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5년 만에 인사 제도를 대폭 개편한다. 연공서열을 타파해 젊고 유능한 인재가 경영진으로 빠르게 치고 올라갈 수 있도록 '삼성형 패스트트랙'(Fast-Track)을 구현하겠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최근 미국 출장을 다녀오면서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젊고 유능한 인재를 경영자로 조기에 육성함으로써 글로벌 경영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 혁신적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구상을 인사로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유능하다면 경영진까지 '패스트 트랙'
삼성전자는 글로벌 경영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중장기 지속성장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승격 △양성 △평가를 중심으로 내용을 변경한 '미래지향 인사제도' 혁신안을 29일 발표했다.
이번 혁신안에 따라 삼성은 부사장과 전무 직급을 부사장으로 전격 통합해 임원 직급 단계를 과감히 축소함과 동시에 '직급별 표준 체류기간'을 폐지할 계획이다. 그 대신 성과와 전문성을 다각도로 검증하기 위한 '승격 세션'을 도입한다.
이번 인사제도 혁신은 지난 2016년 직급 단순화를 골자로 하는 제도 개편 이후 5년 만이다. 2016년에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등 수직적 직급을 없애고 경력 개발 단계를 뜻하는 CL(Career Level)1~4 등 4단계 직급 체계를 도입한 바 있다.
각 직급에 일정 기간 머무른 뒤 평가를 거쳐 승진하는 구조를 없애는 것이어서 30대 인재가 임원으로 기존보다 빠르게 승진해 40~50대 직원을 거느리는 구조도 가능해지는 셈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인재를 중용해 젊은 경영진을 조기에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나타난다.
그만큼 빠른 변화가 절실하다는 위기의식이 드러난다는 평가다. 최근 미국 출장에서 현지 정·재계 인사들을 만난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24일 귀국한 자리에서 "현장의 처절한 목소리,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고 오게 되니까 마음이 무겁더라"고 말한 바 있다.
상대평가서 절대평가로…동료 평가도
삼성은 이번 개편을 통해 회사 인트라넷에 표기된 직급과 사번 정보도 삭제하고 매년 3월 진행되던 공식 승격자 발표도 폐지할 방침이다. 역시 연공서열을 타파하겠다는 취지다.
평가 방식은 기존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꾼다. 성과가 우수하다면 누구나 상위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만 고성과자에 대한 인정과 동기부여를 하는 차원에서 최상위자에 대한 평가는 유지한다. 최상위권 평가 비중은 기존과 마찬가지로 10% 이내로 운영할 방침이다.
또한 부서장 1명에 의해 이뤄지는 기존 평가 프로세스를 보완하고 임직원 간 협업을 장려하기 위해 '피어(Peer, 동료) 리뷰'를 시범 도입할 예정이다. 새로운 유형의 스트레스 가중 등 일반적인 동료 평가에 있는 부작용이 없도록 등급 부여 없이 협업 기여도를 서술형으로 작성하는 방식을 적용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부서원의 성과창출을 지원하고 업무를 통한 성장을 유도하기 위해 부서장과 업무 진행에 대해 상시 협의하는 '수시 피드백'을 도입하기로 했다.
인재육성 방식도 변화…미래지향 문화로
인력 양성 방식도 바꾼다. 다양한 경력개발 기회를 통해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특징이다. 우선 '사내 FA(Free-Agent) 제도'를 도입해 같은 부서에서 5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에게 다른 부서로 이동할 수 있는 자격을 공식 부여하기로 했다. 다양한 직무경험을 통한 역량향상의 기회를 제공하는 목적이다.
또 국내 및 해외법인의 젊은 우수인력을 선발해 일정 기간 상호 교환근무를 실시하는 'STEP(Samsung Talent Exchange Program) 제도'를 도입한다. 글로벌 리더 후보군을 양성하려는 의도가 담겼다.
고령화와 인구절벽 문제에 대한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하려는 제도도 마련한다. 육아휴직으로 인한 경력단절을 최소화하기 위해 '육아휴직 리보딩 프로그램'을 마련해 복직 연착륙을 지원할 예정이다. 우수 인력이 정년 이후에도 지속 근무할 수 있는 '시니어 트랙' 제도도 도입된다.
아울러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업무에 몰입할 수 있도록 주요 거점에 공유 오피스를 설치하고, 유연하고 창의적인 근무환경 구축을 위해 카페·도서관형 사내 자율근무존을 마련하는 '워크 프롬 애니웨어'(Work From Anywhere) 정책도 도입할 예정이다.
이밖에 상호 존중과 배려의 문화 확산을 위해 사내에서 공식적인 의사소통은 '상호 존댓말 사용'을 원칙으로 한다. 2016년에 직원 간 호칭을 '님' 또는 '프로'로 바꾼 것에서 더 나아간 것이다.
다만 삼성은 공채 제도는 앞으로도 유지할 방침이다. 청년들에게 공정한 기회와 희망을 주자는 이재용 부회장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이번 인사제도 혁신안은 내년부터 적용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혁신으로 임직원들이 업무에 더욱 자율적으로 몰입하고 회사와 함께 성장하는 미래지향적 조직문화가 구축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100년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임직원 의견을 지속적으로 수렴해 인사제도를 개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