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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워치]한국형 PPA, 한전 형이 거기서 왜 나와?

  • 2021.02.09(화) 09:00

RE100 실현 필수조건 PPA…한전 중개로 가닥
민간업계 등 반발…국회, 한전 패싱 법안 가시권
'한전' 없는 전기공급 가능할까?…'필수불가결'

산업계에서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만 100% 사용하는 'RE100'은 이제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애플이나 구글과 같은 초대형 기업들은 이미 RE100을 달성했다며 동참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SK그룹이 RE100 가입을 천명하고 나섰습니다. 

RE100은 단순히 환경보호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업의 생존이 달렸습니다. 말 그대로 RE100을 못 하면 밥줄이 끊길 상황입니다. RE100을 달성하려는 회사가 납품업체에도 RE100 가입을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8년 6월 삼성전자는 미국과 유럽, 중국 지역의 모든 사업장에서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있는 설비에 대해서는 약속을 하지 못했습니다. 

왜일까요. 현재 한국에도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는 있는 데도 말입니다. 이유는 신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만 골라서 받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전력공급 구조에 따라 한국전력이 모든 전기공급의 '도매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전은 발전방법에 따라 전기를 구분해서 팔지는 않습니다. 이 전기가 원자력 발전소에서 온 것인지, 석탄화력 발전소에서 온 것인지, 태양광 발전소에서 온 것인지 구별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사업장 안에 직접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설치하지 않는 이상 한국 내에서 RE100 참여 사업장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삼성이 멈칫하는 사이 지난해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 라이벌인 대만의 'TSMC'가 RE100 참여를 공식화했습니다. 삼성전자로서는 RE100이 적용된 반도체를 납품받으려는 업체들이 더 많아지기 전에 수를 내야 합니다. 하지만 혼자는 못합니다. 국가적인 제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 신재생 전기시장 '뷔페' 열린다

다행스럽게 정부도 이 문제의 해결에 나서고 있습니다. 정부는 올해 1월 초 열린 국무회의에서 한국형 RE100 제도의 일환으로 신재생에너지만 골라 공급받을 수 있는 전력구매계약(PPA·Power Purchase Agreement) 제도를 마련했습니다.

쉽게 말해 이제는 한전이 전기에 꼬리표를 붙이기로 한 겁니다. 1000kW를 초과하는 재생에너지 설비를 가진 발전사업자가 생산한 전기는 한전에서 별도로 팔 수 있게 됐습니다.

기존방식하고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다만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된 전기는 별도로 팔겠다는 겁니다. 대형마트로 비유해 보자면 채소코너에 유기농 제품을 파는 코너를 따로 둔 것과 비슷한 그림입니다.

발전소와 기업의 1:1 계약은 아니지만 한전이라는 제3자가 개입하는 방식으로 '한국형 PPA'가 마련되면서 이제 한국에서도 RE100 달성이 가능해졌습니다.

산업부와 한전은 고시 제정과 약관 개정 등 후속 절차를 거친 뒤 올해 상반기부터 제3자 PPA를 도입할 예정입니다.

PPA를 오매불망 기다리던 기업 입장에서는 숨통이 트이는 일입니다. 드디어 신재생에너지 전기를 골라서 받을 수 있게 되면서 국내 사업장에서도 RE100을 도입할 수 있게 된 겁니다. 하지만 환호소리는 생각보다 작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발전사업자와 소비자가 직접 계약을 맺는 외국과 달리 한국의 PPA는 소비자와 사업자 사이에 한국전력이 중개자로서 끼어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재화가 그렇듯이 전기도 중간 유통단계가 늘어나면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전기산업의 공룡인 한전에 휘둘려 시장참여자들이 비싼 값을 주고 전기를 사야 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우려가 민간 발전업계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선택은 현행법 에서는 어쩔 수 없는 방법입니다. 전기사업법에 따라 발전과 판매를 겸업할 수 없습니다. 한전이 직접 발전소를 운영하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한전이 파는 전기는 모두 한전이 전력거래소를 통해 발전소로부터 사 온 것입니다.

#국회 "한전 빼고 해보자" 산업부 "우려"

산업계의 불만을 들은 국회에서는 발전사업자와 전기소비자가 '직접 PPA'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만드는 중입니다. 지난해 7월 김성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전기사업법 개정안에는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에 대해서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전기의 '판매'도 허용하자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그리고 지난 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소위원장 이철규)를 열어 이 법안을 가결했습니다. 발의된 지 5개월여 만입니다. 이제 법사위와 국회 본회의 문턱만 넘으면 발효됩니다.

