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알츠하이머 신약'을 승인했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병의 진행을 늦춘 최초의 치료제로, 알츠하이머 신약 개발 역사를 새로 썼다고 보고있다. 반면 이번 FDA 승인에 의구심을 나타내는 시선도 많다. 임상시험에서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약을 승인했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이번 승인이 알츠하이머 치매의 원인으로 꼽히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가설 자체를 흔들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FDA 승인을 계기로 국내 치매 치료제 개발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관심이 집중되면서 외부 투자나 정부 지원이 늘고 있어서다. 다만 치매의 경우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데다, 임상 실패율이 높아 이른 시일 내에 국내 치매약 개발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18년 만에 탄생한 치매 치료제
FDA는 지난달 미국 제약사 바이오젠과 일본 에자이가 공동으로 개발한 알츠하이머 치료제 '애드유헬름(성분명 아두카누맙)'을 조건부 승인했다. 2003년 이후 18년 만에 FDA 승인을 받은 치매 치료제다. 증상을 완화하는 것에 불과했던 기존 치료제와 달리 '병의 진행을 늦추는 최초의 치료제'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FDA의 아두카누맙 승인이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 개발에 있어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국내 치매 환자 수는 2020년 기준 84만명, 국가 치매 관리 비용만 약 15조원에 달하지만 치료제는 전무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FDA 승인을 받은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는 도네페질, 리바스티그민, 갈란타민, 메만틴 등 총 4개 의약품에 불과하다. 이 약들은 모두 '증상 완화제'다.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는 신약 개발 실패율이 가장 높은 분야다. 임상 실패율이 99.6%에 달한다. 글로벌 제약사들도 치매 치료제 개발을 하다 중도 포기한 경우가 많다. 아두카누맙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다.
하지만 이번 FDA 승인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임상시험에서 아두카누맙 약의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바이오젠의 임상시험에서는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바이오젠은 2019년 알츠하이머 환자의 기억과 사고력을 개선하는 효과가 나오지 않아 임상 3상 2건을 중단한 바 있다.
그러다가 지난해 10월 고용량 투여군만 따로 분석한 결과, 상당한 효과가 나왔다며 임상 결과를 재수정했다. FDA 외부 전문가 자문위원회는 승인을 권고하지 않았다. 약의 유효성을 입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FDA는 자문위원회의 권고와 반대로 아두카누맙을 승인했다. 이에 반발한 FDA 산하 자문위원회 위원 3명이 최근 줄줄이 사임하기도 했다.
치매 원인 '아밀로이드 베타' 가설 흔들
논란의 중심에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있다. 알츠하이머 치매는 아직도 원인을 밝히지 못한 난치병이다. 신경세포 바깥에 단백질 찌꺼기인 아밀로이드 베타가 쌓이면 주위 세포의 순환을 방해해 알츠하이머 치매를 유발한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가설이다.
알츠하이머 환자가 사망한 뒤 부검한 결과 모두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존재했던 점이 이 가설의 근거다. 물론 지금은 양전자 단층촬영(PET) 기술을 통해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의 뇌에 있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생성과 치매 발병의 직접적인 인과 관계는 밝혀진 바 없다. 치매와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생성의 상관관계와 선후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이번 FDA 허가로 치매 원인을 규명하는 게 더욱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아두카누맙은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제거하는 약이다. 이번 임상 결과에서 아두카누맙은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효과적으로 제거했다. 하지만 환자의 알츠하이머 치매 증상은 22% 정도만 개선됐다. 나머지 78% 환자의 경우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제거했음에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FDA 승인이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가설 자체를 완전히 무너뜨렸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김경환 신촌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제거했음에도 약 80%의 환자의 치매 증상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은 약의 효과가 없다는 의미"라며 "오히려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제거해도 치매 증상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입증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한 치료제를 FDA가 승인하면서 아밀로이드 베타 가설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면서 "학계에서는 알츠하이머 치매 원인을 처음부터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그동안 아밀로이드 베타를 타깃으로 한 글로벌 제약사 릴리의 솔라네주맙, 로슈의 크레네주맙 등의 알츠하이머병 치료 후보물질의 임상연구는 모두 실패했다. 여기에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실제 치매와 연관이 없다는 연구 결과도 계속 나오고 있다. 김 교수는 "아밀로이드 베타 침착이 없는 알츠하이머 환자도 존재하고 아밀로이드 베타가 쌓여 있어도 알츠하이머 치매 증상을 보이지 않는 환자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FDA의 아두카누맙 승인이 성급했다고 평가한다. FDA가 유효성이 부족하다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첫 치료제'를 신속하게 내놓기 위해 승인했다는 분석이다. FDA의 아두카누맙 승인은 시판 후 약 효능 검증을 위해 후속 연구인 임상4상을 진행해야 하는 '조건부 허가'를 받았다. 환자에게 판매가 된 후에 효능을 입증하지 못하면 승인이 취소될 수 있다.
다수 K-치매 치료제 개발도 안갯속
업계에서는 이번 FDA 승인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에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보고있다. 첫 치매 치료제가 나온 만큼 국내 알츠하이머 치료 연구개발도 동반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기전으로 치매 치료제 연구를 해왔던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경우 병의 원인과 기전을 처음부터 다시 찾아야 한다는 우려도 있다.
현재 국내에서 치매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 기업들은 일동제약, 아리바이오, 메디포스트, 젬백스앤카엘 등이 있다. 일동제약은 지난 2019년 후보물질 'IDI201'로 국내 임상 3상 계획을 승인받았다. 아리바이오는 지난 3월 후보물질 'AR1001'을 미국에서 임상 2상 시험을 진행하고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메디포스트의 '뉴로스템'은 투약 환자의 뇌에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수치를 떨어뜨렸다. 하지만 인지행동 검사에서 통계적 유의성을 확인하지 못했다. 젬백스앤카엘도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후보물질 'GV1001'의 국내 임상3상 시험계획을 신청했다. 젬백스앤카엘의 경우 올해 초 식약처로부터 시험대상자 수 및 산정근거, 1차 유효성 평가변수에 대한 보완 자료가 부족을 이유로 임상시험계획이 반려됐다.
업계에서는 이번 FDA 승인을 기점으로 치매 치료제 개발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관심이 집중되는 만큼 외부 투자도 늘고 정부 지원도 확대하고 있어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치매 치료기술 연구를 위해 '치매극복연구개발사업단'을 발족했다. 치매 연구를 위해 지난해부터 9년 간 1987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다만, 아두카누맙 효능에 논란이 많은 만큼 치매 치료제를 개발 중인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불확실성도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일동제약, 메디포스트 등 다수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개발 중인 물질도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기전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밀로이드 베타가 알츠하이머 치매의 원인이 아니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아두카누맙의 임상 4상 실패시 국내 기업들의 임상도 난항을 겪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