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틱톡'과 같은 짧고 간결한 형태의 '숏폼(Short-form) 동영상'이 대세다. TV보다 모바일 기기가 익숙한 Z세대(1995년 이후 태어난 세대)가 동영상 플랫폼의 주이용자로 부상하면서 영상 콘텐츠의 길이는 점차 짧아지는 추세다. 이러한 흐름은 글로벌 업체들뿐 아니라 국내 IT 및 미디어 업계까지 확산되는 모양새다.
개인정보 유출 논란에도…'틱톡'의 부상
2016년 9월 중국 바이트댄스가 내놓은 틱톡은 숏폼 동영상 서비스의 원조격이다. 15초에서 최대 1분까지 이용자가 직접 만든 짧은 동영상을 업로드하고 이를 주변 지인들과 공유할 수 있다.
미국은 틱톡 이용 시 사용자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며 교통안정청(TSA)까지 나서 사용 금지 조치를 내리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틱톡의 성장세는 엄청나다.
미국 앱 분석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지난해 틱톡은 누적 다운로드수 7억5000만회를 돌파했다. 같은 기간 각각 4억5000만회, 3억회를 기록한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보다 각각 1.7배, 2.5배 많은 수준이다. 올해 2월에는 앱스토어·구글플레이스토어 다운로드수가 전년 동기 대비 96% 증가해 1억1129만건으로 최고 기록을 갱신하기도 했다. 이를 합하면 틱톡의 총 누적 다운로드수는 17억회에 달한다.
또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조사기관 앱애니에 따르면 틱톡은 지난해 사용시간이 680억 시간 늘어나며 최근 2년 동안 동영상 스트리밍 앱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틱톡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스타트업 중 하나로 기업가치가 750억달러(약 87조원)에 달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최근 블룸버그는 바이트댄스가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13억3500만 달러의 신디케이트 대출(여러 은행이 구성하는 집단 대출)을 확보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국내 1020세대들에게도 틱톡은 이미 대세앱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지난해 아이스크림에듀가 전국 초등학생 5937명을 대상으로 '2019년 결산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51%(3048명)가 올해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유행한 아이템으로 틱톡을 꼽았다.
뉴욕타임즈는 틱톡의 성공요인으로 기존 동영상 플랫폼에 비해 동영상 편집의 진입장벽을 낮춘 것이라고 봤다. 틱톡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영상에 필터, 스티커, 텍스트 등 각종 효과를 삽입하거나 영상 화면을 잘라내는 등 편집이 간편하다. 누구나 쉽게 동영상을 촬영해 올릴 수 있는 것이다.
틱톡이 '밈(meme) 문화'의 중심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밈이란 특정 사진이나 영상에 재미난 말을 적어 다시 포스팅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에 나오는 장면을 '짤(인터넷상에서 떠도는 사진이나 그림)'로 만들어 적절한 상황에 쓰는 것도 밈의 하나다.
틱톡에서는 재밌는 콘텐츠가 다른 사용자에게 끊임없이 복제돼 재생산된다. 특히 유명한 사진과 영상을 재가공하는 것을 넘어 각종 '챌린지'를 통해 이용자가 직접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최근 유행했던 가수 지코의 '아무노래 챌린지' 역시 틱톡에서 처음으로 시작됐다.
세계적인 보이그룹 BTS(방탄소년단)도 최근 4집 정식 발매 12시간 전 타이틀곡을 틱톡에서만 최초로 선공개하고 '온 챌린지'를 진행해 60시간 만에 1억뷰를 돌파했다. 젊은 층에서는 틱톡이 타 플랫폼보다 파급력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OTT도 숏폼으로 본다
최근에는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서도 숏폼 형태가 등장했다. 6일 정식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모바일 전용 OTT 플랫폼 '퀴비'다. 퀴비는 드림웍스의 창업자인 제프리 카젠버그와 이베이의 최고경영자(CEO)였던 멕 휘트먼이 참여해 출시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으며, 총 18억 달러(2조2000억원)의 투자금을 사전 유치했다.
퀴비가 여타 OTT와 다른 점은 '10분 내외의 숏폼 콘텐츠'를 '모바일'로만 제공한다는 것이다. TV 등 대형 디스플레이로 영상을 시청할 때는 60분 이상의 콘텐츠도 쉽게 소비할 수 있었지만, 스마트폰을 이용할 때는 이보다 짧은 콘텐츠가 적합하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퀴비는 ▲영화 ▲예능·다큐 ▲일일 프로그램·뉴스 등의 콘텐츠를 짧은 분량의 클립으로 나눠 매일 공개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2시간 분량의 영화도 한 편에 10분 분량의 챕터로 나눠 하루에 한 편씩 업데이트하는 것이다.
여기 더해 퀴비는 모바일 최적화를 위한 '턴스타일' 기술도 도입했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0'에서 선공개해 화제를 모았던 기술이다. 스마트폰 화면을 가로로 두면 기존 콘텐츠가 제공되고, 세로로 돌리면 특정 화면을 강조해준다.
