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말씀드릴까요. 한국 시가총액은 일본의 5분의 1 정도입니다. 미국 중국 일본에 비해 규모가 작은 게 사실입니다. 삼성전자 현대차그룹 등 상위 종목만 보고 한국 전체를 이야기하는 외국인이 상당수입니다"
스즈키 다케시 스팍스자산운용 한국지사 대표이사(아래 사진·48)는 일본과 유럽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에 보이는 반응을 이같이 설명했다. 스즈키 대표는 2년 전 한국에 부임한 뒤 일본과 유럽을 수시로 드나들며 '셀 코리아'에 주력하고 있다. 일본에서 한국 투자 펀드도 일으켜 조만간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그에게 한국 시장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14일 서울 종로에서 스즈키 대표를 만났다.
▲ 다케시 스즈키 스팍스자산운용 한국지사 대표이사는 비즈니스워치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는 신흥국에서 선진국 문턱을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하며 향후 투자 매력이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사진=이돈섭 기자] |
스즈키 대표는 자산운용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노무라증권에서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로 근무해 온 그가 스팍스에 합류한 건 1999년. 회사 선배 권유가 계기였다. 당시 스팍스가 설립 10주년을 맞은 작은 자산운용사라는 건 아무래도 좋았다. 창업자 아베 슈헤이 사장이 내건 '세계에서 신뢰받는 투자회사'라는 비전이 마음에 들었다. 계열사 영향에서 벗어나 마음껏 투자에 나설 수 있는 점도 좋았다. 스팍스는 일본 최초로 헤지펀드를 도입했다.
그가 한국땅을 밟은 건 지난 2016년10월. 일본 열도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후쿠시마현에서 태어난 그가 도쿄를 거쳐 런던과 홍콩 등 세계 주요 도시를 거친 뒤다. 서울의 첫 인상은 예상과 달랐다. 지하철 인프라가 훌륭했지만 도로 정체는 심했고 빈부 격차도 상당했다. 한국 시장은 어디 즈음 와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한국 시총 규모는 일본의 5분의 1 정도입니다. 사실 규모 면에서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삼성전자 현대차 등 유가증권시장 우량 종목을 통해 한국 시장 전체를 이해하는 외국인도 많습니다. 업종과 종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옆나라 일본도 마찬가지이고요"
하지만 그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시선을 한국으로 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일본을 수시로 오가면서 올 들어 유럽만 세 번 다녀왔다. 최근에는 일본에서 한국 펀드를 일으켜 공식 출시를 목전에 두고 있다. 스팍스로써는 처음 내놓는 '한국 상품'이다.
그가 한국 투자를 권유할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스즈키 대표는 한국 경제가 신흥국 터널을 벗어나 선진국 문턱에 다다랐다고 본다. 그는 "최근 기업 지배구조 논의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고 재벌에 대한 시각도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크게 바뀌고 있는 점이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경제가 성장하면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자금도 안정성을 추구하게 되는데 한국은 신흥국 시장의 약점으로 손꼽히는 정치적 불확실성을 털어내고 자발적으로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는 것. 최근 강소기업들이 속속 출현하면서 경제 구조가 피라미드 구조에서 역피라미드 구조로 바뀌는 점도 인상적이라고 덧붙였다.
스즈키 대표는 "일본에서 보톡스·인플란트 등 기술을 가진 기업은 찾기 힘든데 한국에서는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한국 시장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이해도가 떨어져 우수한 기업에 투자 타이밍을 놓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투자를 권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북관계 개선 움직임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북한이 개방되면 기업 매출처가 유라시아로 확장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최근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이 활발해졌는데 여기에 러시아와의 경제 교류까지 더해진다면 중국 증시 지표와의 커플링 현상도 완화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펀더멘털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근 국내 자동차 산업이 부침을 겪는 것에 대해서는 기업이 체질을 개선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소니가 오랜 기간 부진에 시달린 결과 컴퓨터·TV 사업을 매각하고 반도체·콘텐츠 기업으로 탈바꿈한 게 좋은 예라고 설명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자동차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도요타가 차량공유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도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고 제시했다.
안정을 추구하는 자금이 모험 자본 시장으로 흐를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자극을 줘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실제 일본 정부는 기성세대에 몰려있는 자금을 시장으로 흘려 내려보내기 위해 상속세를 일부 면제하는 한편,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민 정책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스즈키 대표는 "일본에서는 중장기적 증시의 불안요소로 꼽히는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 등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적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며 "시장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은 정부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투자에 있어서는 지금이 적기라고 분석했다. 일본 주요 기업들이 과거 20년간 디플레이션을 겪으며 기업 펀더맨털을 개선했지만 주가가 아직 이를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서비스 업종을 중심으로 성장 여력이 상당한 기업들이 있다"며 "미·중 무역분쟁과 같은 부정적 뉴스가 걷히고 2020년 도쿄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현재 2만2000 안팎인 닛케이평균주가지수는 중장기적으로 4만까지 오를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인터뷰 말미에서 그는 외국인의 동향을 읽기 위해서는 작은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인, 일본인이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외국인 입장에서는 아닐 수 있습니다. 작은 뉴스 하나에 담겨 있는 함의를 찾아내는 게 중요합니다. 작게는 각 도시 유니클로 매장별 가격부터 기업 지배구조 문제까지 모두 포함합니다. 자기만의 시각으로 디테일을 중시하며 투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