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모델 특례상장 1호' 플리토가 지난 17일 코스닥에 상장했다. 플리토는 언어 빅데이터 수집과 가공에 주력한다. 시장은 무엇보다 사업모델 특례상장 1호라는 타이틀에 주목했다. 일반공모 청약 경쟁률은 710.71:1. 주가는 시초가 3만1600원에서 꾸준히 올라 4만원대를 기록한 뒤 잠시 주춤하고 있는 상태다.
이정수 플리토 대표이사는 500억원대 주식부호가 됐고 공동창업자 2명의 주식가치도 80억원대로 뛰었다. 스타트업 업계는 플리토의 상장 과정 이야기를 궁금해했다.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플리토 사무실을 찾아 이정수 대표를 만났다. 상장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과 향후 사업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대표는 책임감을 강조했다. 후배 스타트업 기업이 특례상장을 계획할 때 좋은 본보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심사 과정에서 거래소와 투자자 관계자 앞에서 강조한 계획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했다.
- 상장 소감이 궁금하다
▲ 지금까지 살아남아 감사한다. 2012년에 창업했는데 당시 주변에 있던 기업들은 대부분 망했다. 더 많은 기회가 열린 것 같아 기쁘다. 하지만 상장 자체로 좋아할 것은 없다. 시험대에 오른 것뿐이다. 사업모델 특례상장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기술특례상장 제도다. 기술특례상장과 다른 점은 기술 대신 사업모델을 평가하는 것이다. 우회로로 상장했다는 말이다. 나중에 전도유망한 기업이 등장해 이 제도를 이용하는 데 방해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잘해야 한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제도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겠는가. 중압감을 느끼고 있다.
- 주변 반응이 어떠한가
▲ 아침부터 새벽까지 주변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많이 온다. 사업모델 특례상장이라는 제도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밸류는 어떻게 매기는 것이 바람직한지 묻는다. 투자자와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도 단골 질문 중 하나다. 스타트업이 상장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인지 따지는 분도 있다. 상장 전에는 회사 기사를 찾아보는 게 일이지만 지금은 안 하고 있다. 주가가 수시로 움직이니까 심리적으로 흔들릴 것만 같다. 아직 익숙지 않다.
- 사업모델 특례상장 제도를 접하게 된 경로는
▲ 2016년 말에 한국거래소 상장 유치를 담당하시는 분이 찾아왔다. 내년에 이런 제도가 생기니 지원해보라고 했다. 벤처캐피탈(VC) 업계에서 소개를 받아 알게 됐다고 했다. 당시 100억 원가량 투자를 받기도 했고, 상장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나중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해외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서 지사 설립 논의가 이뤄졌고 상장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말부터다.
- 해외사업이 활발하다. 한국에서 상장하지 않아도 됐을 것 같다
▲ 미국에서 투자를 받으려고 했다. 조건이 있었다. 창업자 대부분이 미국으로 와서 일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투자자 출구 전략이 꼬이는 데다 세금 문제도 복잡해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같은 규모의 투자를 받을 수 있다면 한국에서 해외사업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인공지능 분야는 한국이 더 유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들이 못 한 것을 시도하는 것이 중요했다.
- 인수 제안도 많았을 것 같다
▲ 창업 후 2~3년간 꾸준히 있었다. 인수 금액은 지금 플리토 밸류와 큰 차이 없다. 당시에는 꿈과 희망에 차 있었다. 회사를 키우자는 생각이 강했다. 훨씬 재미있는 경험들도 많아질 것이라고 봤다. 학교를 세우는 것이 꿈이다. 사업을 시작하면 3조원은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웃음). 상장 과정에서 인수 제안으로 플리토를 포장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 최대한 말을 아꼈다.
- 상장 심사 과정에서 무엇을 이야기했는가
▲ 거래소 심사역은 사업의 연속성을 주로 물어봤다. 해외 유수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는데 한번 일하고 마는 것 아닌가. 성장 속도가 빠른데 앞으로 계속 유지될 수 있는 것인가. 향후 목표는 무엇이고 어떻게 이룰 것인가. 계약상 특이점은 없느냐. 미래 계획에 대한 근거를 궁금해했다고 생각한다.
- 부담스러웠겠다
▲ 사업모델 특례상장 시도 기업이 플리토가 처음이다. 참고할 수 있는 기업이 없었다. 떨어져도 시도했다가 잘 안 됐다고 나올 뿐이라고 생각했다.
- 상장 과정에서 어떤 질문을 많이 받았는가
▲ 대기업들이 기술을 베끼면 어떻게 할 거냐. 질문 세 개 중 하나꼴로 나왔다. 사람들이 분명한 외부 위협 요소로 꼽는다는 말이다. 사회적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네이버 자회사가 스타트업 앱을 표절했다는 의혹인 이른바 '당근마켓' 사태가 괜히 터진 게 아니다. 타사 기술을 비용지불 없이 차용하는 것은 범죄인데 국내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대기업 사이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짚어야 할 것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 상장 일정 자체가 굉장히 촉박했다. 지난달 초 청와대 초청으로 핀란드 사절단에 참석하고 귀국하자마자 홍콩에서 기업설명회를 시작했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다. 하루에 기업 6곳을 돌았다. 한 곳에서 1시간씩 설명했다. 드라이할 시간도 없어 같은 양복을 4주 동안 계속 입고 다녔다. 체력이 고갈됐다. 30대이니 견딜 수 있었다고 치자. 50~60대 사장님들은 어떻게 이 과정을 거쳤을까.
- 기업 설명에 어려움은 없었나
▲ 해외에서는 플리토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호주의 어펜(Appen)이라는 회사가 언어 데이터를 생성해 판매하고 있는데 불과 몇 년 만에 매출이 60배 성장했다. 워낙 잘 알려진 곳이라 성장성 자체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국내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생소하게 받아들이는 분들이 많았다.
- 바뀌었으면 하는 스타트업 풍토가 있다면
▲ 대기업 공채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 많은 기업이 대규모 인원을 한꺼번에 뽑아 각 계열사에 배치해 결과물을 요구한다.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외국에서는 해당 업무에 필요한 인재를 적시적소에 뽑아 배치한다. 그 사람은 그 일만 고민해온 사람이다.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한 회사가 사업을 확장할 때 기업을 인수하는 게 이런 이유에서다.
스타트업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회사 서비스를 보고 이런 서비스를 녹이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한다. 자존심이 없는 건가. 내가 할 수 있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대기업이 백지상태에서 스타트업이 구현한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절대로 못 만든다. 실패를 거듭하는 과정에 고유의 철학이 배이기 마련이다.
-자본시장에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 국내 자본시장이 경직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가능성 있는 기업들이 투자를 받아 성장할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장이 바이오와 전자제품 제조 산업에 정형화되어 있는 느낌도 받는다. 새로운 기업들이 대응하기 힘든 점이 있다. 앞으로 전도유망한 스타트업들이 시장에 나타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상장특례제도가 투자자들의 창구로 변질하는 것을 막기 위해 투자자 보호예수 등을 잘 감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