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코스피가 2000선 아래까지 밀렸다. 22개월여 만의 일이다. 잠시 반등을 시도하고 있지만 증시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조정의 파고 속에서 유독 낙폭이 더 큰 대한민국 투자자들은 더욱 불안하기만 하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무역전쟁 파고 속에 갇힌 내년 글로벌 증시 시계도 그리 밝지 않다. 현시점에서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현명할까. 오랜 시간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을 만나 현 시장에 대한 진단과 내년 전망을 들어봤다.[편집자]
▲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하지만 왜 10월 들어, 한국 시장만 유독 떨어졌을까. 최 센터장은 이머징 시장의 대표격인 한국이 미·중간 무역분쟁 격화에 따른 영향이 클 수 있다는 우려를 들었다. 최근 부각되고 있는 패시브 펀드의 파급력이 확대된 상황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한국물 매도를 심화시켰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정부의 큰 정책 틀이 반시장적인 점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최 센터장은 사실상 현재로서는 시기상 주식을 매수할 만큼 모멘텀이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 내년 역시 상반기에는 미국 증시가 잠시 오를 수 있지만 하반기 이후 긴 조정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다만 장기투자자라면 가격이 상당히 매력적인 만큼 분할 매수 후 기다리는 전략이 유효하다고 밝혔다.
최석원 센터장은 채권 애널리스트 출신 리서치 센터장으로 유명하다. 1993년 대우경제연구소를 시작으로 서울투자신탁운용, 대우증권, 한화투자증권, 삼성증권 등을 두루 거쳤다. 2011년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을 역임했고 현재 SK증권 리서치센터를 이끌고 있다.
▲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 현 시장 상황에 대한 진단을 먼저 해준다면
▲ 올해 1월 고점을 찍고 한 번도 회복하지 못했고 9개월 연속 하락이 지속됐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하락장에 진입해 있던 셈이다. 중간중간 반등이 나타났지만 파동을 치는 주가가 이전 저점을 계속 깨고 내려가는 것이 하락장의 기준이 된다. 1월 이후에는 전형적인 하락장의 모습을 보여왔다.
- 왜 하락장이 나타났나
▲ 과거 여러 데이터를 살펴보면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결국 미국 금리 인상이다. 미국이 금리를 느린 속도로 올리고 있고 금리 수준이 높지 않다는 이유로 예전하고 다르다고 볼 수 있겠지만 시점의 문제일 뿐 과거 의미 있게 금리 인상을 진행했던 사례를 살펴보면 달러 강세와 맞물려 90년대 이후 예외 없이 이머징 주식은 떨어졌다. 평균적인 주가 하락폭도 25~30%였고 위기국을 기준으로 보면 더 빠졌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국가도 있었지만 이머징 주가가 떨어지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반면 미국 증시는 떨어졌을 때도 있고 올랐을 때도 있었다. 미국의 통화정책과 환율의 움직임은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영향은 다른 나라들이 더 받는 거다. 그런 측면에서는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하락할 여지가 있었고 예견된 것이었다.
- 왜 하필 10월 들어 집중적으로 빠졌는지
▲ 미국에서 조정이 나타나며 촉매 역할을 했다. 안 그래도 시장이 내리고 있었지만 그나마 투자자들의 심리를 뒷받침해줬던 힘은 미국 증시 상승이었다. 미국 증시가 오르면서 글로벌 시장 관점에서는 위험자산으로부터는 돈을 뺄 때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미국 주가가 빠지면서 위험자산과 안전자산 간 대결구도에서 위험자산 회피가 급격하게 퍼졌다. 특히 미국 증시 상승에서 주된 역할을 했던 기술주들이 각광을 받으며 엄청난 상승을 했다. 고점 대비 큰 폭으로 가격이 빠졌다. 그동안에는 돈이 갈 곳으로 판단돼 상승했지만 실적과 밸류에이션 우려가 커졌다.
- 한국이 유독 더 하락폭이 컸던 이유는
▲ 한국이 베타가 높은 성향이 있는 국가임에 분명한데 많이 빠진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겹쳤다. 먼저 미국과 중국간 무역분쟁이 중국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형태로 가고 있고 중국과의 관계에 문제가 될 법한 국가가 한국이다.
