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형 퇴직연금 운용방법으로 각광받고 있는 TDF(생애주기펀드)가 ETF(상장지수펀드) 형태로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투자자들의 관심이 ETF로 쏠리면서 TDF 시장도 공모형펀드에서 ETF로 이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매매가 쉬운 ETF 특성상 장기투자가 필요한 퇴직연금 운용에 맞지 않는 상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위험자산비중이 높은 TDF 운용초기에 별다른 수익을 보지 못하고 매매하거나 손실을 보고 매도해버리면, 사실상 채권운용은 거의 없는 주식형태에서만 TDF가 운영되다 해지하는 결과도 초래한다.

TDF 시장도 ETF로...위험자산 99% 상품까지 등장
TDF는 'Target Date Fund'라는 이름 그대로 투자자가 은퇴시점을 지정해 상품을 선택하면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의 비중을 알아서 조정해주는 상품이다.
자산을 축적해야 할 초기에는 위험자산인 주식의 비중이 높고, 은퇴에 가까워질수록 안전자산인 채권의 비중이 높아지도록 설계돼 있다.
TDF 상품 이름에 표기된 2030, 2040, 2050, 2060 등 숫자가 은퇴연도(빈티지)인데, 자신에게 맞는 은퇴시점과 포트폴리오가 담긴 상품을 골라서 투자하면 알아서 연도별로 주식과 채권 자산비중이 조정된다.
TDF는 대부분 공모형펀드 상품이었다. 하지만 2022년 삼성자산운용에서 KODEX TDF 2050액티브라는 ETF형 TDF를 출시한 이후 ETF 상품이 빠르게 늘고 있다.
KB자산운용, 한화자산운용, 키움자산운용에서도 ETF형 상품이 출시돼 있고, 최근에는 한국투자신탁운용에서도 2030과 2050빈티지를 출시해 TDF ETF 경쟁에 가세했다. 현재는 ETF형 TDF만 16개 상품으로 순자산도 4000억원 가까이로 덩치를 키웠다.
지난 11일 TDF ETF를 출시한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주식과 금 등 초기 위험자산비중을 99%까지 올린 '장기자산배분형 2080' 상품도 함께 출시해 주목받고 있다.
위험자산 비중이 높아 TDF라는 명칭은 붙이지 못했지만 연금계좌에서 운용할 수 있는 상품이다. 적극적인 한국인 투자자들의 성향을 반영했다는 것이 한투운용의 설명이다.늙기 전에 바짝 불려야 VS 매매 유혹 견딜 수 있나
퇴직연금 유치경쟁이 TDF ETF로 옮겨 붙으면서 이들 상품이 퇴직연금 상품으로서 적합한가에 대한 의문을 갖는 목소리도 나온다.
TDF ETF를 운용중인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ETF를 만든 입장에서 할 얘기는 아니지만, 사실 TDF ETF는 퇴직연금의 운용목적과 반하는 상품"이라며 "ETF라서 사고 파는 것이 쉽다는 부분도 있지만, 퇴직연금에서 70%로 제한하고 있는 위험자산을 사실상 100%까지 확대해서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퇴직연금 계좌에서는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의 비중을 70%로 제한하고 있는데, TDF는 위험자산으로 분류되지 않아서 그 자체를 100%까지 운용할 수 있다. 퇴직연금계좌 전액을 TDF에 담아도 된다는 것이다.
TDF 자체에서 위험자산을 80%까지만 담고 있다 하더라도 퇴직연금 계좌 내에서 70%를 위험자산으로 담고, 나머지 30%를 이 TDF로 담는다면 30%의 80%인 24% 역시 위험자산이기 때문에 실제 위험자산 비중은 94%까지 올라간다.
특히 TDF는 가입 초기에 부의 축적에 목적을 두고 위험자산비중을 극대화하기 때문에 사고팔기 쉬운 ETF형태로 운영하는 부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TDF는 목표시점을 정하고 장기간 투자하는 상품인데, ETF는 실시간으로 매매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보니 가격을 보고 사고 팔수 있고, 개인의 매매 타이밍을 통해 수익을 높여보겠다는 것이어서 퇴직연금 제도에 썩 부합하는 상품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TDF는 여러 국가의 여러 상품에 분산투자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ETF라 하더라도 일반적인 주식형펀드에 비해서는 변동성이 상당히 낮다는 점이 고려되었을 것"이라며 "위험자산비중을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상품을 개발한 운용사도 이런 우려를 상당부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은퇴이후 소득이 급감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운용 초기에 ETF로 공격적인 투자가 오히려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근 TDF ETF를 출시한 한국투자신탁운용의 강성수 상무는 "우리나라는 은퇴 이후 소득이 급격히 낮아지기 때문에 젊을 때 충분히 자산을 축적해야 한다"며 "변동성 우려는 자산배분을 통해 제어했고 수익률은 오히려 미국 S&P500보다 높게 나오도록 설계했다. 투자자교육을 강화해 잦은 감정매매 우려도 줄여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