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낙찰가 2조5000억원이 넘는 이동통신용 주파수 경매가 오는 29일 시작된다. 이동통신사 입장에선 수 조원이 걸린 주요 경영 이슈다. 경매 방식도 매우 복잡해, 이통 3사도 수 백 가지 시나리오를 통해 경매전략을 세울 정도다.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국내 통신3사 공히 LTE 서비스 수준을 비슷하게 유지해 온 만큼, 주파수에 따라 소비자는 직접적인 서비스 품질이나 요금 격차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흥미진진하다. 이번 경매로 '승자의 저주'가 나타날 것인지, 경매로 상대적 이득을 보는 회사는 누군지, 예상 시나리오는 무엇인지 등을 살펴봤다.[편집자]
'24시간 출입통제와 함께 도청장치 설치 유무를 매일 점검합니다. 사전 등록해 보안검사를 마친 사무기기 이외에는 일체의 통신기기와 전자장치 반입이 금지됩니다. 모든 상황은 CCTV로 녹화됩니다'
영화 007 시리즈 이야기가 아니다. 이동통신용 주파수 경매를 위한 보안절차다. 최소 경매 낙찰가가 2조5000억원을 상회하는 만큼, 경매과정에서의 담합 등 불공정성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매기간 수 일만에 수 천억원에서 조 단위의 천문학적 비용이 결정된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경매에 참여하는 이통3사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또 자칫 원하는 주파수 대역을 확보하지 못하면 서비스 품질을 높이려 하는 전략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원하는 주파수 대역을 확보하더라도 비싸게 사올 경우, 감가상각 규모가 커져 이익에 치명상을 입는다.
주파수 경매가 B2C가 아닌 B2B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관심도가 높은 이유다.
◇주파수, 넌 누구니
그렇다면 주파수란 무엇일까.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 음성통화는 물론 인터넷 검색, 동영상 시청을 자유롭게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서비스가 무선에서 이뤄지는 것은 주파수가 고용량 음성·텍스트·영상데이터를 빠르게 실어 날라주기 때문이다. 다만 주파수는 유한한 자원이다. 공장을 지으려면 먼저 토지를 확보해야 하는 것처럼, 각종 무선서비스를 확장하려면 먼저 주파수를 확보해야 한다.
미래부 관계자는 "트래픽 증가 추세를 감안하면 현재 LTE 주파수 260㎒폭 유지시 2017년말 트래픽 밀집지역에서부터 네트워크 수용 용량이 포화돼 무선서비스 품질이 저하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이번 주파수 경매가 끝나면 망구축 기간을 고려해 2020년 3분기까지 트래픽 포화 문제는 해소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주파수 확보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섰다면, 다음 문제는 어느 대역 주파수를 확보하는 것이 유리한가다.
주파수는 대역 마다 성질이 다르다. 700㎒ 처럼 저대역 주파수는 주파수의 뻗어 나가는 성질(직진성)과 장애물을 피해 돌아나가는 성질(회절성)이 우수해 1㎓ 이상 고대역 주파수에 비해 기지국 투자비를 아낄 수 있다. 고대역인 1.8㎓, 2.1㎓, 2.6㎓ 대역은 LTE 국제표준 주파수로 기술 발전에 따라 활용도가 높다. 상호 다른 대역을 묶어 통신속도와 용량을 확장하는 기술구현이 가능하다.
미래부 관계자는 "2013년 9월 LTE용 광대역 주파수 할당 이후 상호 다른 대역 주파수를 묶는 주파수집성기술(CA)을 통해 LTE-A 서비스가 본격화 됐다"면서 "현재 3대 대역을 묶는 3CA 서비스를 제공중이지만, 향후 3개 대역을 묶는 시대도 도래할 것이다"고 말했다. 즉 이번 주파수 대역을 통해 이통3사의 광대역 전략이 좀더 활발해질 전망이다.
