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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추풍낙엽' 실적…'메리츠 매직' 홀로 빛났다

  • 2023.02.22(수) 14:00

[워치전망대]10대 대형사 2022년 실적 분석
메리츠, 첫 순익 1위…유일한 영업익 '1조클럽'
미래에셋·한투 2, 3위…키움증권 약진 '주목'

'호시탐탐' 증권사 실적 왕좌 자리를 노리던 메리츠증권이 결국 일을 냈다.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라는 증권업계 공룡을 제치고 연간 실적 1위 자리를 꿰찬 것이다.

더불어 작년 국내 증권사 중 유일한 연간 영업이익 '1조 클럽'이란 타이틀도 꿰찼다. 메리츠증권 창사 이후 연간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한 것은 처음이다. 20분기 연속 순이익 1000억원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꾸준한 수익 창출 능력은 결국 '메리츠 매직'을 만들어냈다.

미래에셋증권은 선두는 놓쳤지만 '영원한 라이벌' 한국투자증권을 밀어내고 2위를 차지하며 체면을 지켰다. 증권가에 거세게 불어닥친 어닝쇼크 바람 속에서 타사 대비 상대적으로 이익 감소폭이 적었던 영향이다. 2021년 압도적인 성과로 1위를 달성했던 한국투자증권은 평소 강점을 지닌 투자은행(IB) 부문의 부진 여파로 3위에 그쳤다.

전통의 강호 삼성증권과 NH투자증권 등이 주춤한 사이 키움증권은 경쟁사 대비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덕분에 메리츠증권을 제외한 대형 증권사 가운데 기대치에 걸맞은 가장 양호한 성과를 냈다.

서울 여의도 증권가 / 사진=비즈워치

22일 비즈니스워치가 자기자본 2조원 이상 10개 대형 증권사의 지난해 연결 순익을 분석한 결과 전체 순이익은 4조2109억원으로 집계됐다. 2021년의 8조2913억원에서 거의 반 토막난 것이다. 2020년의 5조331억원과 비교해도 8000억원 이상 줄었다.

금리 인상과 주식시장 부진의 후폭풍에 시달리는 증권사들은 IB 부문의 주요 수익원인 부동산 PF마저 침체에 빠지면서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였다. 올해도 금리와 경기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가운데 위축된 투자심리가 단기간 내 회복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이에 따라 증권사들의 보릿고개도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메리츠, 미래에셋·한투 양강체제 깼다

불황 속에도 메리츠증권은 전년 대비 15.1% 늘어난 8281억원의 순익을 거둬들였다. 매분기 또는 매년 실적 선두를 다투던 미래에셋증권(6194억원)과 한국투자증권(5686억원)을 멀찌감치 뒤로하고 연간 기준으로 처음 순익 왕좌 타이틀 획득의 기쁨을 맛봤다.

같은 기간 영업익은 5.8% 증가한 1조925억원을 기록했다. 메리츠증권 창사 이래 연간 영업익 1조원 달성은 처음이며,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 증권사 중 유일한 1조 클럽이다. 많이 번 만큼 법인세도 3000억원가량 낸 것으로 파악된다. 법인세 납부 전 영업이익에서 영업외수익과 영업외비용을 합산한 세전이익 역시 1조1332억원으로 8.2% 불어나면서 순익과 영업익, 세전이익 모두 회사가 만들어진 뒤 최대치를 다시 썼다. 메리츠증권은 2017년부터 6년 연속 사상 최고 실적을 갈아치우고 있다.

이 같은 실적은 금융수지 부문의 대활약 덕분이다. 별도 요약재무제표상 메리츠증권의 지난해 금융수지 순영업수익은 4554억원으로 전년 대비 97.7% 늘어났다. 특히 4분기에만 1605억원에 달하는 영업수익을 올렸다. 4년 넘게 묶여 있던 중국 하이난항공 관련 부실채권 매각이 주효했다.

또 작년 위탁매매(브로커리지) 순영업수익이 전년 대비 50% 가까이 줄어든 와중에 IB와 자산운용(트레이딩), 자산관리(WM) 부문에서도 순영업수익 감소율을 마이너스(-)10%대로 지켜내면서 선방했다.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시장금리 급등과 증시 거래대금 감소 등 대내외적인 경제여건 악화에도 IB와 금융수지, 세일즈앤드트레이딩(Sales&Trading·S&T) 등 전 사업 부문에서 우수한 성과를 달성했다"면서 "특히 부동산 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도 IB 부문에서 호실적을 기록했고, S&T 부문 역시 선제적 포지션 관리와 최적화된 포트폴리오 구축으로 탁월한 수익을 거뒀다"고 자평했다.