중국 증시가 올해 내내 많이 빠졌지만 한국은 중국 의존도가 높은 가운데서 덜 빠졌다. 그러다 무역분쟁이 격화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한국이 향후 더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관점에서 한국은 이머징 주식시장 대표격이었는데 중국과 인도가 부각하면서 한국이 이머징 대표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도 투자자들 사이에 있었던 것 같다.
수급적인 측면에서는 패시브 펀드가 워낙 많아진 부분도 영향을 줬다고 본다. 패시브 펀드의 경우 일방적으로 사들이는 구조이기 때문에 저평가와 고평가의 문제가 아니라 돈이 빠져나가면 밸류에이션과 무관한 가격 하락을 이끌 수 있다. 한국이 대표적으로 팔 수 있는 국가로 여겨졌던 것으로 보인다.
펀더멘털 상으로는 현재 정책 기조가 기업이나 시장주의 측면에서 불편함들이 있다. 물론 기업 위주의 정책을 폈을 때도 외국인이 사지 않았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정부의 큰 틀은 기업으로부터 가계로 소득을 이전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자산 시장에서는 썩 반갑지 않은 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늘렸을 것이다. 부동산 시장도 강한 규제에 들어간 상황이고 성장률이나 물가를 봤을 때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논의 등이 장기적인 건전성 제고에는 좋지만 단기적으로 성장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을 것이다.
- 남북 관계 진전 등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전혀 상관이 없었을까
▲ 그렇게 크지 않다. 과거엔 전쟁이 임박하는 불안감이 커졌을 때는 하루 정도씩 굉장한 타격이 있었지만 '패스트 머니'가 오고 갔지 주식 매도가 크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디폴트 요인이었던 만큼 관계가 좋아져도 크게 좋은 영향을 주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향후 북미관계 등이 잘 진행될 것이란 기대도 아직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주가가 어쨌든 많이 빠졌는데 주식을 사야 하는 시기인지
▲ 시기적으로 보면 썩 모멘텀이 주식시장에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현재 가격 매력은 있다. 싼 것은 분명 맞다. 대개 주가순자산배율(PBR)로 계산하지만 절대적 수준을 보더라도 2010년 수준으로 회귀한 것인데 그에 비해 가업의 이익은 정말 많이 늘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를 제외하더라도 기업 가치가 분명 늘어나 있는데 주가는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미국의 금리 인상에 대한 부담으로 팔고 있다는 것, 글로벌 패시브 펀드가 액티브에 비해 7배나 빠른 속도로 늘어난 것이 밸류에이션과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좋은 시점은 아니다.
반면 가격적으로 굉장히 싸기 때문에 긴 호흡으로 분할 매수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이미 운용사들은 분할 매수를 시작했을 것이다. 장기투자를 표방하는 투자자라면 저평가 종목 위주로 분할 매수를 한다. 1만원이었다가 7000원이 됐는데 5000원까지 빠질 수 있지만 다시 1만원이 될 것이라고 본다면 5000원이 바닥이더라도 6000원, 7000원에서도 산 후 기다리는 전략이 가능하다.
5~6년간 박스권의 바닥은 1850선이고 상당히 단단한 하단이다. 이마저 뚫는 것은 위기 당사국에 준하는 수준이다. 쉽지 않은 하락이다. 다만 분할매수를 조언하는 것은 당장 오를 요인이 없기 때문에 단순히 싸졌다고 사기보다 나눠서 사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
- 미국의 금리 인상 사이클이 종료되는 시점에는 이머징 숨통이 트인다고 봐야 하나
▲ 그렇진 않다. 과거 금리 인상 종료 시점에 실제 미국 주가는 좋지 않았다. 미국의 경우 금리 인상 진행 중에 주가가 빠지지 않았는데 2000년대 중반엔 미국과 이머징이 모두 빠졌고 금리 상승에도 불구, 달러가 약세였던 시기였다. 당시 워낙 중국과 이머징 성장률이 높았고 미국의 부실을 잉태하고 있었던 시기였고 이를 제외하면 미국 금리 인상 막바지에 주가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따라서 현재 미국 증시가 계속 하락하기보다 다시 오르다 내년도 중반 이후 주가가 다시 밀릴 수 있다.
