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을 시작으로 석유화학업계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본격적인 닻을 올렸지만 여수와 울산 지역의 경우 좀처럼 구조조정의 해법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대산에 비해 이해관계가 워낙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다.
정부가 구조조정 계획안 제출 시한을 올해 연말로 못박은 데다가 여수 및 울산 지역 구조조정이 원할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석화 구조조정이라는 큰 틀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문제의식은 공감대를 얻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관련 기업들이 빠르게 구조조정 계획을 내기 위해서는 지원 근거가 선행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속도못내는 여수·울산
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석화 구조조정 계획안이 추진중인 여수 산단과 울산 산단에서는 이르면 주중 구조조정 계획안이 제출될 예정이다. 여수 산단에서는 LG화학과 GS칼텍스가 NCC(나프타분해시설)통합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고 한화와 DL이 지분을 쥐고 있는 여천 NCC는 롯데케미칼과 함께 구조조정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점쳐진다. 울산 산단에서는 경우 에쓰오일, 대한유화, SK지오센트릭 등이 구조개편 방안을 고민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대산 지역에서 이뤄진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의 구조조정과 달리 이해관계가 더욱 복잡하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전언이다. 이들이 지역에서 산업을 영위하는 기업, 지역사회 등의 이해관계가 대산에 비해 더욱 첨예하면서 쉽사리 결론을 도출하기 쉽지 않다는 거다.
먼저 여수의 경우 LG화학과 GS칼텍스는 LG화학이 보유하고 있는 여수 NCC를 두고 대산과 비슷한 방식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것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각 회사의 핵심 사업 영역인 정유와 화학 산업의 수직계열화를 이뤄 더 높은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상징성도 더 높다는 평가다. NCC 감축 자체로 인한 단기적인 피해와 리스크 부담 여부를 두고 최종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다음 구조조정 계획안 제출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평가다.
문제는 여수의 롯데케미칼과 여천NCC다. 업계에서는 롯데케미칼이 여천NCC 통합을 논의하는 방향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천NCC가 한화솔루션와 DL케미칼이 각각 지분 50%씩을 들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롯데-한화-DL 간의 삼자협의가 이뤄져야 한다. 세 곳이 통합 논의를 해야 하는 만큼 이해관계가 더욱 복잡한데 여천NCC의 운영 방안을 두고 이미 한화와 DL 측이 엇박자를 낸 바 있다. 한화와 DL 측은 갈등의 골이 깊어진 상황에서 구조조정을 위해 들고 있는 카드를 내려놓지 않을 거라는 관측이다.
업계 관계자는 "여천NCC의 경우 한화와 DL로부터 자금을 수혈받아 한숨을 돌리긴 했지만 이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라며 "갈등의 골이 깊어진 원인은 결국 대주주가 가져가는 몫을 둘러싼 갈등이었는데, 이번 구조조정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울산 산단도 상황은 비슷하다. 대한유화-SK지오센트릭-에쓰오일 3곳의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조만간 가동 예정인 에쓰오일의 샤힌프로젝트가 관건이다. 에쓰오일이 9조원이 넘는 돈을 투자한 새로운 생산설비인 샤힌 프로젝트는 내년 중 가동되면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다시금 생산량이 늘어나게 된다. 이같은 상황에서 에쓰오일 측은 신규 설비 투자를 통해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샤힌의 생산 규모의 제한적 감축을 제시할 거란 얘기다. 반대로 말하면 나머지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대부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거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에쓰오일의 경우는 사실상 외국계 기업이기 때문에 신규 설비 생산량 감축을 통한 국내 산업 생태계 재편이라는 입장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며 "에쓰오일을 제외한 남은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대부분 책임지게 되면 반발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라고 전했다. 이어 "따라서 울산보다 여수 산단에서 생산량 감축 목표를 최대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 달성을 위해 더욱 필요하다는 평가도 있다"고 덧붙였다.
강경한 정부…결국 답은 '지원책'에 달렸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석화 구조조정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만큼 이달 중 구조조정 계획안이 순차적으로 발표될 거로 보고 있다.
앞서 발표된 대산 지역의 구조조정 방안이 실행되면 국내 석화 업계의 에틸렌 생산규모를 최대 110만톤가량 감축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는 정부의 목표치 370만톤의 3분의 1 수준이다. 다시 말해 여수와 울산 산단의 구조조정 계획안이 제대로 수립되지 않으면 구조조정의 큰 틀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거다.
이 때문에 정부 측에서도 여수 산단과 울산 산단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구조조정 계획안을 제출할 것을 주문하는 모습이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지난달 여수 산단을 방문해 "대산이 사업 재편의 포문을 열었고 여수는 사업 재편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라며 "(구조조정 계획안 제출)기한 연장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강조한 것이 이러한 분석에 힘을 보탠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방향성에 맞도록 구조조정 계획안은 수립하되 조만간 정부가 내놓을 구체적인 지원방안 근거 마련이 선행되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피해 최소화를 위해서는 정확한 지원책 규모를 가늠할 수 있어야 하다는 논리다.
이와 관련 정부에서는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기로 했다. 이 법에는 기업이 합병할 경우 발생하는 재정 및 금융 지원 등의 내용이 담긴다. 이같은 지원책이 구체화 해야 포기할 수 있는 수준을 개량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
앞선 관계자는 "구조조정이 본격화 되면 설비 효율화로 인해 각 기업들의 수익성이 순차적으로 개선되는 효과는 있겠지만, 이 수익성 개선을 위해서는 포기해야 하는 설비에 따른 비용, 추가 금융 비용 등이 무엇보다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법 개정 내용이 확실해지면 구조조정 방안 계획 발표도 속도를 낼 것"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