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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빅딜, 깐깐한 EU '잣대' 넘을까

  • 2022.01.20(목) 17:21

에어캐나다·에어트랜샛 심사때 중복노선 지적
국내 '문턱' 걸린 대한항공·아시아나, 산 넘어 산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항공 빅딜'이 '난기류'에 휩싸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말 잠정적으로 조건부 승인 방침을 밝힌데 이어 유럽연합(EU) 등 해외 경쟁당국의 분위기도 기업결합에 대해 부정적 기류를 드러내고 있어서다. 한국조선해양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는 '조선 빅딜'이 EU에서 독과점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초되면서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에어캐나다-에어트랜샛, 빅딜 어쩌다 무산됐나

항공 빅딜에 대한 독과점 우려가 커지면서 업계는 2020년 4월 EU 집행위원회(EC·European Commission)가 에어캐나다의 에어트랜샛 인수 추진과 관련해 밝힌 정책 방침에 주목하고 있다. 핵심은 양사의 결합이 유럽-캐나다 항공 서비스의 경쟁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EC는 "양사는 유럽-캐나다 노선을 운영하는 선도적 항공사"라며 "이들의 결합이 시장 경쟁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항공권 가격 인상, 품질 저하, 선택권 감소로 이어질 수 있는지 평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EC에 따르면 에어캐나다와 에어트랜샛은 조사 당시 유럽-캐나다 정기 노선을 가진 항공사 가운데 1, 2위 업체다. 양사의 유럽-캐나다 노선은 총 29개였으며 벨기에, 크로아티아, 프랑스, 그리스, 아일랜드, 이탈리아,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등 10개국 직항 노선도 제공중이었다. EC는 이에 따라 에어캐나다-에어트랜샛의 결합이 33개 발착지(O&D)에서 경쟁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잣대를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에 적용보면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2019년 기준 국제선 노선을 보면 유럽지역은 네덜란드, 독일, 영국, 프랑스 등 10개국, 아시아나항공은 독일, 벨기에, 오스트리아 등 7개국으로 총 18개국이다. 국내 저비용항공사(LCC)는 유럽 노선이 전무하다.

유럽 도시별 노선을 보면 대한항공은 암스테르담(스키폴), 오슬로(가르데르모엔), 프랑크푸르트(암마인), 스톡홀름(알란다),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사라고사, 런던(히드로), 비엔나, 로마(피우미치노), 밀라노(말펜사), 프라하, 파리(샤를드골) 등 13곳이다.

아시아나항공은 프랑크푸르트(암마인), 브뤼셀, 바르셀로나, 런던(히드로), 런던(스탠스테드), 비엔나, 로마(피우미치노), 밀라노(말펜사), 베네치아(마르코폴로), 파리(샤를드골) 등 10곳이다. EC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건을 심사할 때 프랑크푸르트, 런던, 파리, 로마, 바르셀로나, 밀라노 등 일부 노선의 중복 문제를 제기 할 수 있는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경우 이번 심사에서 "양사(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결합한 후 LA, 뉴욕, 시애틀, 바르셀로나, 장자제, 프놈펜, 팔라우, 시드니, 나고야, 칭다오 등이 독점 노선이 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잣대를 그대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EC가 에어캐나다-에어트랜샛 건에 대해 직접적으로 불허를 통보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작년 4월 에어캐나다가 스스로 인수 추진을 철회하면서 딜이 무산됐다.

에어캐나다와 에어트랜샛은 결합 조건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노선을 문제 삼았다는 점에서 운수권 등이 논의됐을 가능성이 있다. EC는 에어캐나다가 제안한 경쟁제한성 완화 조치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업계에선 에어캐나다가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업황이 부진한 상황에서 경쟁제한성 완화 조치까지 하면, M&A의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했다. 에어캐나다는 자진 철회에 따른 위약금 1250만 캐나다달러(약 120억원)를 에어트랜샛에 주기로 했다. 인수를 추진하는 것보다 120억원을 내는 게 차라리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한항공, 어떻게 할까

일각에선 대한항공의 자진 철회 시나리오에 대한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19일 보고서에서 '항공 빅딜'이 무산되더라도 대한항공 신용도에 미치는 즉각적인 영향은 없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한신평은 "인수 무산 이벤트보다는 향후 자체적인 수익성과 재무 안정성의 변화에 따라 신용도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히려 "인수에 따른 재무 부담이 제거되면서 큰 폭으로 개선된 재무 안정성을 유지할 것"이라며 "2위 사업자가 불확실성에 노출된 상황에서 항공수요의 정상화의 수혜를 우선적으로 항유해 빠른 실적 개선세를 보일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반면 인수가 불발될 경우 아시아나항공 신용도의 하향 가능성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됐다.

대한항공은 자진 철회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회사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지속 추진한다는 게 일관된 입장"이라며 "국가별 상황에 맞게 현지 경쟁당국과 지속적으로 협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환경은 좋지 않다. 공정위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운수권(노선에 취항할 수 있는 권리)과 슬롯(시간당 항공기 이착륙 허용 횟수) 일부를 반납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인수를 승인할 방침이다. 대한항공은 오는 21일까지 공정위 심사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할 계획이지만, 공정위의 입장을 바꾸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내에서 조건부 승인이 나게되면 향후 EU의 결정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에어캐나다 건은 EC의 공식적 조치가 안 나갔는데도 회사가 자진 철회한 사안"이라며 "대한항공의 사례도 모든 가능성이 다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이어 "대한항공이 아직은 EC에 기업결합 신고를 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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