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골적인 성희롱과 막무가내식 요구. 콜센터 상담사들이 꼽는 '진상 고객' 사례입니다. 상담사는 다양한 직업 가운데 감정노동 강도가 가장 세다고 할 정도로 극한의 업무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콜센터 근로자들은 일하면서 겪는 스트레스가 심해 이직률이 높습니다. 운영 회사 입장에선 직원들의 잦은 퇴사와 이로 인한 신입 교육 비용의 증가 등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최근 정보통신기술(ICT) 업계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챗봇 등의 첨단 기술을 콜센터에 도입, 사람이 하던 단순·반복 업무 등을 기계에 넘기거나 기술의 힘을 빌려 업무 효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업무 만족도를 높이고 상담원 이직률을 낮추는 사례가 나오고 있는데요. 콜센터 근무자의 고된 업무를 알아보고 기술의 발달이 콜센터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기사분 몇시에 오기로 했죠. 그 기사 이름과 주소 부탁합니다. 서부지검 검사입니다. 기사 이름 주소 빨리요. 그 기사 사진 지금 부르는 번호로 보내세요"
한 인기 드라마에서 극중 검사가 콜센터 상담사에게 케이블TV 기사 직원의 개인정보를 다그치며 요구하는 장면입니다.
이에 대해 상담사들은 아무리 검사라 해도 적법한 절차 없이 개인정보를 함부로 내어줄 수 없다고 합니다. 사실과 다르게 묘사됐다는 지적입니다. 상담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장면이 TV에 나오는 것도 안타깝다고 합니다.
실제로 콜센터 근로자들은 고객과의 긴장 상황에 자주 놓이면서 고객들로부터 욕설이나 반말을 듣기 쉬운데요.
한 연구에 따르면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콜센터 직원들은 근골격계 통증과 눈의 긴장, 목의 통증 등을 호소할 정도로 만성적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직무 스트레스가 지속되거나 정도가 심하면 우울증과 불안장애, 정신신체 장애 등의 정신과적 질환도 몰고 오는데요.
그야말로 극한 직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콜센터 종사자의 이직률은 연간 약 22%에 달할 정도로 꽤 높은 수준입니다.
우리나라 콜센터는 1990년대 초반에 등장해 1990년대 말부터 크게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홈쇼핑을 비롯해 유통산업과 제조업, 운수업 등 여러 산업 분야로 콜센터가 확대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더구나 ICT 기술의 발달로 전화를 통한 고객관리 업무와 마케팅 업무가 크게 늘면서 콜센터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콜센터가 많아지면서 기업들은 고객 만족과 서비스 향상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콜센터 근로자들은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안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데요. 대면 서비스가 아닌 전화를 통한 비대면 상황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라 고객들로부터 언어 폭력을 당하기 쉽습니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 상담사 권익 보호를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요. 방송통신위원회는 얼마 전 민원인으로부터 각종 언어폭력에 시달리는 케이블TV 상담사를 위해 '상담사가 먼저 끊을 수 있습니다!'란 캠페인을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민원인이 인격모독 같은 언어폭력을 가하거나 성적 농담 및 희롱 등 상담사가 성적 수치감을 느끼게 한다면 상담사 판단 아래 '법적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멘트 등을 단계별로 조치할 수 있게끔 하는 것입니다.
ICT 업계에선 상담사의 업무 효율을 높이고 근무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인공지능 등의 첨단 기술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카카오 사례를 꼽을 수 있는데요.
카카오는 2018년 12월 기존에 제공하던 전화상담 서비스를 과감히 중단하고 채팅상담과 챗봇을 전격 도입했습니다.
전통적인 콜센터를 미래형 서비스로 탈바꿈 시킨 이유는 이렇습니다. 고객대응 업무의 특성상 전화상담은 감정노동으로 잦은 스트레스를 받아 퇴사율이 높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회사 입장에선 직원들의 퇴사시마다 신규 채용이나 교육비용의 증가로 악순환이 나타나는데요.
카카오가 전화상담을 중단하고 채팅상담으로 전환하면서 놀랄 만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일단 고객의 상담 연결률이 96%로 올라가는 등 고객 품질 만족도가 크게 높아졌습니다. 아울러 상담직원의 이직률은 0에 수렴할 정도로 떨어지는 등 사원의 만족도가 향상됐습니다.
