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치엘비(HLB)의 항암 신약 '리보세라닙'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세계 3대 종양학회로 꼽히는 유럽암학회(ESMO 2022)에서 리보세라닙의 간암 임상3상 데이터가 공개되면서 미국 식품의약국(FDA) 품목허가 신청(NDA) 기대감이 높아진 건데요. HLB는 그동안 리보세라닙의 미국 진출을 여러 차례 언급해왔지만, 실제로 NDA를 완료한 적은 없어 투자자들에게 반복적인 실망감을 안겨줬었죠.
리보세라닙은 암 형성에 관여하는 신생 혈관 생성을 억제하는 원리의 2세대 표적항암제입니다. 중국 시장에선 이미 '아이탄'이라는 이름으로 상용화에 성공한 약물입니다. 중국 항서제약은 지난 2014년 현지 규제당국으로부터 위암 3차 치료제로 리보세라닙의 품목허가를 획득한 바 있고요. 2020년 12월엔 간세포암 2차 치료제로도 승인받아 시판 중입니다. 참고로 리보세라닙의 판권은 항서제약(중국), HLB생명과학(한국), 엘레바(한국·중국 제외 나머지 국가)가 나눠 갖고 있습니다.
HLB는 리보세라닙을 위암·간세포암·대장암·선양낭성암 등 여러 적응증으로 개발 중입니다. 이번에 ESMO에서 발표한 리보세라닙 데이터는 간세포암 1차 치료제의 임상3상 결과입니다. 간세포암 임상은 리보세라닙과 항서제약의 면역항암제 '캄렐리주맙'을 함께 투여하는 병용요법으로 진행됐습니다. 캄렐리주맙은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단백질 PD-1을 조절하는 면역관문억제제입니다.
간세포암 임상 데이터는 긍정적이었습니다. 리보세라닙과 캄렐리주맙 병용임상의 1차 유효성 평가지표는 △암 진행 여부와 상관없이 환자가 생존한 기간인 전체 생존기간(OS)과 △암이 일정 크기 이상으로 커지지 않고 생존한 기간인 무진행생존기간(PFS)이었습니다. HLB는 간암 1차 표준 치료제인 '소라페닙(제품명 넥사바)'를 대조군으로 설정, 효능을 비교했고요.
임상 결과 환자의 전체 생존기간 중앙값(mOS)은 22.1개월로 넥사바(15.2개월)보다 유의미하게 늘었습니다. 이는 간암 치료제 중 가장 긴 생존기간입니다. 무진행 생존기간 중앙값(mPFS)도 5.6개월로 대조군 대비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암의 크기 감소를 나타내는 객관적 반응률(ORR) 역시 25.4%를 기록해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했습니다.
간암 치료제는 신약에 대한 니즈가 큰 분야입니다. 간암은 전체 암 중 6번째로 많이 발병하는 질환입니다. 평균 생존율도 약 37.7%로, 폐암 다음으로 사망률이 높은 암종이고요. 반면 뚜렷한 치료 효과를 내는 치료제는 없는 상황입니다. 현재까지 FDA 승인을 받은 간세포암 1차 치료제는 바이엘의 넥사바, 에자이의 렌비마, 로슈의 티센트릭·아바스틴 병용요법 3개에 불과합니다. 그중에서도 병용요법은 미국 머크(MSD) 등 빅파마도 실패할 정도로 어렵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리보세라닙의 이번 데이터는 새로운 간암 치료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리보세라닙은 먹는(경구용) 항암제인데요. 경구용 항암제와 면역항암제의 병용요법으로 유효성을 입증한 최초의 연구이기도 합니다. HLB도 리보세라닙과 캄렐리주맙 병용요법의 경쟁력으로 환자 편의성과 가격을 내세우고 있죠. 티센트릭과 아바스틴이 모두 주사제인 것과 달리 경구제인 리보세라닙은 복용이 수월하고요. 연간 약가가 30만달러(약 4억원)에 달하는 티센트릭·아바스틴 병용요법보다 가격 경쟁력이 높다는 설명입니다.
이번 임상 데이터를 향한 우려의 시각도 많습니다. 우선 3등급 이상 부작용 발생률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발표에 따르면 리보세라닙과 캄렐리주맙을 병용 투여받은 환자의 80.5%에서 3~4등급 이상의 이상반응이 발생했습니다. 간암 치료에선 OS 개선 외에도 독성 관리가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또 임상 참여 환자의 인종이 다양하지 않다는 점도 걸림돌로 꼽힙니다. 임상 참여자의 70% 이상이 중국 환자였는데요. 인종이 다양하지 않으면 미국이나 유럽 등의 승인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다만 HLB 측은 "3~4등급 이상의 부작용 발생률이 80%가량으로 높아 보이지만 모두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면서 "실제 절반 수준이 고혈압으로 이는 고혈압 약으로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또 "인종 프로파일과 관련해선 임상 도중 아시아인의 비중이 높다는 FDA의 권고를 받은 뒤 이를 반영해 서양인의 비중을 충분히 높였고 환자 구성에 대한 FDA의 동의 하에 임상을 진행한 것"이라며 "지역별 환자 구성이나 발병 원인(HBV·HCV 등)에 상관없이 일관된 유의성을 확인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티센트릭·아바스틴 병용요법과 비교했을 때 유효성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티센트릭·아바스틴 병용요법도 과거 임상에서 넥사바를 대조군으로 설정했는데요. mPFS는 티센트릭·아바스틴 병용요법이 리보세라닙·캄렐리주맙 병용요법보다 길었습니다. 안정성 측면에서도 티센트릭·아바스틴 병용요법보다 우위를 보이지 못했고요. 경쟁 약물인 아스트라제네카(AZ)의 임핀지·트레멜리무맙 병용요법의 이상반응률도 25.8% 수준으로 리보세라닙·캄렐리주맙 병용요법보다 현저하게 낮습니다.
이번 임상 데이터는 분명 고무적입니다. 하지만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그 누구도 100% 성공을 확신할 수 없습니다. 품목허가를 받더라도 시장을 점유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고요. 실제 HLB는 리보세라닙의 위암 3차 치료제 임상에서 실패하며 곤혹을 치른 경험이 있습니다. 지난 2019년 위암 2차 이상 표준 치료에 실패한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3상에서 1차 목표치에 달성하지 못하며 주가가 급락했죠.
당시에도 HLB는 ESMO 결과를 바탕으로 자신감을 내비쳤지만, 이후 진척은 없는 상태고요. 회사 측은 "FDA 정책상 같은 약물을 다른 적응증으로 동시에 NDA를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전략적인 차원에서 선양낭성암 NDA를 준비 중"이라는 입장입니다. 선양낭성암은 1차 치료제인 데다 FDA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돼 위암 치료제보다 시장성이 훨씬 높다는 겁니다.
HLB는 지난달 리보세라닙을 간암 1차 치료제로 허가받기 위한 예비 신약 허가 신청(Pre-NDA)을 마쳤습니다. Pre-NDA는 NDA 전 FDA로부터 조언을 받는 자리입니다. 통상적인 일정대로 진행되면 Pre-NDA 회의는 오는 10월 중 이뤄집니다. NDA 절차가 본격화하면 투자심리가 얼어붙은 바이오 시장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 전망입니다. 반대로 기대가 컸던 만큼 허가에 차질이 생길 경우 침체된 바이오 업계는 더욱 암흑기에 빠질 수 있죠. 섣부른 기대보단 찬찬히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