물론 이 시기에는 위험자산에 대한 인식이 지금처럼 나쁘진 않을 것이다. 대신 미국 주가가 하락하면서 다시 한번 충격을 받을 수 있다. 특히 미국은 물론 글로벌 전반의 성장률이 떨어질 수 있다. 경기선행지수도 다 꺾인 상태다. 더 큰 문제는 다른 나라들이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 여력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정책 대응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글로벌 성장이 동반 하락할 수 있다. 시장이 안정되면서 주가가 당분간 오르겠지만 내년 하반기를 앞둔 대비해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년은 상고하저로 봐야 할지
▲ 내년 상반기 좋아질 것으로 보는 부분은 원화 약세 시 주가도 약세라고 보지만 높아지는 환율이 기업 이익 쪽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2분기 정도쯤 정보기술(IT) 쪽을 좋게 본다. 생각보다 수요가 탄탄하고 올해와 내년 중 삼성전자가 투자를 안하는데 내년 정도 IT 쪽 저평가됐던 부분이 올라올 수 있다. 물론 글로벌 성장 둔화 파고를 이길 순 없을 것으로 보이고 이 시점을 엑시트(exit) 포인트로 삼을 것을 조언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정책 대응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 수축의 길이가 좀 더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금융위기처럼 가지 않겠지만 금융위기 이후에는 중국이 수요를 견인했는데 중국의 돈이 기업 부채 쪽으로 유입됐고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대대적인 정부 주도 부양을 하기엔 과거에 비해서는 불리한 환경이 될 것이다.
- 해외 주식 쪽은 미국이 그나마 유망할까
▲ 올해 중반쯤 하반기 해외 주식 투자만 하자고 했다. 해외는 중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미국이 기본적 관점이었다. 미국이 금리 인상을 할 때는 재정지출을 늘리면서 달러 강세가 될 수밖에 없는데 무역전쟁까지 벌이면서 과거에 환율 조정을 통해 교역 불균형을 해소하려고 했던 때보다 이머징 시장에는 더욱 안 좋은 상황이다. 자국 통화 강세 시 내수 부양 여지가 생기는데 이번에는 무역 분쟁으로 교역이 어렵고 내수를 부양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과거보다 미국과 그 외의 곳의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미국 쪽에 투자하는 것이 맞다고 봤다.
- 이런 시점에서 한국이 금리를 올리는 것이 맞는지 궁금하다
▲ 금리 인상이 나쁘기도 하고 좋기도 한데 결국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더 잘할 수 있는 시점에 못했으니 늦게라도 해야 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비용과 이익의 함수가 올해 초와는 분명 달라져 있다. 주가도 내리면서 부의 효과가 마이너스 효과가 날 수 있고 부동산도 규제에 들어가면서 마찬가지다. 가계부채가 많은 상황에서 금리를 높이면 이자비용 등 비소비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아마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소비가 더 안 좋아지는 현상이 크게 나타날 수 있다. 금리를 한번 올린다고 부동산이 잡히지 않았겠지만 부동산 대책이 여러 번 나왔는데 당시에 조건이 좋았을 때 금리를 올렸다면 지금보다 자원의 왜곡, 금융 불균형이 덜 하지 않았을까 싶다.
유일한 목표가 부동산 가격을 떨어뜨리는 것이라면 가능하지만 다른 문제다. 규제로 인해 자금의 단기 부동화가 나올텐데 정부 의도대로 부동산 시장의 기대수익률을 낮춘다고 주식시장으로 흘러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일본만 해도 20년간 단기자금이 부동화된 경험이 있다. 주식시장 자체가 매력적으로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코스닥 시장의 문제도 짚어달라
▲ 코스닥이 많이 빠진 이유 중 하나는 코스닥 활성화를 위해 자금을 모은 것이 문제가 됐을 수 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돈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좋아지는 것이다. 돈을 모아 놓고 투자를 무조건 하게 하면 뭐든 사기 마련이고 그렇게 유입된 자금이 주가를 올렸지만 시장이 안 좋아지면서 더 크게 빠질 여력이 커진다. 기술특례상장 등으로 기술을 상품화시키는 구도는 바람직하지만 단순히 투자를 하면 혜택을 주고 투자를 하려고 한다면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