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전 세계적으로 13차례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 '코나'에 대해 선제적 리콜에 나섰다. 하지만 사고 책임 소재를 두고 또 다른 '불씨'가 생겼다. 정부와 현대차는 코나 화재의 원인으로 '배터리 셀 제조 불량'이라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배터리 제조사인 LG화학이 "화재의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번 화재 사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 현대차와 LG화학은 적잖은 타격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내년 '전기차 전용 플랫폼' 출범을 앞둔 상황에서 '불 전기차'라는 낙인이 찍힐 우려가 생겼다. LG화학은 전 세계적으로 배터리 수요가 급증하는 시기에 '불량 배터리' 제조사라는 오점을 남길 수 있다.
◇ 화재 원인은?
이번에 현대차가 결정한 리콜 규모는 국내 2만5564대, 북미 1만1000대, 유럽 약 3만7000대 등 총 7만7000여대다. 화재 차량은 국내외 13대에 불과하지만 '화재 사태'가 더 번지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규모 리콜을 단행한 것이다. 현대차는 대상차량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을 업데이트한 후에도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배터리를 교체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아직 화재 원인이 확실히 밝혀진 것은 아니다. 가장 유력한 화재 원인은 리튬이온 배터리의 기본 단위인 '배터리 셀' 불량이다. 지난 8일 국토교통부는 "코나는 충전 완료 후 고전압 배터리의 배터리 셀 제조 불량으로 인한 내부 합선으로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코나 배터리 공정은 이렇다. LG화학이 '배터리 셀'을 제작해 HL그린파워(LG화학-현대모비스 합작사)에 공급하면, HL그린파워가 여러 '배터리 셀'을 묶은 '배터리 모듈'을 현대모비스에 납품한다. 현대모비스는 '배터리 모듈'에 현대차 자회사인 현대케피코가 만든 '배터리관리시스템'을 장착해 현대차에 최종적으로 '배터리 팩'을 납품한다. 국토부의 발표대로라면 이번 화재의 원인이 배터리 셀 제작사인 LG화학에 있다는 얘기인 셈이다.
하지만 국토부 산하기관인 자동차안전연구원의 결함 조사 결과가 여전히 진행 중인 만큼 아직 원인을 단정할 수 없다.
과거 코나 생산 과정에서 있었던 화재에서는 또 다른 원인이 제기된 적이 있다. 2018년 5월과 8월 현대차 울산 제1공장에서 생산 중인 코나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노조는 소식지를 통해 화재 원인을 "회사 측이 협력사 배터리팩 커넥터 불완전 삽입으로 인한 부동액 과다주입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배터리 열을 식히기 위한 부동액이 샌 것이 화재 원인일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 발표 직후 LG화학이 반발하고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LG화학은 "화재의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한 것"이라며 정부에 불편한 심정을 숨기지 않았다. 화재 책임 공방이 가열되는 분위기지만 분명한 것은 누군가의 기술적 결함이 있다는 점이다. 지난 8일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참석한 서보신 현대차 생산품질담당 사장은 '기술상 제작상 책임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인정한다"고 답했다.
◇ 왜 코나만 불났나…엇갈린 해석
현대차와 LG화학의 입장이 엇갈리면서 앞으로 화재 책임을 둔 신경전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내년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이 적용된 전기차 출시를 앞둔 현대차나, 올해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생산 1위 LG화학 모두에게 이번 화재 사태는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는 LG화학보다 현대차가 유리한 상황이다. 자동차안전연구원이 '코나 배터리 셀의 제조 공정상 품질 불량으로 인한 양(+)극판과 음(-)극판 사이의 분리막 손상'을 유력한 화재 원인으로 추정하면서다.
이 같은 결과는 현대차의 자체 점검 결과와도 일치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배터리가 타버리면 화재 원인을 찾기 쉽지 않은데 현대차가 최근 코나를 무상수리하는 과정에서 배터리의 분리막 손상을 찾아냈다"고 전했다.
반면 LG화학은 이번 정부 발표가 현대차의 입장만 반영된 조사 결과라며 억울해하고 있다. LG화학은 "현대차와의 공동 재연 실험에서도 화재로 이어지지 않아 분리막 손상으로 인한 배터리 셀 불량이 원인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현대차와 LG화학은 '유독 코나에서만 화재가 집중된다'는 점도 서로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있다. 현대차는 코나 배터리를 LG화학, SK이노베이션, 중국 배터리 제조사 CATL 등으로부터 공급받는데 화재가 발생한 차량은 모두 'LG 배터리'를 탑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입장에선 'LG 배터리'가 문제가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반면 코나와 똑같은 'LG 배터리'가 탑재된 현대차의 아이오닉엔 화재가 발생하지 않은 점은 LG화학의 주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일각에선 현대차가 코나의 배터리 '안전 마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않으면서 화재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안전마진은 배터리를 100% 사용하지 않고 안전을 위해 일정 부분을 남겨두는 것을 말한다. 다른 전기차 배터리의 안전마진은 8~12%가량 되지만 코나의 안전마진은 3%에 불과해 배터리에 과부하가 걸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하지만 현대차는 "배터리의 안전마진 사용범위 내에서 설계했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증권업계에선 이번 코나 리콜 비용을 1차적으로 1232억~2000억원대로 추산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리콜 차량 7만7000대 중 실제 배터리 셀(개당 800만원)이 교체되는 비중이 20%일 경우 총 리콜 비용은 1232억원이 들어갈 것"이라 추산했다. 현대차와 LG화학이 이를 일정 비율로 분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사종결 후 리콜이 배터리 팩(대당 2000만원) 전체 교환으로 확대되고 그 범위가 넓어질 경우 리콜 비용은 예상보다 크게 늘어날 수 있다. 양사의 긴장감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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