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대우와 한국투자증권이 '업계 순이익 1등'을 놓고 펼치는 자존심 대결이 흥미진진하다. 올 들어 매분기 두개의 초대형 투자은행(IB)이 내놓는 순이익 실적을 보고 있으면 '초박빙 레이싱'이 펼쳐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3분기 증시 부진으로 인한 거래대금 감소 여파로 대부분 증권사가 주춤했음에도 이 두 회사의 엎치락뒤치락 경쟁은 계속됐다. 올 4분기 및 연간 성적의 최종 결과가 어떨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비우호적인 사업 환경에도 기어코 1000억원 이상 순이익을 거둔 메리츠종금증권의 실적 추세도 눈여겨 볼만하다. 무려 7분기 연속 1000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전통의 강호' 삼성증권과 NH투자증권도 3분기 쉬어가긴 했으나 메리츠종금증권의 뒤를 바짝 추격하며 언제든 순위를 뒤바꿀 태세다.
자기자본 1조원 이상 대형사들이 올 3분기에는 대체로 부진한 성과를 거뒀다. 증시 거래대금 감소로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실적이 꺾였으며 IB 부문 성장세가 멈칫한 것이 발목을 잡았다.
그럼에도 1~3분기 누적으로는 지난해 연간 성적을 웃돌거나 역대 최대를 달성한 곳들이 상당수다. 키움증권이 개인 브로커리지 선전과 자회사 호실적 등을 기반으로 '어닝 서프라이즈'를 달성한 것도 이변이라 할 만하다.
◇ 미래에셋-한국투자 라이벌전, 선두권 '멀찍이'
미래에셋대우는 올 3분기 1400억원에 육박하는 순이익을 달성하면서 2분기에 이어 '업계 1위' 자리를 유지했다. 비록 2분기 2200억원에 달하는 사상최대 순이익보다 800억원 모자란 수치이나 건재를 과시했다. 무엇보다 최대 라이벌인 한국투자증권의 같은 기간 성적보다 120억원 가량 앞선 것이 눈길을 끈다.
두 회사의 경쟁은 갈수록 더 치열해지고 있다. 1분기 한국투자증권이 무려 2200억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및 증권 업계를 통틀어 최고의 성적을 낸 이후 경쟁이 본격화했다. 2분기 미래에셋대우가 한국투자증권의 기록을 넘어서는 순이익으로 1등 자리를 탈환하면서 반전의 묘미가 곁들어졌다.
두 회사의 순위 다툼은 올 4분기 실적 발표를 계기로, 연간 성적이 나와야 결판이 날 것 같다. 1~3분기 누적으로는 아직까지 한국투자증권이 5333억원의 순이익으로 미래에셋대우(5253억원)를 제치고 1등이기 때문이다. 격차가 고작 80억원에 불과하다. 서로의 기록을 뛰어 넘으면서 펼치는 접전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이 기간 두 회사가 라이벌전을 펼치며 선두권을 형성, 후위 그룹과 격차를 벌리는 것도 눈길을 끈다. 미래에셋대우와 한국투자증권의 각각 5000억원 이상의 누적 순이익은 같은 기간 3000억원대 성적을 거둔 메리츠종금·삼성·NH투자증권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증권 업계에서 아직 세우지 못한 '조(兆) 단위 순이익'의 실현 가능성이 올해에는 희박해 보이나 지금의 성장 기세라면 멀지 않은 시점에 가능해 보인다.
실제로 미래에셋대우는 오래 전부터 공을 들여온 해외 사업의 성과가 올 들어 가시적으로 나오면서 성장에 가속이 붙고 있다. 무엇보다 3분기말 연결 기준으로 자기자본이 9조원을 돌파, 대규모 투자 여력을 갖추면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한국투자증권은 IB와 자산운용 부문에서 경쟁력을 과시하고 있으며 지금의 분위기라면 올해에도 역대 최대 실적 경신이 가능할 전망이다.
◇ '쉬어가는' 메리츠·삼성·NH, '최대' 기대감
3분기 증시 부진의 여파는 '돌풍'의 주역 메리츠종금증권의 상승세를 누그러뜨렸다. 작년 1분기부터 매분기 1000억원 이상 순이익을 달성하며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메리츠종금증권은 3분기 들어 주춤했다. 그럼에도 1000억원 이상을 달성하면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순위로 치면 전분기와 마찬가지로 3위를 유지했다. 1~3분기 누적으로도 3등이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올 들어 사옥 매각과 자회사 메리츠캐피탈로부터 배당 수익 등이 일회성으로 대거 잡히면서 1, 2분기 실적이 부풀려진 측면이 있었다. 그럼에도 3분기 주력인 IB 부문이 양호한데다 홀세일에서 선전하면서 무려 7분기 연속 1000억원 이상 순이익을 기록했다.
1~3분기 누적 실적은 같은 기간 최대 성적이기도 하다. 역대 최대를 기록했던 지난해 연간 순이익(4339억원)에 맞먹는 수치라 지금의 분위기라면 올해에도 연간 실적을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통의 강자 삼성증권과 NH투자증권도 3분기 들어 가라앉았다. 삼성증권은 전공인 자산관리(WM)로, NH투자증권은 금융상품 판매로 선전했으나 증시 부진 한파를 비껴나지 못했다. 두 회사가 올 들어 매분기 1000억원 안팎을 벌어왔으나 3분기 1000억원대 고지에서 아쉽게 미끄러진 것도 닮은꼴이다.
순위로는 메리츠종금증권에 이어 삼성증권이 4위, NH투자증권이 5위다. 특히 NH투자증권은 이전 4위 자리에서 한단계 내려왔다. 삼성증권이 WM과 IB 부문에서 선전하면서 NH투자증권을 제치고 이전보다 한계단 오른 것이 눈길을 끈다. 1~3분기 누적으로는 말이 달라진다. 3600억원의 육박하는 순이익을 달성한 NH투자증권이 삼성증권을 앞선다.
◇ 키움의 반등, KB도 선전
잠잠하던 키움증권은 모처럼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올 3분기 654억원의 순이익으로 전분기(531억원)보다 100억원 가량 늘어난 성적을 달성하며 순위가 9위에서 6위로 급상승했다.
대형사 가운데 유일하게 전분기보다 나은 실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리테일 강자인 키움증권이 비우호적인 사업 환경에서 오히려 반등했다는 점도 이목을 끈다. 심지어 3분기 실적은 시장 컨센서스(순이익 592억원)를 크게 웃도는 '어닝 서프라이즈'다.
올 들어 쾌조의 상승세를 보인 KB증권은 3분기 숨고르기에 들었다. 순이익 614억원으로 순위로는 7위를 기록했다. 전분기보다 한계단 내려온 것으로 1~3분기 누적으로도 7위다. 그럼에도 지난해 같은 기간(2112억원)보다 누적 순이익은 135억원 확대되기도 했다.
이 기간 그룹 내 주력 계열사 KB국민은행과 손해보험의 실적이 전년같은 기간보다 뒷걸음질쳤으나 KB증권은 오히려 성장세를 보였다는 점도 눈에 띈다.
지난 7월 1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마무리하면서 자기자본 규모를 1조원 이상으로 확대, 대형사로 발돋움한 한화투자증권도 눈여겨 볼 만하다. 3분기 순이익은 113억원으로 대형사 순위 가운데 최하위권이지만 누적으론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개선되는 등 성장 기조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