이 법이 통과되면 발전사업자가 직접 기업 등 소비자와 계약을 맺고 전기를 공급할 수 있게 됩니다. 기존에 전기는 모두 한전에서 사와야 했지만 이제 발전소가 직접 팝니다. 단, 송배전은 한전이 해야합니다. 송배전 사업은 한전이 독점하니까요.

예를 들자면 유기농 채소(신재생 전기)를 살 때 대형마트(한전)를 가지 않고 직접 산지(신재생 발전사업자)에서 배달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배달트럭은 대형마트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배달만 대형마트가 수수료를 받고 해줍니다.

신재생에너지에 많은 투자를 해온 지자체와 민간 발전업계, 환경단체 등이 이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입을 다물고 있는 한전의 발전자회사 입장에서도 사실 이 법안이 통과되는 것이 유리합니다. 직접 전기를 팔 수 있게 되니까요.

#'패싱'할 수 없는 한전의 '존재감'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한전의 역할은 독점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해당 법안을 검토했던 산업부는 몇 가지 문제를 꼽았습니다.

우선 신재생에너지의 공급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신재생에너지인 태양광은 밤에는 무용지물입니다. 기후의 영향을 받는 풍력이나 조력 등 다른 신재생에너지도 공급이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습니다. PPA 방식으로 태양광 발전소로부터 전기를 받더라도 결국 밤이 되면 한전의 전기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한전이 거래를 중개하지 않더라도 송·배전을 위해 한전에 PPA에 대한 공급 의무를 부과해야 합니다. 한전으로서는 불합리한 일입니다. 한전이 이를 감내하려면 보상이 필요합니다. 결국 또 돈입니다.

한전 입장에서는 수익성도 우려스럽습니다. 직접PPA 상황에서는 소비자가 발전소와 직접 계약을 하죠. 한전은 송배전에 따른 수수료만 가져가야합니다. 기존이라면 한전은 발전소(대부분 자회사)로부터 전기를 사 온 뒤 마진을 더 붙여 파는 '도매상'이었다면, PPA 상황에서는 전기를 가져다주고 수수료를 받는 '배송업체'가 된 셈입니다. 

RE100의 영향력이 커지고 PPA로 팔리는 전기가 많아질수록 직접 발전사업을 하지 못하는 한전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PPA 계약을 중개하면서 중개료를 올려야 합니다.

PPA는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로 제한했으니 괜찮을까요?

지금은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의 가격이 일반적인 전기보다 비쌉니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의 발전단가는 계속 내려가는 추세입니다. 언젠가는 신재생에너지 전기가 원전 등 일반적인 전기보다 싸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런 상황이 와야 합니다. 그때가 되면 PPA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겠죠.

실제 한전은 PPA 제도 도입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제3자 PPA로 결정하는 재생에너지 전기 공급가격은 산업용 전기요금보다 낮게 책정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만약 재생에너지 전기공급 가격이 산업용 전기요금보다 낮다면 차액을 보전받아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았습니다. 

#직접PPA, 한전이 발전사업 참여하는 명분될 듯

이렇게 보면 마치 한전이 자신들의 이익만 생각하고 RE100이라는 큰 그림을 외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한전의 입장이 억지는 아닙니다. 
한전은 전력사업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매우 큽니다. 한전은 송배전 사업을 독점 중입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전기의 대부분은 한전의 자회사가 만들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한전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전기관련 정책을 펼치는 것은 어려운 얘기입니다.

수익도 중요합니다. 한전은 지난해 코로나 때문에 유발된 저유가 덕분에 흑자를 기록하긴 했지만, 전에는 매년 조 단위의 적자를 기록하던 곳입니다. 국가의 기간산업이기 때문에 적자를 본다고 사업 규모를 줄이거나 자산을 팔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상장사이기도 합니다. 국민연금이 한전의 지분을 8% 이상 들고 있습니다. 수익을 내고 배당도 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한전은 현재 정부의 한국판 뉴딜의 핵심인 그린뉴딜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플레이어'입니다. 수많은 투자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수익성 보전도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한전을 PPA에서 제외하자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 한전은 매우 불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전도 비장의 카드가 있습니다. 한전이 직접 신재생에너지 발전에 나선다면 어떨까요. 직접 PPA를 허용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한전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허용해야 한다는 명분도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한전의 발전사업 참여 허용 여부도 심도있게 논의 중입니다.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지난 2월1일 기사 [에너지워치]그린뉴딜, 20년 전력 산업 구조 바꿀까를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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