카카오는 상담 트렌드가 기술의 진화와 함께 변하면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챗봇이나 채팅을 자연스럽게 적용할 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과거엔 주로 전화상담만 했으나 스마트폰과 메신저의 등장으로 상담 패턴이 다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고객대응을 위해 메신저 기반 채팅 상담센터를 속속 도입하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달로 대화형 인공지능의 수준이 일정 궤도에 올라온 것도 한몫했습니다. 2017년 아마존의 AI 스마트스피커 에코(알렉사) 출시를 계기로 대화형 인공지능이 상용화 단계에 이르렀는데요.
상담방식도 단순 업무는 챗봇이, 다소 어려운 업무는 사람이 하는 방식으로 업무분장이 나타났습니다. 올 들어선 코로나19 사태로 콜센터 집단 감염이 확산하면서 AI 챗봇을 활용하는 기업이 더욱 확대되고 있습니다.
주로 오랫동안 고객상담 업무를 하면서 노하우를 쌓아온 통신사들이 첨단기술을 콜센터에 집어넣고 있습니다. 자사 콜센터 뿐만 아니라 외부 기업에 관련 솔루션을 제공하면서 기업시장(B2B)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콜센터의 기술 진화는 당장 내달부터 일반인들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게 되는데요. 국내 이동통신시장의 절반 이상 점유율을 차지하는 SK텔레콤은 내달부터 통신료 미납 내역 안내를 사람 대신 AI로 서비스할 예정입니다.
SK텔레콤은 '누구 인포콜(NUGU infocall)'이라는 AI상담사 서비스를 얼마전 선보였습니다. 고객센터의 단순∙반복 안내 업무를 담당하는 이 서비스는 앞으로 고객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통신비 미납 내역을 알려준다고 합니다. 매월 약 65만건의 요금 안내를 진행할 예정인데요.
SK텔레콤은 인공지능 '누구' 기술을 고도화하면서 AI가 사람에 거의 근접할 수준의 자연스러운 대화를 수행할 수 있게끔 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누구 인포콜 도입을 통해 고객센터의 단순∙반복적인 업무는 AI상담사가 대신하고 기존 상담사들은 복잡한 상담 대응에 집중함으로써, 고객센터의 업무 효율화 및 고객 만족도가 향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KT 역시 적극적으로 AI 기술을 콜센터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KT 콜센터에는 월평균 420만건의 상담 전화가 걸려오는데요.
KT는 콜센터에서 이뤄지는 상담 내용을 실시간으로 대화록을 만들어 상담사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상담사가 고객과의 대화 내용을 일일이 받아 적지 않아도 자동으로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하는 것입니다.
이는 상담 내용을 정확히 분석하고 제대로 된 답변을 찾아주기 위해서입니다. 고객에게 필요한 추천 답변을 AI가 자동으로 골라주거나 상담결과를 자동분류 및 요약해주는 솔루션도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AI 목소리 인증 기술을 활용해 고객의 `목소리`로 본인 확인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그 결과 본인 확인에 걸리는 시간은 19초, 상담 시간은 15초 각각 단축됐다고 합니다.
KT는 자사 콜센터에 적용한 기술들을 외부 기업들에도 적용하고 있습니다. 구현모 대표이사가 이른바 '탈통신'을 선언하며 강조한 기업고객(B2B) 시장을 진출하기 위해 콜센터 사업을 펼치고 있는 것인데요.
KT의 AI콜센터 솔루션을 적용한 라이나생명은 고객 민원이 5% 감소하고 오안내가 20% 개선되는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LG유플러스는 자사 홈페이지와 온라인 쇼핑몰 등에 AI 챗봇을 도입했습다. 챗봇은 모바일과 PC를 통해 휴대폰 상담을 하는데요. LG유플러스는 챗봇의 성능을 대폭 개선해 더욱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하도록 고도화했습니다.
인터넷 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도 챗봇 상담사가 24시간 근무하면서 상품 소개나 배송조회, 예약, 주문 등 다양한 문의를 자동 응대하고 있습니다.
AI챗봇의 확산은 국내를 넘어 세계적 추세입니다. 대표적으로 미국 아마존은 AI챗봇이 상품 구매부터 취소처리까지 모든 고객 상담을 사람의 개입 없이 진행하는 등 고객상담 서비스의 대부분을 AI챗봇에 맡긴다는 계획입니다.
시장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글로벌 챗봇 시장은 2016년 1억9080만달러에서 오는 2025년 10배 이상 확대된 12억5000만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