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분쟁 중인 고려아연과 영풍이 금융당국으로부터 사실상 회계 처리를 성실히 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아들게 됐다. 결과 확정까지는 추후 절차가 남아있지만 고려아연과 영풍 모두에 적지 않은 타격이 될 것이란 평가다.
특히 업계에서는 이번 결과가 어떻게 확정되느냐에 따라 고려아연 경영권의 향방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과 MBK-영풍 측의 지분 격차가 크지 않은 가운데 소수주주나 외국인 주주들이 이를 판단의 중요 근거로 삼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지난 10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11차 회의를 열고 영풍과 고려아연에 대해 감사인지정 등의 조치를 의결했다. 고려아연과 영풍이 모두 회계처리기준을 위반했다고 평가한 것이다.
최윤범 주도 투자결과 축소했다는 고려아연
증선위는 먼저 고려아연이 투자자산의 평가손실과 손상차손을 과소계상했다고 봤다. 투자자산의 공정가치와 회수가능액이 감소했음에도 평가손실을 더 적게 회계장부에 반영했다는 거다.
업계에서는 이를 고려아연의 원아시아파트너스 투자 부분으로 보고 있다. 고려아연은 원아시아파트너스가 운용하는 펀드에 약 8개에 6041억원을 출자했는데 이 중 일부 자산은 2021년 전후로 취득가 대비 80~90% 수준의 가치가 하락했다.
증선위는 이같은 가치하락 손실을 고려아연이 제때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증선위는 고려아연이 연결재무제표 상 2022년에는 212억원, 2023년에는 1393억원을, 별도재무제표 상 2023년에는 1162억원을 덜 반영했다고 봤다.
또 종속회사에 대한 영업권 가치가 하락했음에도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게 증선위의 판단이다. 업계에서는 이 종속회사를 미국의 전자폐기물 재활용업체 이그니오홀딩스로 보고 있다.
고려아연은 지난 2022년 이그니오홀딩스를 5800억원가량을 들여 인수했다. 이그니오홀딩스는 고려아연에 편입된 이후 2023년과 2024년 연이어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 여의치 않은 상황이 이어졌다.
고려아연은 이그니오홀딩스 인수 이후 관련 영업권 등에 대해 손상을 충분히 인식하지 않았고, 증선위는 이 과정에서 해외 종속회사의 회수가능액 감소가 재무제표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봤다. 증선위가 판단한 해외 종속회사 관련 영업권 손상차손 과소계상액은 연결 기준 2022년 1636억원, 2023년 1665억원, 2024년 1898억원이다.
증선위는 고려아연에 과징금, 감사인지정 3년, 담당임원 해임(면직) 권고 및 직무정지 6월, 시정요구 등의 조치를 예고했다. 향후 금융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될 예정이지만 업계에서는 '중징계'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건 두 항목에 대한 투자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주도로 이뤄진 것으로 비춰진다는 점이다. 원아시아파트너스 투자의 경우 최윤범 회장 개인이 먼저 사재를 투입한 후 회사인 고려아연이 후속 투자에 나서면서 최 회장 개인의 선행 투자를 회사 차원에서 지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다. 이그니오홀딩스의 경우는 최윤범 회장이 주도해 투자했다.
최윤범 회장의 투자 결정이 좋지 않은 성과를 냈고 고려아연이 회계처리 적정성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대외 신뢰도 하락이 불가피할 거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영풍, 또 석포제련소
영풍은 '아픈 손가락'인 석포제련소가 다시금 문제가 됐다. 증선위는 석포제련소 주변지역, 주변임야, 제련소 하부, 지하수정화 등을 위해 영풍이 쌓고 있는 충당부채를 축소해 평가했다고 판단했다. 증선위가 판단한 축소 규모는 2024년 기준 2331억원이다.
증선위는 이에 대해 과징금, 감사인지정 3년, 해임권고 상당, 담당임원 해임(면직) 권고 및 직무정지, 시정요구 등의 중징계를 조치했다. 아울러 이와 같은 상황을 야기한 회계법인과 회계사들에게도 강도 높은 징계를 예고했다.
석포제련소는 지난 2014년 환경 문제가 제기된 이후 영풍의 속을 썩이고 있다. 수천억원에 달하는 충당금에 더해 지난해에는 조업정지라는 최악의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했다. 작년 연결 기준 영풍 매출은 2조9090억원으로 전년 대비 4.3% 늘었지만 영업손실은 2597억원을 기록하며 3년째 적자가 이어졌다.
이같은 상황에서 증선위 판단이 유지된다면 영풍은 문제가 제기된 회계연도의 재무제표를 손봐야 한다. 이를 모두 부채로 잡는다고 전제하면 영풍의 부채총계는 늘고 이익잉여금 삭감으로 자본총계는 줄어 부채비율이 증가할 것으로 관측된다.
세금 효과를 제외하고 2024년 기준 과소계상액 2331억원이 2025년 말 재무제표에도 전액 추가 반영된다고 단순 가정하면 영풍의 부채총계는 1조9858억원에서 2조2189억원으로 약 11.7% 증가한다. 같은 금액만큼 자본이 감소하면 부채비율은 49.4%에서 58.6%로 9.2%포인트 높아진다.
이를 지난해 재무제표에 단순 계산해 대입하면 부채는 약 11.7% 늘어난 2조2189억원, 부채비율은 49.4%에서 58.6%로 9.2%포인트가량 늘어난다.
제조업 특성 등을 고려하면 영풍의 재무건전성이 대폭 악화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영풍의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게 문제다. 본업 수익성이 악화 국면인 가운데 '청구서' 성격이 강한 환경부담 충당금이 늘어난다는 건 뼈아플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자본 여력 및 재무건전성이 훼손되면서 신용평가 등에 대한 부담도 커진다.
영풍 측은 이에 대해 "해당 조치에 이의가 있어 집행정지 신청 및 행정소송 제기를 포함한 법적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공시했다.
고려아연도, MBK-영풍도 '타격' 불가피
업계에서는 이번 증선위 판단이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MBK-영풍 모두에게 타격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려아연의 경우 최윤범 회장 주도로 이뤄졌던 판단들의 사후처리에 대해 오류가 있었다고 증선위가 선언했다는 점이 문제다. 고려아연 측은 해당 내용이 최신 재무제표에 제대로 평가가 됐다고 설명했지만 최윤범 회장 주도의 투자 실패 축소 의혹은 더욱 커진 점은 변하지 않아서다.
가뜩이나 최근 MBK-영풍 측이 고려아연 감사위원회에 원아시아파트너스 펀드 투자에 대한 엄정한 내부 조사를 요구하는 등 고려아연을 흔드는 강도가 세지고 있어 이번 증선위의 판단은 최 회장 측에게 치명적이라는 게 중론이다.
MBK-영풍도 이번 증선위의 결과가 뼈아프긴 매한가지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MBK-영풍의 고려아연 경영권 입성 반대 명분으로 영풍의 실적에 기반한 제련업 경영 자질 부족을 내세워 온 만큼 대규모 충당부채 추가적립으로 영풍의 재무상황이 악화한다면 이같은 주장이 더욱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징계 수위를 차치하고 고려아연과 영풍 모두에 회계 처리 위반이 있었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의미가 크다"라며 "최 회장 측과 MBK-영풍 측 보유 지분 격차가 크지 않은 가운데 소액주주와 외국인 주주들의 외면할 가능성을 키웠기 때문에 각 진영이 이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