활용한 시연을 통해 삼성 OLED의 얇고 유연한 물성을 시각적으로 부각시키며 관람객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습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번 전시를 통해 OLED 기술을 단순한 스펙 경쟁이 아닌 실사용자 중심의 경험 혁신으로 끌어올리고 있다는 인상을 남겼습니다. 초박형 구조와 전력 효율을 앞세운 기술은 차세대 모바일 디바이스 시장에서 삼성디스플레이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는 평가죠.
이번 전략은 글로벌 OLED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됩니다. 대만을 포함한 아시아 주요 완성품 제조사들과의 공급 협력 확대를 염두에 두고, 설계 유연성 및 에너지 효율 등 차별화된 강점을 다층적으로 부각시켰다는 분석입니다.
파두, Gen6 중심 '풀라인업' 공개…AI 서버 공략 박차
데이터센터용 SSD 컨트롤러 전문기업 파두(FADU)는 이번 컴퓨텍스를 통해 글로벌 기술 경쟁력을 알리고 주요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전시장 인근 호텔에 별도로 마련한 쇼룸에서 주요 고객사와 비공개 기술 미팅을 진행, 협력사인 에이데이터(ADATA) 부스에서도 자사 제품을 함께 전시하며 현장 접점을 넓혔죠.

이번 행사는 단순한 제품 소개를 넘어, 글로벌 데이터센터 공급망의 핵심 지역인 '대만'을 기점으로 파두가 아시아 시장 확대에 본격 나서는 전략적 전환점이 됐습니다. 특히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 과제로 떠오른 '전력 효율 개선' 수요에 맞춰 파두가 보유한 기술력이 집중 조명됐죠.
대표 제품인 Gen6 SSD 컨트롤러는 기존 대비 성능과 전력 효율을 각각 2배 이상 개선한 차세대 기술로 AI 데이터센터 운영의 실질적인 전력 절감 해법으로 소개됐습니다. 행사기간 동안 파두는 PCIe Gen5 SSD 제품군과 함께 내년 출시 예정인 Gen6 컨트롤러의 구체적인 사양과 기술 로드맵도 공개하며 신규 고객사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어요.

아울러 글로벌 SSD 모듈 분야 2위 기업인 에이데이터는 이번 전시에서 파두와의 협력을 기반으로 신규 기업용 SSD 브랜드 '트러스타(TRUSTA)'를 현장서 공개, 양사 간 파트너십을 더욱 공고히 했는데요. 컴퓨텍스 현장에서 진행된 양사 경영진 간 회동에서는 협력 성과를 공유하고 향후 고성능 스토리지 분야 비즈니스 확대 방안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습니다.
파두는 이번 컴퓨텍스를 계기로 글로벌 IT 기업들과의 네트워크 확대에 속도를 내며 산업 흐름을 면밀히 분석, 다양한 협업 기회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신규 비즈니스 창출을,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고객 기반의 안정적 확보와 브랜드 인지도 제고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테크따라잡기]는 한 주간 산업계 뉴스 속에 숨어 있는 기술을 쉽게 풀어드리는 비즈워치 산업부의 주말 뉴스 코너입니다. 빠르게 변하는 기술, 빠르게 잡아 드리겠습니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