2021년 한국투자증권에 밀려 2위에 머물렀던 미래에셋증권은 지난해에는 '다크호스' 메리츠증권의 기세에 눌려 1위 탈환에 실패했다. 위안이라면 타사 대비 상대적으로 순익 감소율이 적었던 점과 어려움 속에서도 '숙적' 한국투자증권을 꺾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자기자본 1위 증권사로서의 명성과 덩칫값에 못 미치는 성적을 낸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4분기만 놓고 보면 순익이 522억원으로, 시장 컨센서스 1458억원을 크게 밑돌았다. 해외 부동산과 프리IPO(상장 전 투자 유치) 자산 등 보유자산들의 평가 손실이 커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적극적인 주주환원정책은 긍정적이다. 미래에셋증권 최대주주인 미래에셋캐피탈은 앞서 주가 방어 목적으로 증권 주식 1000억원어치를 매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며, 현재 800억원을 사들였다. 회사 측은 올해도 현금배당과 자사주 소각 등을 통해 조정 당기순익의 30% 이상을 주주환원에 쓰겠다는 방침이다.

수익 창출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한국투자증권의 작년 실적은 다소 실망스럽다. 2021년 1조4474억원이라는 사상 유례없는 순익을 달성했으나 지난해에는 그와 비교해 60% 넘게 줄어든 5000억원대의 초라한 성과를 내놨다.

증시 침체와 급격한 시장금리 상승 등 금융시장의 불확실성 확대로 위탁매매는 물론 주력인 IB와 WM 등의 수수료와 운용수익이 대폭 줄었다. 부동산 PF 관련 대손충당금을 대거 반영한 영향도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지난해 한국투자증권의 부동산 PF 충당금과 평가손실 설정 규모가 3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4분기에만 1000억원가량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본업의 부진 속에서도 특유의 투자 실력은 발휘했다. 카카오뱅크를 비롯해 펀드 형태로 투자한 관계기업 지분법 평가이익을 통해 영업익보다 1280억원가량 많은 순익을 기록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12월 그룹 계열사인 한국투자밸류운용과 한국금융지주에서 보유하던 카카오뱅크 지분 27.18%를 1주당 2만6350원에 인수하면서 카카오에 이어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총 인수금액만도 3조4000억원이 넘는다.

증권가는 한국투자증권에 대해 올해 실적이 턴어라운드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면서도 과거보다 이익 체력이 떨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반등의 강도는 예상보다 약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대형증권사 순이익 순위 /그래픽=비즈워치

'빅5' 실력 갖춘 키움, 삼성도 눌렀다

2021년 9000억원대의 순익을 기록하며 메리츠증권과 KB증권 등을 제치고 5위에 올랐던 키움증권은 지난해 삼성증권과 NH투자증권 등 거함을 밀어내고 4위로 한 계단 올라섰다. 3위 한국투자증권과의 순익 격차도 600억원가량으로 그리 크지 않다.

증시 부진에도 특유의 리테일 경쟁력을 앞세워 위기를 잘 극복하고 있는데다 무엇보다 경쟁사 가운데 부동산 PF 리스크가 가장 적다는 점이 실적을 돋보이게 한다. 키움증권의 연간 부동산 PF 충당금 설정액은 약 64억원으로, 대형사 중 최소 수준이다. 4분기에도 30억원가량 인식하는데 그쳤다.

이에 키움증권의 전년 대비 순익 감소율은 44.1%로, 메리츠증권을 빼면 대형사 가운데 비율이 가장 적다. 무엇보다 키움증권이 기록한 5082억원의 순익은 시장 추정치를 15% 웃돈다. 그만큼 예상보다 장사를 잘했다는 의미다. 

메리츠증권과 키움증권의 약진 속에 'WM 강자' 삼성증권은 당초 전망치를 한참 밑도는 성적을 내놓으며 3위에서 5위로 두 계단 내려왔다. 작년 3분기까지 4120억원을 벌었으나 마지막 분기 순익이 119억원에 그친 게 순위 하락의 결정적 원인이다. 삼성증권의 4분기 순익은 시장 컨센서스를 88%나 밑도는 것이다.

4분기 부동산 PF 충당금 규모가 1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본업 부진이 온전히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위탁매매 수수료를 비롯한 전 부문의 수익이 감소한 가운데 특히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자금시장 경색으로 채권운용 실적이 부진했다. 이에 4분기 삼성증권의 운용손익과 금융수지는 전분기 대비 77% 급감한 288억원에 머물렀다.

