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이 시장 기대를 상회하는 성적표를 내놨다. 사업별 실적이 채 집계되지 않았음에도 갑작스럽게 일정을 잡아 미리 성적을 공개했다. 이 회사가 정식 실적발표에 앞서 예고 성격의 '잠정치'를 미리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다름 아닌 배터리(2차전지) 사업 분사를 앞뒀기 때문이다. 우수한 실적으로 주주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란 해석이다. LG화학은 이달 말 열 임시주주총회에서 전지사업부문 물적분할 안건을 주주들에게 승인받아야 한다. 하지만 회사가 선택한 분할 방식과 그 이후 주주들과의 소통 과정 등에서 작지 않은 반발을 사고 있다.
◇ 미리 선보인 '역대급' 실적
LG화학은 지난 3분기 매출 7조5073억원(이하 연결 재무제표 기준), 영업이익 9021억원의 실적이 잠정 집계됐다고 12일 밝혔다. 매출은 전 분기 6조9352억원 대비 8.2%, 전년동기 6조8989억원 대비 8.8% 늘었다. 영업이익은 직전 분기 5716억원보다 57.8%, 전년동기 3488억원에 비해서는 158.7%나 증가했다.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다. 특히 영업이익은 증권사 평균 추정치(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 집계) 7117억원을 26%가량이나 넘어섰다. 영업이익률은 12%로 2018년 2분기 10%를 찍은 이래 2년 만에 두 자릿수대 이익률을 회복했다.
LG화학은 이번 분기 실적을 예년보다 약 2주 빠르게 발표했다. 통상 이 회사는 분기 실적을 해당 분기를 마친 다음 달(3분기의 경우 10월) 하순께 내놓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잠정치로 '예고편'을 내보냈다. 국내에서 이렇게 잠정치와 세부실적을 순차적으로 공개하는 기업은 삼성전자와 LG전자뿐이었다.
LG화학 측은 "당사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주가 변동성이 확대됨에 따라 주주와 투자자들이 더욱 정확하게 실적을 예측하고 기업가치에 대해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현재 기준의 3분기 잠정 실적 공시했다"며 "연결기준 순이익과 사업본부별 실적은 이달 21일 예정된 실적설명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남는 석유화학이 '호실적' 주도
LG화학이 부문별 세부 실적을 밝히지 않았지만, 석유화학 부문이 실적 개선을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들은 LG화학의 전통적 주력사업이자 분할 후에도 기존법인에 남는 이 부문 영업이익이 7000억원대 안팎을 기록한 것으로 관측했다. 이는 지난해 3분기 거둔 3212억원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수치다.
제품 마진이 확대된 것으로 분석됐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유가가 뚝 떨어져 원가를 줄일 수 있었던 데다, 가전제품과 세정제 등에 쓰이는 화학제품 수요는 확대됐다. 일부 증권사들은 이 부문이 종전 분기 영업이익 최대치인 2011년 1분기(7360억원)를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
전지 부문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전 분기(1555억원)와 비슷한 1500억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것으로 업계에서 추정한다. 이 부문은 지난해 3분기의 경우 843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전자기기용 소형 전지와 자동차용 대형 전지 모두 좋은 성적표를 거둔 것으로 관측된다.
◇ '물적분할 불만' 주주 표심은?
LG화학이 3분기 실적 발표 시기를 앞당긴 것은 전지 부문 분할을 둘러싼 일부 기존주주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LG화학은 오는 12월1일 전지 부문을 물적분할해 신설 법인 'LG에너지솔루션(가칭)'을 설립하는 계획을 지난달 17일 밝힌 바 있다. 일부 주주들은 분할 후 종전 지분율대로 신설법인 주식도 갖게되는 '인적분할'을 택하지 않은 회사 측에 적잖이 불만을 토해내고 있다.
이 때문에 LG화학 주가도 크게 출렁였다. 종가 기준으로 분할 발표 전날인 지난달 16일 68만7000원이던 것이 분할 발표일인 6.1% 급락했고, 이후 같은달 24일에는 61만1000원까지 밀렸다. 최근에는 다시 발표 전 수준을 회복했다. 지분율 1% 미만 소액 주주들은 LG화확 보통주 전체의 54.3%(올해 6월 말 기준)을 쥐고 있다.
주주들의 불만은 물적 분할이 이뤄지면 차세대 성장동력 전지 부문을 간접적으로 소유하는 구조가 된다는 점과 LG에너지솔루션 기업공개 과정에서 지배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LG화학이 기존 결정대로 분할 절차를 순조롭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소액 주주들의 동의를 확보해야 한다.
오는 30일 임시주주총회에 다뤄질 전지사업 부문 분할 계획 안건은 '특별 결의요건'에 해당, '주주총회 참석 표의 3분의 2 이상 찬성, 전체 주식 수의 3분의 1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올해 6월 말 기준 최대 주주 ㈜LG(지분율 33.3%)를 비롯한 특수관계인의 LG화학 지분율은 33.4%다. 그 외 5% 이상 보유주주로는 9.96%를 가진 국민연금공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