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 산업인 게임에선 부자가 많다. 잘 만든 게임 하나로 돈벼락을 맞은 창업자나 개발자가 자주 등장한다. 회사를 키워 지분 가치를 점프시키거나, 과감한 투자 회수 및 재창업, 화려한 복귀로 세간의 이목을 끄는 슈퍼리치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외부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돈이 얼마나 많은 지도 명확하지 않다. 게임만큼 흥미로운 이 분야 부자들의 베일을 벗겨본다. [편집자]
한 주요 게임사의 임원들 상당수가 최근 자사주 사모으기에 열중하길래 회사 관계자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게임 산업이 워낙 핫(Hot)해지고 있기 때문이란다. 메이저 업체들이 최대 실적 행진을 하고 있고 펄어비스·블루홀 같은 유망 업체가 깜짝 놀랄만한 성과를 거두면서 게임이 재조명 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자신들의 회사 주가도 언제 반등할지 모르니 미리 사모으고 있는 것이라고 귀띔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주식 시장에서 돈이 몰리고 있는 종목이 게임주(株)다. 몇몇 대형사를 비롯해 한동안 소외됐던 일부 중소형 게임사까지 힘을 받고 있다. 여기에 지난 25일 새 정부의 4차산업혁명 정책을 지휘할 4차산업혁명위원회 수장에 다름 아닌 장병규(44) 블루홀 이사회 의장이 위촉되면서 침체됐던 업계에 모처럼 활기가 돌고 있다.
게임 업계가 주목하는 장 의장은 손을 대는 것 마다 '대박'을 터트려 '미다스의 손(Midas touch)'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상당한 주식 및 현금 부자이기도 하다. 17년 전 네오위즈 상장으로 1차 주식 대박을 터트렸으며 11년 전에는 검색업체 '첫눈'을 네이버에 매각해 막대한 현금을 손에 쥐기도 했다. 현재 장 의장이 이끄는 게임사 블루홀의 주가가 장외 시장에서 급등하면서 그의 보유 주식 가치도 뛰고 있다. 무려 1조원에 달한다.
◇ 네오위즈 주식 현금화 270억
장 의장은 엘리트 코스를 밟은 수재다. 대구과학고등학교를 나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과에 입학했다.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박사 과정 중 나성균 현 네오위즈홀딩스 대표와 함께 1997년 6월 네오위즈를 세웠다.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인 나 대표가 경영을 맡고 장 의장은 KAIST 출신들을 대표해 기술 개발을 맡는 형식으로 공동창업했다.
네오위즈에서 인터넷 자동접속 프로그램 '원클릭'과 웹기반 채팅서비스 '세이클럽' 개발을 주도했다. 이들 서비스가 연이어 성공하면서 네오위즈는 2000년 6월 코스닥 시장에 화려하게 상장했다.
당시 공모가(3만5000원) 기준으로 장 의장의 보유 주식(118만주·15.71%) 가치는 412억원에 달했다. 네오위즈 상장 직후 장 의장은 최대주주인 나 대표(18%)에 이어 2대 주주이기도 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27세였다.
네오위즈가 게임 사업에 집중하자 인터넷사업 부문을 이끌던 장 의장은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평소 관심을 가졌던 검색 기술에 도전하기로 했다. 장 의장은 네오위즈를 나와 2005년 5월 검색기술 전문업체 '첫눈'을 창업했다.
첫눈 창업 시기를 전후해 장 의장은 네오위즈 보유 주식을 매각해 현금화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수차례 장내매도를 통해 총 182억원의 현금을 거머쥔 것으로 확인된다.
네오위즈 주식 뿐만 아니라 2007년 게임 사업부문을 인적분할해 설립한 네오위즈게임즈(현 네오위즈) 주식도 여러 차례 매각을 통해 총 90억원을 확보한 것으로 집계된다. 네오위즈는 2007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지금의 네오위즈홀딩스로 사명을 바꿨다.
장 의장은 네오위즈 주식으로 마련한 현금을 종자돈 삼아 새로운 사업에 도전했다. '창업-성장-매각-재창업'의 모범적인 선순환을 이뤘다. 첫눈 매각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장 의장은 첫눈 설립 이듬해인 2006년 6월에 보유 지분(100%) 전량을 네이버에 매각했다. 매각가는 350억원으로 첫눈 창업 당시 투입자본 50억원의 7배에 달했다. 장 의장이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게 된 계기가 됐다.
▲ 장병규 블루홀 이사회 의장. |
◇ 블루홀 주가 장외서 치솟아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게임과 벤처 투자로 영역을 넓혔다. 첫눈 매각 이듬해 게임 개발사 블루홀스튜디오(현 블루홀)와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인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를 나란히 설립했다.
블루홀은 신생 업체답지 않게 대작 온라인게임 '테라'를 개발하면서 게임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본엔젤스는 동영상 검색업체 '엔써즈'나 모바일메신저 '틱톡' 등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해 유명해졌다.
특히 KT가 2011년에 인수한 엔써즈는 기업가치가 450억원으로 평가되면서 본엔젤스 초기 투자 금액의 10배에 달하는 투자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블루홀이 개발해 2011년 1월 출시한 테라는 서비스 초반에 기대만큼의 흥행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2015년에 들어서야 북미 지역 등에서 뒷심을 발휘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국내에선 지난해 1월 퍼블리싱(유통) 업체를 바꾸면서 그나마 흥행 늦바람을 탔다.
이 과정에서 블루홀은 유망 개발사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벌이기도 했다. 2015년부터 블루홀지노게임즈(옛 지노게임즈)를 비롯해 스콜과 피닉스게임, 마우이게임즈 등을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했다. PC 온라인 뿐만 아니라 모바일과 가상현실(VR) 등 새로운 플랫폼으로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개발사 발굴에 나섰던 것이다.
블루홀이 최근 흥행 대박을 터트린 '배틀그라운드'는 이 때 사들인 블루홀지노게임즈가 개발한 것이다. 이 게임은 올 3월 세계최대 PC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Steam)을 통해 출시해 돌풍을 일으키면서 현재 동시접속자수 1위를 기록했다.
출시 6개월만에 패키지 판매량 1000만장, 13주만에 누적 매출 1억달러 돌파 등 깜짝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출시 이후 이렇다할 마케팅 활동 없이 순전히 입소문만으로 흥행 바람을 탔다. 한국 게임이 글로벌 플랫폼에서 폭발적으로 인기를 모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배틀그라운드 성공에 힘입어 블루홀의 기업가치가 급격히 뛰고 있다. 장외주식거래 사이트 38커뮤니케이션에 따르면 블루홀 주가는 지난 26일 최고가인 75만원을 찍었다. 앞서 모바일게임사 넵튠은 지난 2월 블루홀 주식 17만주를 50억원에 사들였는데 당시 주식 평가액(주당 3만원)과 비교해 무려 25배나 불어난 것이다.
장 의장의 블루홀 보유 주식은 145만주(보통주 123만주·우선주 22만주)다. 전일 장외 시세(74만원) 기준으로 보유가치는 1조원에 달한다. 블루홀은 당장 기업공개(IPO)에 나서기 보다 게임 사업으로 마련한 자금으로 유망 개발사 인수합병(M&A)이나 투자를 벌이겠다는 계획이다. 장 의장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시리즈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