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튜버 '굴러라 구르' [사진=유튜브] |
구글의 세계 최대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가 다양한 유튜버를 소개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와의 대화' 열 네번째 주제는 '다양성'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각종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 제대로 알리기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채널이 늘어나며 많은 사용자의 공감을 얻고 있는 점을 반영한 겁니다.
지난 22일 서울 삼성동 구글캠퍼스에서 열린 이번 행사에선 밀레니얼 세대의 문제를 집중 조명하는 미디어 스타트업 '닷페이스'의 조소담 대표와 성소수자의 경험과 일상을 다루는 퀴어 유튜버 '수낫수', 여고생 김지우 양이 운영하는 채널 '굴러라 구르님'이 소개됐는데요.
저는 특히 굴러라 구르님을 집중 소개하고자 합니다.
굴러라 구르님은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여고생인데요. 그가 운영하는 채널은 구독자 수가 3만2000명 정도이고, 누적 조회수는 130만 건에 달합니다.
'SKY캐슬 같은 입시과외 주제의 드라마가 최고의 인기를 끄는 시대에 고3이 왠 유튜브?'라는 반응을 기대해서 집중 소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굴러라 구르님은 다리와 손이 다소 불편한 장애인입니다. 굴러라 구르님이란 채널명도 굴러다니는 휠체어를 뜻합니다. 이날 행사에도 굴러라 구르님은 휠체어를 타고 등장했습니다.
이런 시선 역시 편견일 수 있어 조심스럽지만, 행사 내내 가장 밝은 미소를 보여준 유튜버가 굴러라 구르님이라는 점에서, 몸이 불편하더라도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더 잘할 수 있다는 모습을 유튜브 영상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보여줬다는 생각입니다.
이제 소개를 본격 시작합니다. 굴러라 구르님은 유튜브를 시작한 계기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TV나 영화를 보면서 '장애인 연예인은 왜 없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가끔 장애인이 주인공인 영화를 봐도 비장애인이 연기를 하고, 눈물 쏙 빼는 신파극뿐이고요. 그 외에는 후원방송에서나 장애인을 볼 수 있었어요. 늘 그런 모습만 보여주니 더 차별이 생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불쌍하지 않아요. '나도 장애인인데 난 이렇게 살고 있다'를 보여주기 위해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꾸밈없이 솔직한 모습도 보였습니다. "사실 이렇게 거창하게 말했지만 그냥 '유튜브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동시에 제가 장애인이다보니 장애라는 주제가 자연스럽게 들어간 거고요."
그렇습니다. 몸이 불편한 자신을 알리기 위해 유튜브를 시작한 게 아니라, 다름 사람들처럼 '핫한' 유튜브를 하고 싶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굴러라 구르님도 유튜브를 시작한 사실을 처음에는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가족한테도. 영상을 제작하면서 큰 관심을 받은 영상들이 나오면서 가족과도 유튜버로 활동하는 사실을 알렸다고 해요.
이런 대목도 장애인이면서 유튜브를 시작한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게 아니라, 그저 유튜브를 하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는 뉘앙스입니다. 그런 거 있잖아요. 남몰래 시작해서 조금은 잘 됐을 때 자랑하며 알리고 싶은 마음.
현재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모두 알렸고, 이들의 응원 덕에 역동적인 영상도 찍을 수 있게 됐다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무엇보다 굴러라 구르님은 일반적인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어 친구들의 '바뀐' 반응에서도 보람을 느낀다는데요.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은 가족보다 많은 시간을 친구들과 보내기에, 친구들이 자신을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이런 친구들도 굴러라 구르님의 영상을 본 뒤에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됐다는 겁니다.
"역동적인 영상을 찍고 싶을 때 동생의 도움을 받는데요. 동생은 '최저시급 올랐는데 왜 8000원도 안 주냐?'면서도 도와주고, 아빠와 엄마는 영상 주제를 제안해주기도 해요. 친구들이 제 영상을 보고 예전보다 제 입장에서 더 생각해주고 '이건 불편했을 것 같다, 미안하다'며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아빠 역시도 '너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영상을 보면서 많이 배운다'고 하셨어요."
굴러라 구르님은 영상에 대한 독특한 감각도 있어 보였습니다. 굴러라 구르님은 다양한 주제를 영상에 담으면서도 '보는 사람들이 한번쯤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것'도 다룬다고 합니다.
"시청자에게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고 가만히 있기도 해요. '나는 이런 거 이렇게 느꼈는데'라며 문제를 넘기고 그 사람도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요. 저는 중학교 때부터 단편영화를 제작했어요. 지금도 영화 동아리 부장으로 활동해요. 연출이나 영화를 찍는 게 더 편한데, 유튜브는 제 스토리를 담는거라 더 새롭고 재밌어요."
그러면서 일본인 장애인을 인터뷰하기도 했답니다. 직접 질문하고 번역하고 자막까지 만들어 가장 애착이 가능 영상 중 하나라고 합니다. 아울러 일본 사회가 한국보다 장애인 인권 의식이 높은 것도 알게 되어 인상적이었다고 해요.
굴러라 구르님은 자신을 보면서 용기가 생겼다는 반응에 큰 뿌듯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저를 보면서 무언가에 도전하기 시작했다는 말도 들었어요. 장애를 가진 친구들한테 '할 수 있다'는 말을 많이 해 줬으면 좋겠어요. 넌 장애인이니까 이건 못 해, 이건 어렵지, 하는 이야기 들을 많이 듣다보니 그 친구들도 무의식중에 본인의 가능성을 줄여버려요."
유튜브라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있기 때문에 소수자들도 다양한 이야기를 다양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유튜브를 시작한 것이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성장의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남들의 시선이 불편할 때가 많았어요.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했고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확실히 긍정적인 자기표현에 익숙해졌다고 느껴요. 사진을 찍을 때 휠체어를 감추고 찍기도 했었는데요. 최근에는 제가 걷는 모습을 처음으로 촬영해 업로드 하기도 했죠."
▲ (왼쪽부터] 굴러라 구르님, 수낫수, 조소담 닷페이스 대표. [사진=유튜브] |
공식 행사가 끝난 뒤 물어보니, 굴러라 구르님은 대학도 관련 분야 전공으로 진학해서 꿈을 이어가고 싶다고 하는데요. '유치한 질문일 수 있지만' 돈을 많이 벌면 무얼 하고 싶냐고도 물어봤는데 대답 역시 참신했습니다.(참고로 수낫수는 팀을 꾸려서 영상 제작을 더욱 활발하게 하고 싶다고 했고, 조소담 닷페이스 대표는 건물을 짓고 거대 미디어 권력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최근에 운동을 해봤는데 재밌더라고요. 돈을 많이 벌면 체육관을 만들어 장애인 청소년들이 운동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이처럼 다양한 크리에이터들이 활동하며 꿈을 펼칠 수 있는 유튜브는 너무 많은 채널이 생겨나 레드오션이 됐다고도 하는데요. 이번 행사는 우리 사회 곳곳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닷페이스 조소담 대표, 수낫수가 이날 밝힌 성공 비결로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좋은 콘텐츠라서 인기를 얻은 게 아닐까요? 영상이 저희 밀레니얼 세대(1982~2000년 사이에 태어난 신세대)에서 일반적인 문법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은 영상이 많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공들여서 영상을 만들면서 무엇보다 저희 세대가 필요로 하는 변화, 이야기하기 어려운 주제에 대해 말하기 때문에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조소담 닷페이스 대표)
"나와 같은 정체성의 사람들이 나와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다'라고 말해주는 것에 대한 공감, 말 그대로 우리여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수낫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