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기업들이 창업주와 2세 경영인 시대를 뒤로하고 세대교체를 가속화하는 가운데 1980~90년대생 차세대 경영자들이 소통과 신사업을 앞세운 이른바 '소신' 경영으로 주목받는다. 선대의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불황 속에서도 안정적 수익기반을 다지는 동시에 시대 변화에 맞춰 신사업 추진으로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
보수적 경영에서 탈피해 수평적 조직문화를 주도하며 소통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도 특징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 유연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는 다양한 관점을 경영전략에 반영할 수 있게 하며, 직원들의 동기부여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다.
신사업 발굴과 선제적 투자도 차세대 경영자의 핵심 축이다. 선대부터 내려온 전통적 사업 모델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분야에 과감히 투자하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친환경, 우주, 헬스케어 등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에서의 도전이 돋보인다.

신성장동력과 조직문화 혁신…'유니드 3.0' 이끄는 이우일 대표
칼륨계 화학제품 시장점유율 세계 1위 기업 유니드는 '유니드 3.0 시대'를 선언하며 도약에 나섰다.
유니드는 2024년 연결 기준 매출 1조 1116억원, 영업이익 954억원, 당기순이익 762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197%, 368% 급증하며 수익성을 회복했다. 석유화학 업계의 불황과 대내외 시장 변동성 속에서도 안정적인 실적을 유지한 점이 눈에 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이우일 유니드 대표가 있다. 1981년생인 그는 '마지막 개성상인'으로 불리는 OCI 창업주 고(故) 이회림 회장의 손자이자, 이화영 유니드 회장의 장남이다. 이 대표는 선대 회장의 '신용·검소·성실' 경영철학을 계승해 고객이 신뢰할 수 있는 제품 생산에 주력하며, 설비 개선과 공장 증설 등 적극적인 투자로 품질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이 대표는 유니드의 핵심 제품인 수산화칼륨이 탄소포집과 그린수소 생산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 친환경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유니드는 환경부와 국토교통부가 추진하는 보령시 '탄소중립 선도도시 조성사업'에 참여하며 친환경 분야에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올해 1월에는 인사제도 개편을 통해 수직적 위계구조를 개선하고, 성과 중심 보상체계를 도입해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업무 환경을 조성하는 등 조직문화 혁신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탈탄소 패러다임 선도하는 HD 현대 정기선 수석부회장
1982년생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이자,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이다. 2022년 HD현대의 대표이사로 선임된 이후, 지난해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정기선 수석부회장은 정주영 창업자의 도전 정신을 기반으로 친환경 미래기술 확보와 지속 가능성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HD현대는 연결기준으로 지난해 연간 매출 67조 7656억원, 영업이익 2조 9832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10.5%, 46.8% 증가한 수치다. 조선·해양 부문의 실적 개선과 전력기기(일렉트릭) 부문의 지속적인 호조세가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해초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 'CES 2024'에서 국내기업으로 유일하게 기조연설을 하기도 한 정기선 수석부회장은 조선산업의 탈(脫)탄소 패러다임을 주도하며 글로벌 친환경 선박 분야에서 선도적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HD현대의 조선 중간 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은 2021년 세계 최초로 메탄올 추진 초대형 컨테이너선, 2023년에는 세계 최초 중형 암모니아 추진선 수주에 성공했다.
조직문화 측면에서도 기존의 보수적인 조선업계 문화를 탈피하고,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기업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도입했다. 특히 젊은 인재 유치를 위해 유연근무제와 수평적 소통 문화를 강화하는 등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다.

보령, 제약에서 우주로!…삼양식품, K푸드에서 헬스케어로
1985년생 김정균 보령홀딩스 대표는 제약업계 3세다. 김승호 보령그룹 명예회장의 손자이자 김은선 보령홀딩스 회장의 아들이다. 2019년 보령홀딩스 대표이사에 올랐고, 2022년부터 보령의 대표이사도 함께 맡고 있다.
보령은 2024년 연결기준 매출 1조 171억원을 기록하며 창사 이래 처음으로 연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705억원으로 전년보다 3.2% 늘었고, 당기순이익은 728억원으로 81% 증가했다.
김 대표도 조직문화 혁신, 수익성 강화와 함께 신사업인 우주 헬스케어 분야를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1월에는 미국 상업용 우주정거장 기업 액시엄스페이스와 국내 합작법인 설립 절차를 완료하고 브랙스 스페이스(BRAX SPACE)를 공식 출범했다.
1994년생 전병우 삼양식품 상무는 삼양식품 창업주 고(故) 전중윤 명예회장 손자이자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의 장남이다. 2019년 삼양식품 해외사업본부 부장으로 입사한 후, 2023년 상무로 승진해 현재는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략총괄과 삼양식품 신사업본부장을 겸직하고 있다.
2024년 삼양식품은 연결 기준 매출 1조 7300억원, 영업이익 3442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45%, 영업이익은 133% 증가했다. 전 상무는 글로벌 시장 확대와 함께 식품과 과학을 융합한 '푸드케어' 분야로 삼양식품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성장 둔화와 내수 위축, 미국 트럼프 2기 출범 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기존 방식만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들 기업은 차세대 리더를 앞세워 유연한 조직문화 구축, 신사업 발굴 등을 핵심 전략으로 삼아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