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젠 사태를 계기로 특례상장 제도에 대한 신뢰성이 도마 위에 올랐지만 여전히 이 제도를 통해 상장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올 들어 특례상장으로 증시에 입성한 기업만 벌써 10곳에 이를 정도다.
무분별한 특례상장으로 인한 투자자 피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한국거래소는 상장 문턱을 높이기 위한 새 가이드라인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특례상장 급증…작년 코스닥 새내기주 '절반'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신약 개발기업 지아이이노베이션은 지난 20일 한국거래소에 코스닥 상장예비심사 청구서를 제출했다. 시장평가 우수기업 특례상장인 '유니콘 트랙'을 활용해서다. 앞서 상장은 철회했지만 지난 2월 국내 첫 유니콘 특례로 증시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브로노이에 이어 두 번째다.
특례상장 기업은 코스닥 시장 활성화를 명목으로 다양한 특례 제도가 만들어지면서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2020년 코스닥 입성 기업 65곳 가운데 40%(26곳)가 특례상장 기업이었고, 지난해에는 75곳 중 36곳으로 그 비율이 50%에 육박했다. 올해에는 더욱 늘어날 태세다. 연초 이후 상장한 기업 22곳 가운데 이미 41%(9곳)가 특례상장 기업이다.
코스닥 특례상장 요건은 크게 △이익미실현 특례상장(테슬라 요건) △기술특례상장 △성장성 특례상장 등 3가지로 나뉜다. 먼저 테슬라 요건은 적자기업이라도 시가총액이나 매출액,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일정 수준이면 상장을 허가하는 것으로 미국 전기차 제조회사인 테슬라에서 이름을 따왔다. 테슬라 같은 혁신 기업에 자금 조달의 길을 터주자는 취지다.
기술특례상장은 일반 기업에 적용되는 사업성 평가 대신 '기술 평가'란 절차를 거친다. 거래소가 인증한 전문 평가기관 중 2곳을 임의로 지정받아 1곳에서 'A', 나머지 1곳에서 'BBB'등급 이상을 받으면 된다. 성장성 특례상장은 앞선 두 요건에 비해 절차가 단순하다. 상장을 주선하는 증권사가 기술을 보장하고 추천하면 된다. 다만 자기자본이 10억원 이상이고 자본잠식률 또한 10% 미만이라야 한다.
이들 3가지에 더해 유니콘 특례상장 트랙이 지난해 3월 추가로 신설됐다. 적자여도 시가총액이 5000억원 이상이고 외부 전문평가기관 1곳에서 기술성 평가 A등급을 받으면 상장할 수 있다.
상폐위기·의견거절 등 리스크…투자자 피해 '주의'
이처럼 다양한 트랙으로 유망 기업이 증시에 입성하는 것은 시장으로선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특례상장한 기업들의 최근 행보는 투자자 우려를 키우고 있다.
단적으로 기술특례 루트를 밟고 상장한 신라젠은 경영진의 횡령·배임으로 거래가 정지된 데 이어 개선기간을 간신히 부여받은 상태다. 같은 특례 상장사인 디엑스앤브이엑스(구 캔서롭)와 샘코, 큐리언트 등은 감사의견 '거절' 등의 이유로 거래가 중단된 상황이다.
앞서 신라젠 소액주주들은 신라젠 사태를 촉발한 원인이 상장 이전에 발생한 점을 들어 특례상장을 허가한 한국거래소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실적' 같은 객관적인 수치보다 '유망성'이란 수치화하기 어려운 잣대로 특례를 남발해 투자자 피해를 불렀다는 것이다.
거래소는 이에 기술특례상장 심사의 핵심인 기술평가모델을 새로 표준화해 오는 8~9월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계획이다. 기술상장심사 부서가 지난달 말 컨설팅 업체와 계약을 맺고 용역을 의뢰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표준화 과정에서 투자은행(IB) 등 관련 업계 의견을 수렴하고 프로세스를 상의할 것"이라며 "모델 개발뿐만 아니라 특례제도 전반을 종합적으로 개선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도 적자 기업들의 상장이 줄줄이 예고된 상황이어서 당분간은 투자자들의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실제 현재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한 기업 29곳 중 19곳이 2020년 또는 2021년에 적자를 낸 상태다. 특례상장 기업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최종경 흥국증권 연구원은 "최근 들어 '사연 많은' 기업들이 확대되는 등 특례상장 증가세가 더욱 가팔라졌다"며 "특례상장 요건으로 증시에 입성한 기업들을 중심으로 주가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