예를 들어 영화 내용 중 보안 카메라를 통해 집안의 침입자를 확인하는 장면이 있다면, 가로로 시청했을 때는 일반 영화와 같은 화면이 나오지만 세로로 보면 주인공이 보안 카메라로 보는 화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시청자는 마치 자신이 작품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OTT로서의 차별화를 위해 오리지널 콘텐츠에도 집중한다. 올해 안으로 175개 콘텐츠를 공개할 예정이다. 현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협업해 일몰 후에만 볼 수 있는 호러 드라마를 개발 중이다. 시청자의 스마트폰이 나타내는 시간을 확인해 시청 지역의 일출과 일몰 시간을 파악, 해가 진 후에만 시청할 수 있는 이른바 '애프터 다크(After Dark)'다.
세간의 기대감을 반영하듯 출시 첫날이었던 지난 6일 퀴비는 접속자가 폭등하면서 약 한 시간 동안 서버 장애를 겪었다. 센서타워에 따르면 이날 미국과 캐나다에서 퀴비 앱을 설치한 이들은 30만명에 달했다.
센서타워는 "앞서 지난해 11월 디즈니플러스 출시 당시 400만명이 몰렸던 것에 비해 7.5% 수준이지만 사전 다운로드 기간이 길어 출시일 전에 상당수의 다운로드가 진행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미디어 소비 핵심층 'Z세대' 겨냥
이같은 숏폼 콘텐츠의 등장은 Z세대로 대표되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를 공략하기 위해서다. Z세대가 문화·경제·사회 등 여러 분야에서 트렌드를 주도하기 시작하면서 영상 콘텐츠 역시 이들에게 적합한 숏폼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 셈이다.
Z세대는 1995년 이후 출생한 세대로,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기기를 접한 디지털 네이티브(디지털 원주민) 세대다. 이들은 미디어와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수많은 정보를 접하고 여기서 취득한 정보를 기반으로 소비하는 것이 생활화 돼 있다. 글 보다는 영상에 더 익숙하고 긴 영상 보다는 짧은 클립형 영상을 즐겨본다. 60분의 콘텐츠 보다는 10분 분량 콘텐츠가 6개 묶여있는 것을 선호한다.
실제 월스트리스저널에 따르면 미국의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는 스마트폰으로 한 번의 콘텐츠를 시청하는데 6분30초의 시간만을 소비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유튜브·네이버도 숏폼 도전장
이에 따라 IT 및 미디어 업계에서는 속속 숏폼 콘텐츠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가장 큰 변화가 기대되는 곳은 유튜브다. 여러 외신을 종합하면 유튜브는 틱톡에 대응하기 위해 연말 론칭을 목표로 '쇼츠(Shorts)'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유튜브 모바일 앱에서 짧은 형식의 비디오를 공유할 수 있는, 틱톡과 유사한 형태의 서비스다.
별도의 앱을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 앱 내에서 이용할 수 있는 기능이기 때문에 접근성이 높고, 틱톡에 비해 많은 수의 음악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해 이용자들의 만족도 또한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IT·음악 전문 매체 하이프봇은 "유튜브는 창립 이후 실질적인 경쟁자가 없었다"며 "틱톡 등장 이후 유튜브는 이용자 이탈 방지를 위해 쇼츠를 출시, 새로운 경쟁에 대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에서는 미디어 시장까지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모바일 등에서 주로 나타나던 숏폼 형식을 전통 미디어까지 활용하고 나선 것이다. 최근 tvN은 '신서유기 외전:삼시세끼-아일란드 간 세끼'와 '라면 끼리는 남자', '마포 멋쟁이' 등을 연달아 선보이고 있다. 기존 예능의 방식을 탈피해 5분 내외만 방송되며, 방송 후 유튜브 채널을 통해 출버전을 공개한다.
OTT에서도 이와 같은 흐름은 이어진다. KT의 자체 OTT 플랫폼 시즌에서 방송된 '연남동 패밀리'는 회당 18분가량의 영상을 총 8부작으로 제작했다. 이밖에도 '인 유어 드림', '우웅우웅', '7일간 로맨스' 등 대부분의 작품이 15분 내외 영상으로 제작되고 있다.
네이버도 오는 10일 네이버 블로그에서 활용할 수 있는 숏폼 동영상 편집 서비스 '블로그 모먼트'를 출시할 예정이다. 블로그 모먼트는 2분 이하의 짧은 동영상을 누구나 쉽고 간단하게 제작·편집할 수 있는 동영상 에디터다. 최종 결과물은 틱톡과 유사한 형태가 되며 네이버 블로그 홈 내 모먼트 목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진투자증권 한상웅 연구원은 "미국 텔레비전계 최고의 상으로 손꼽히는 에미상(Emmy Award)에는 2016년 6개의 숏폼 부문의 시상이 신설돼 전통 미디어 방송매체에서도 숏폼을 하나의 장르로 인정하고 있음을 입증했다"며 "국내 동영상 플랫폼 역시 언제 어디서나 잠깐의 찰나에도 소비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