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면서 바이오 업계에 대한 투자 심리도 얼어붙었다. 전문가들은 이런 시기일수록 바이오 산업의 펀더멘털을 검토하고 나아갈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바이오 기업의 경쟁력을 파악하고 끌어올리는 대표적인 방법으론 기술이전(L/O)이 꼽힌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는 8일 '국내 바이오벤처의 기술이전 및 상용화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협회는 국내 바이오 기업의 L/O 성과를 분석하고 L/O 성과를 높이기 위한 전략 등을 제시했다.
국내 바이오 기업에 대한 투자 심리는 지난해 말 이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코스닥 바이오지수를 보면 지난 2020년 말 역대 최고치 1만4164포인트(P)를 기록했으나, 지난달 18일 기준 8627P로 고점보다 61%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바이오 기업의 가치를 판단하는 게 더욱 중요해졌다.
전문가들은 바이오 기업의 경쟁력을 파악하기 위해 원천기술 보유 여부, 연구개발(R&D) 역량, L/O 실적 등을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그중에서 L/O 실적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는 모습이다. 문세영 이에스인베스터 상무는 "특례상장기업에 대한 평가에서 기술성 평가는 전문가의 몫이지만, 시장성이 있는 기술인지에 대한 평가는 L/O 실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나는 편"이라며 "거래소의 기술성평가에서 ‘기술성’보다는 ‘입증된 시장성’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은 지 오래"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역대 최고 수준의 L/O 성과를 냈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바이오 업계의 L/O 건수는 총 33건이었다. 계약규모를 공개하지 않은 4 건을 제외한 총 계약규모(마일스톤 포함)는 13조3799억원에 달했다.
GC녹십자랩셀(현 지씨셀)은 지난해 1월 미국 법인 아티바 바이오테라퓨틱스를 통해 미국 머크(MSD)에 고형암 면역세포치료제 3종을 L/O했다. 2조900억원 규모의 L/O 계약이었다. 2월엔 제넥신이 KG바이오와 코로나19 치료제와 면역항암제로 개발 중인 'GX-17'을 약 1조2000억원 규모로 L/O했다. 레고켐바이오는 영국 익수다테라퓨틱스에 '항체-약물 복합체(ADC)' 치료제의 개발·상용화 권리를 넘기며 L/O 계약 규모를 총 9200억원까지 늘린 데 이어 체코 바이오 기업 소티오바이오텍과 1조2127억원 규모의 L/O 계약을 맺었다.
또 지난해엔 비상장 바이오텍의 L/O 성과가 특히 두드러졌다. 33건 중 7건의 L/O 계약이 비상장 바이오텍에서 나왔다. 올해 상장한 정밀 표적치료제 신약개발 전문기업 보로노이는 지난해 11월 미국 피라미드바이오사이언스와 1조원 규모의 L/O 계약을 체결했다. 에이프릴바이오도 덴마크 룬드벡에 자가면역질환 치료 후보물질을 약 약 5370억원에 L/O한 바 있다.
문 상무는 L/O 성공 전략으로 △개발하는 후보물질의 목표제품 특성(TPP) 파악 △협상 전 충분한 데이터 확보 △명확한 바이오마커 △오픈 이노베이션 등을 제시했다. 그는 "성공적인 L/O를 위해선 수요가 많은 분야와 개발 중인 목표 적응증의 1~3차 치료제의 구성, 미충족 의료 수요의 약물 유형 등을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타깃이나 약물의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술을 도입하는 업체의 입장에선 안전성 이슈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기술을 도입하는 건 모험적"이라면서 "초기 발견 및 비임상 단계에서 다양한 독성에 대한 사전 실험적 검증을 수행하고 데이터를 확보해 둘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L/O는 글로벌 신약을 만들기 위한 과정의 일부일 뿐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문 상무는 "기술이전 성과는 오랜 기간 정부의 지원, 모험자본의 적극적인 투자, 기술의 완성도를 높이며 계약을 이끈 산업계, 코로나19 기간 높아진 K-바이오의 위상이 만들어 낸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수준으로 대규모 후기 임상시험을 직접 수행할 만큼 기술력과 자본이 뒷받침되기까지 적절한 기술이전을 통해 경험과 매출을 달성해 역량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