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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그룹, 제돈 한푼 안 들이고 아시아나 먹는다

  • 2020.11.16(월) 18:10

대한항공, 아시아나 인수…산은 한진칼에 8천억 투자
사실상 무자본 M&A…조 회장, 경영성과 미달시 해임
세계7위 FSC-동북아 최대 LCC 탄생…"정리해고 없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무산 조짐을 보이던 지난 9월께.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인 산업은행은 컨틴전시플랜(비상계획)을 가동했다. 삼성·현대차·LG·SK 등 5대 그룹과 제주항공을 운영하는 애경 등에 인수 의사를 타진한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최악의 경영난에 몰린 항공사에 관심을 보인 곳은 없었다.

유일하게 인수 의지를 보인 곳은 대한항공을 운영하는 한진그룹.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빅딜(Big Deal)'은 이렇게 시작됐다.

◇ 빅딜로 항공시장 재편 '한칼에'  

16일 온라인 간담회를 통해 최대현 산업은행 부행장이 밝힌 이번 빅딜의 '도입부'다. 산은은 아시아나항공의 조기 매각과 항공업의 구조조정이 절실했다. 규모의 경제 달성과 경영권 분쟁 해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한진그룹은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2개월여 만에 아시아나항공을 대한항공에 매각하는 빅딜이 발표됐다.

이날 이동걸 산은 회장은 "양대 국적항공사를 하나로 통합하는 국내 항공산업 재편의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말했다.

산은은 8000억원을 대기로 했다. 투자한 8000억원은 '한진칼→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으로 흘러 들어간다. 우선 산은이 대한항공의 지주사인 한진칼에 8000억원을 투자한다. 한진칼의 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취득하는 5000억원 규모 신주, 대한항공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3000억원 규모 교환사채(EB)다. 교환사채는 한진칼 투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도입됐다.

한진칼은 산은이 투자한 8000억원 중 7300억원을 내년 초 진행되는 대한항공 증자에 투입한다. 총 2조5000억원 규모의 증자로 중 한진칼 몫을 제외한 나머지 1조7700억원은 다른 대한항공 주주들에게 조달한다. 다른 주주들이 신주 인수를 포기할 경우를 대비해 실권주가 발생할 경우 시장에서 증권사가 총액인수토록 구조를 짰다.

대한항공은 증자대금 2조5000억원 중 1조5000억원을 아시아나항공 신주 인수에, 3000억원은 아시아나항공 영구채에 투입한다. 결국 산은이 투자한 7300억원과 시장에서 끌어모은 자금 1조7700억원을 더해 아시아나항공에 투입하는 것이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한진칼은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구조다. 

◇ 조 회장, 한진칼 지분 담보…경영 못하면 해임

이번 거래 구조는 산은과 한진칼이 서로의 가려운 곳을 긁어 줄 수 있는 '묘수'로 평가된다. 산은은 최소한의 정책자금으로 최대한의 구조조정 효과를 볼 수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양대 국적기 체제가 유지될 경우 내년말까지 4조8000억원의 정책자금이 투입될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는 게 산은 설명이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이 새주인을 찾지 못하면 출자전환, 추가 감자, 채무탕감 등으로 채권단의 막대한 손실이 예상됐다.

한진칼은 산은의 지원을 받아 아시아나항공을 사실상 '무자본'으로 인수하는 동시에 경영권 분쟁의 확실한 우군을 확보했다. 한진칼은 사모펀드 KCGI·반도개발·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등 3자 주주연합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데, 조원태 회장의 우호지분(41%대)이 3자 주주연합(46.71%)에 밀리는 상황이다. 산은이 3자 배정 방식으로 확보할 한진칼 지분은 10.6% 가량이다. 이렇게 되면 양쪽 모두 희석효과로 지분률이 낮아지지만, 조 회장 측은 산은이라는 우호세력이 생긴다.

묘수는 죽어가던 대마를 회생시킬 수 있지만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번 딜에서도 국책은행이 사기업의 경영권 분쟁에서 한쪽 편을 들어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갑질'과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받은 한진그룹 총수 일가에 특혜를 줬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산은은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한 듯 한진그룹 일가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우선 조원태 회장은 자신의 경영권을 내걸었다. 조 회장은 이번 거래에서 자신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 전량과 한진칼이 인수하는 대한항공 지분을 산은에 담보로 제공하기로 했다. 특히 대한항공에 설치되는 경영평가위원회가 매년 경영성과를 평가해 평가등급이 저조하면 조 회장을 해임시키기로 합의했다. 또 윤리경영위원회를 설치해 한진칼과 대한항공을 감독하고 직원 상습 폭행 혐의를 받고있는 조 회장의 모친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 등을 항공 계열사 경영에서 배제시키기로 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시장지배력, 큰 문제 없지 않을까 기대"

산업적 측면에선 이번 빅딜로 전세계 7위 수준의 초대형 대형항공사(FSC)와 함께 동북아 최대 저비용항공사(LCC)가 동시에 탄생하게 된다. 그간 국토교통부가 LCC 항공 면허권을 남발하며 출혈경쟁이 이뤄졌던 항공시장이 대형사 위주로 다시 재편되는 구조조정이 시작된 것이다.

지난 6월 기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자산은 각각 27조원, 13조원 가량으로 두 회사가 합치게 되면 총자산은 40조원에 이른다. 항공기는 대한항공 166대, 아시아나항공 81대 등으로 총 247대다. 아울러 대한항공의 LCC 진에어와 아시아나항공의 LCC 부산에어와 서울에어가 통합된다. 에어아시아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LCC가 나오는 것이다.

김상도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글로벌 항공산업은 항공사간 M&A를 통해 대형화하고 있다"며 "국내 항공산업도 거대자본 기반의 중동 항공사의 도전과 코로나19로 인한 동반부실을 감안하면 특단의 경쟁력 강화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통합작업에서 적지 않은 고통도 뒤따른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인력 구조조정에 대한 우려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관리직군에서 중복 인력은 800명 가량으로 추산된다. 이에 대해 최대현 산은 부행장은 "인위적 구조조정은 없다고 한진가의 확약을 받았다"고 전했다. 중복 노선 문제 해결에는 국토부가 적극적으로 나선다. 김상도 실장은 "미주 등 일부노선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시간대가 주 3일로 겹치는데 매일 운항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독과점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행정적 절차도 남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개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이거나 3개 이하 사업자의 점유율 합계가 75% 이상인 경우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하고 규제하고 있는데, 이 관문을 넘어야 한다. 다만 정부가 직접 추진하는 이번 항공산업 구조조정 방안에 공정위가 반대하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김상도 실장은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시도 때도 기업결합 심사가 진행됐다"며 "이런 사례가 있는 만큼 독과점 시장지배력에 큰 문제는 없지 않을까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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