◇주파수 배분법 '경매'
주파수는 정부가 소유한 자원이다. 때문에 정부는 필요 사업자에게 적절하게 주파수를 배분해야 할 의무가 있다. 배분법으로 당초에는 할당방식이 활용됐다. 정부가 각사 수요를 파악한 뒤 심사해 일정 대가를 받고 일정기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2011년부터 경매방식으로 전환됐다. 정부가 경매 참여자격을 심사한 뒤, 높은 가격을 써낸 사업자에게 일정기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세부계획에 따르면 이번 경매는 오는 29일 오전 9시 시작된다. 경매는 2단계를 걸쳐 진행된다. 1단계에선 원하는 주파수 대역마다 통신사들이 최대 50차례 입찰가를 번갈아 쓰는 방식이다. 1단계에서 결정이 안나면 2단계로 비공개 입찰가를 써내 최고가를 낸 업체가 낙찰받는다. 50차례 경매시 입찰자는 직전 라운드의 승자 입찰액에 입찰증분(0.75%)이 더해진 금액(최소입찰액) 이상으로 입찰할 수 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각 사가 입찰서를 작성·제출하는 제한시간은 동시오름입찰에서는 40분, 밀봉입찰에서는 4시간이 주어진다. 입찰 제한시간을 감안할 때 오름입찰은 하루에 약 7라운드 내외로 진행될 수 있을 전망이며, 최대 50라운드까지 진행될 경우 약 8일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감안하면 5월11일경 최종 낙찰자가 결정된다.
◇주파수 낙찰가, 이통3사 경영실적 영향 미쳐
이번에 경매에 나온 주파수 대역은 700㎒ 대역 40㎒폭, 1.8㎓ 대역 20㎒폭, 2.1㎓대역 20㎒폭, 2.6㎓ 대역 40㎒폭 및 20㎒폭 등 5개 블록 총 140㎒폭 이다. 2.1㎓ 경매대역은 할당대역을 특정하지 않고, 경매 후 할당사업자 인접대역으로 조정키로 했다.
주파수 용도는 주파수 사용기한이 대역별로 5∼10년인 점을 감안, 5G 등 기술진화에 따라 새롭게 도입되는 표준방식을 수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700㎒, 2.6㎓ 등 광대역(40㎒폭) 2개와 인접대역과 광대역화가 가능한 2.1㎓ 대역(20㎒)의 경우 사업자 별로 1개 까지만 할당 받도록 했다. 낙찰총량은 사업자당 최대 60㎒폭까지다. 예를들면 신규 광대역 1개(40㎒폭)와 협대역 1개(20㎒폭) 또는 2.1㎓ 광대역 1개(20㎒폭)와 협대역 2개(각 20㎒폭)까지 확보가 가능하다.
관심을 끌었던 최저 경쟁가격은 700㎒ 대역(A블록, 40㎒폭 10년 기준) 7620억원, 1.8㎓ 대역(B블록, 20㎒폭 10년 기준) 4513억원, 2.1㎓ 대역(C블록, 20㎒폭 5년 기준) 3816억원, 2.6㎓ 대역(D블록, 40㎒폭 10년 기준) 6553억원, 2.6㎓ 대역(E블록, 20㎒폭 10년 기준) 3277억원이다. 이를 단순 합산하면 2조5000억원이 넘는다. 이통3사가 주파수를 아무리 싸게 사와도 총액이 2조5000억원 이상이라는 얘기다. 특히 SK텔레콤과 KT가 재할당 받기로 한 2.1㎓ 대역 주파수도 할당대가 산정기준뿐 아니라 이번 경매 낙찰가를 함께 평균한 가격으로 받기로 해 가격이 올라갈 전망이다.
즉 주파수 경매는 일반 소비자에겐 체감도가 떨어지지만, 사업자 측면에선 조 단위 비용이 들어가는 미래수익 결정 사안이다. 때문에 이를 투자자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양종인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장기 성장 인프라 확충을 통한 경쟁우위를 확보하려면 경매에 참여해야 하나, 2∼3년간은 추가 주파수로 인한 매출 증대가 미미해 수익에 부담이 된다"면서 "비용은 주파수 확보 초기부터 곧바로 반영되나 투자대금 회수에는 장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