다만 올 1분기에는 실적이 개선될 전망이다. 지난해 4분기와 비교해 시장 지표들이 나아지고 있고, 삼성증권의 경우 부동산 PF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아 추가적인 충당금 인식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인다.

금융지주 계열 4대 증권사 맥 못 췄다

지난해에는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들의 동반 부진이 두드러졌다.

우선 삼성증권에 간발의 차로 뒤진 6위 신한투자증권은 지난해 10위에서 4계단 상승해 얼핏 실적이 대폭 개선된 것으로 보이지만 사옥 매각을 통한 일회성 이익(세전 4438억원)을 제외하면 순익 규모가 4125억원에서 907억원으로 '뚝' 떨어진다. 재무제표상 신한투자증권의 영업익(1200억원)이 순익보다 훨씬 적은 것도 이 때문이다. 

2021년 사모펀드 관련 충당금 설정 여파에도 3200억원 넘는 순익을 기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난해 실적은 더 실망스럽다. 그나마 'IB 베테랑' 김상태 사장 취임 이후 IB 부문의 영업수익이 전년 대비 50% 가까이 늘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평소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양강체제를 깨뜨릴 유력 주자로 꼽히던 NH투자증권은 3000억원대 순익에 턱걸이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전년 대비 위탁매매와 WM, 트레이딩, 이자이익 등 전 부문에서 이익이 줄어든 가운데 특히 트레이딩에서 1022억원 손실을 본 영향이 컸다. 그래도 강점을 지닌 IB 부문에서 3138억원의 이익을 거둔 것은 다행이다.

증권가에선 NH투자증권이 타사 대비 금리 민감도가 커 올해 트레이딩 수익 정상화에 따른 이익 증가율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KB증권은 순익이 2021년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탓에 8위에서 탈출하는데 실패했다. IB 수수료는 전년 대비 11%가량 늘었지만 위탁매매 수수료가 43% 넘게 줄어든데다 금융상품수수료 역시 17% 이상 감소하면서 기대를 밑도는 실적을 냈다. 

특히 4분기에는 974억원의 적자를 내면서 LG에너지솔루션 상장 주관 등을 통해 3분기까지 벌어둔 이익을 깎아 먹었다. KB금융그룹 내 비은행 부문의 효자로 불렸던 KB증권이지만 지난해 실적은 멋쩍기 그지없었다.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 중 가장 민망한 성적표를 내놓은 곳은 하나증권이다. 하나증권은 순익이 전년 대비 무려 74% 이상 쪼그라들면서 10대 증권사 가운데 유일하게 1000억대 순익에 그쳤다. 순익 감소율은 10대 증권사 중 최대 수준이다. 당연하게도 순위 역시 최하위로 떨어졌다.

2018년 1521억원의 순익을 기록한 뒤 △2019년 2799억원 △2020년 4100억원 △2021년 5060억원으로 꾸준히 높아졌던 이익 레벨은 다시 4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타사와 마찬가지로 증시 부진에 따른 수수료 수익 감소와 보유자산 평가손실의 직격탄을 맞은 게 결정적이다. 회사 측은 탄소배출권을 비롯한 새로운 사업 영역에서 추가 기회를 찾는 한편 본업 경쟁력도 개선하겠다는 각오다.

2021년 7위에 올랐던 대신증권은 순익이 전년 대비 67%가량 줄어들면서 9위로 두 계단 내려섰다. 주력인 위탁매매 부문의 부진과 함께 채권운용 실적 등이 뒷걸음질 친 영향이다.

자기자본 규모가 큰 다른 대형사에 밀려 하위권에 머무르던 대신증권은 2021년 자회사 대신에프앤아이가 진행한 나인원한남 순익 3673억원이 한꺼번에 인식되면서 역대급 성과를 달성한 바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증권사들을 둘러싼 상황은 그리 우호적이진 않다. 전 세계적인 긴축 완화 흐름 속에서 당분간 경직된 투자심리가 쉽사리 풀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주 수입원인 위탁매매 부문의 회복세를 더디게 해 수익성 개선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작년 실적에서 나타났듯이 부동산 PF 관련 자산의 부실화에 따른 건전성과 자본적정성 저하 우려도 존재한다.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떨어지는 증권사일수록 부동산 자산 부실화 영향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윤재성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금리 상승 속도는 올해 중 조절될 것으로 보이나 높은 수준은 지속되면서 위축된 위탁매매 부문 회복에는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며 "부동산 익스포저 부실화에 따른 대손비용 발생과 상각 처리 등도 수익성 저하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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