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다시 한 번 '한일 경제 연대' 카드를 꺼내 들었다. 단순 협력이 아니라 유럽연합(EU) 수준의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구상이다. 그는 여기에 인공지능(AI) 반도체와 차세대 광(光)통신이라는 미래 산업 키워드를 겹쳐 내세우며 한일 양국이 세계 공급망 재편의 중심에 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지난 15일 일본 오사카·간사이 엑스포 참관 일정 중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를 가졌다. 이 자리서 최 회장은 "한국과 일본이 경제적으로 완전히 통합된다면 미국·EU·중국에 이어 세계 4위 경제권을 형성할 수 있다"며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도 의미 있지만 느슨한 연대가 아니라 EU 같은 완전한 경제 통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통상 질서 변화 속 목소리를 내고 표준을 만드는 주체(rule setter)가 되려면 양국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논리다.
최 회장은 일본 내 기류 변화도 짚었다. 그는 "최근 일본에서도 한일 경제 연대에 동의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며 "이제는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연대를 논의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경제 논리 차원을 넘어 미래 산업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연합'이 필요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AI·반도체·경제 통합" 최태원의 삼각축
이번 발언이 더 주목받는 이유는 '광통신용 반도체'라는 새로운 협력 의제를 처음 언급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일본 최대 통신사 NTT와의 논의를 공개하며 "아이온(IOWN·Innovative Optical & Wireless Network) 프로젝트에서 새로운 반도체 기술 개발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아이온은 NTT·SK텔레콤·소니·인텔 등이 참여하는 다국적 차세대 통신 네트워크 프로젝트다. 기존 전기 신호 대신 빛으로 데이터를 전송, 속도를 높이고 전력 소모를 줄이는 기술을 목표로 한다. SK하이닉스는 이 프로젝트에서 메모리 반도체 기술을 제공하며 핵심 축을 맡는다.
광통신 기술을 반도체에 접목할 수 있다면 미세화 한계에 가까워진 기존 반도체 산업 판도를 바꿀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 회장은 "AI 데이터센터 증설과 맞물려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AI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AI가 단순한 질의응답을 넘어 스스로 과업을 수행하는 '에이전트' 수준으로 진화하면 반도체 수요는 지금보다 훨씬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일본 반도체 업계와의 추가 협력 가능성도 언급했다. 도쿄일렉트론과 같은 장비업체,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 3위 기업인 키오시아 등이 거론됐다.
SK하이닉스는 이미 2018년 사모펀드를 통해 약 4조원을 투자, 키오시아 지분을 확보했으며 지난해 12월 상장 후 지분 가치는 5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과의 반도체 협력 범위가 장비부터 메모리까지 확대될 수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결국 최 회장이 제시한 큰 그림은 AI·반도체·경제 통합을 잇는 '삼각축'으로 분석된다. 그는 "울산에 기공한 SK AI 데이터센터는 아시아태평양 허브를 목표로 하는 소버린 AI 인프라의 핵심"이라며 "한일 양국이 함께 해외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달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 의장직을 맡은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최 회장은 "이번 행사가 한일 기업인들이 미래 협력을 논의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은 오는 25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투자 서밋'에도 참석한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의 유엔총회 방미 일정에 맞춰 마련된 행사다. 재계 안팎에선 "최 회장이 일본과의 경제·기술 협력 구상을 본격적으로 국제 무대에서 확산시키려는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 회장이 수년째 한일 경제 연대를 주장해왔지만 이번엔 구체적인 산업 협력, 특히 차세대 광통신용 반도체라는 키워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한국과 일본의 결합이 실제로 글로벌 표준과 시장 판도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