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대표이사 인선을 둘러싼 논란이 연일 끊이지 않고 있다. KT가 국민연금의 압박에 밀려 최고경영자(CEO) 선임절차를 다시 밟고 있는 가운데 이마저도 최근 여권에서 백지화를 요구하자 혼란이 커지는 모양새다. KT는 일단 오는 7일로 예정된 최종 후보자 결정을 그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달 말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대표 후보자가 낙마할 가능성도 있어 경영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6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KT 이사회는 7일 대표이사 후보자 4인 가운데 한명을 최종 후보로 확정할 예정이다. 여권을 중심으로 인선 중단 요구가 일면서 발표를 연기할 것이라는 관측이 흘러나왔으나 기존 일정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앞서 KT 이사회는 지난달 28일 33명의 사내외 후보자군 가운데 4명을 대표이사 후보 심사대상자로 압축한 바 있다. 최종 후보자는 박윤영 전 기업부문장(사장)·신수정 현 엔터프라이즈 부문장(부사장)·윤경림 현 그룹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임헌문 전 KT매스총괄(사장) 등 전현직 KT 임원으로 추려졌다.
하지만 이틀 뒤 국민의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KT 차기 대표 인선을 즉각 중단하라"는 기자회견을 열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이들은 "전체 지원자 33명 중 KT 출신 전현직 임원 4명만 통과시켜 차기 사장 인선이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해버렸다"며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공정·투명한 거버넌스가 이뤄져야한다. 그게 안되면 조직 내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일어나고 그 손해는 국민이 볼 수밖에 없다"며 KT를 우회적으로 압박했다.
지난 주말을 거치면서 '디지코'(DIGICO·디지털 플랫폼 기업)' 성과가 부풀려졌다는 내부 주장도 등장했다. 익명의 KT 전현직 임직원의 발언을 빌려 현 경영진이 통신투자를 소홀히 하고 영업실적을 부풀려 연임 성공을 위한 명분으로 삼으려 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디지코 사업은 구현모 현 KT 대표가 지난 3년간 집중적으로 추진했던 탈통신 전략이다. 앞서 구 대표는 연임포기를 선언한 뒤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23'에서 기자들을 만나 "디지코 KT를 계속 응원해주시기 바란다"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구 대표가 강한 애착을 갖고 추진해온 사업전략이 차기 대표 선임을 앞두고 송두리째 부정당하고 있는 것이다.
인선을 둘러싼 잡음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으면서 경영 공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사회에서 선정한 최종 후보자가 주주총회 문턱을 넘지 못할 경우, 임원 인사는 물론 주요 사업들의 추진도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사회 영향력도 흔들리고 있다. KT 이사회는 사내이사 2인과 사외이사 7인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5명(사내이사 2인·사외이사 3인)은 이달 말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으며, 2025년까지 임기가 남은 벤자민 홍 사외이사도 사퇴 의사를 밝힌 상태다. 대표 선임 절차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릴 경우 경영 공백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KT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CEO가 불명예스럽게 퇴진하는 등 수난을 겪었다. 이번에도 여권에서 특정 외부인사를 염두에 두고 현 경영진을 찍어내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규제 산업이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할 여지는 있지만, 회사 지분이 분산돼 있고 주주가 주인인 기업의 대표 선임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정부와 국회는 이사회가 독립성을 확보하고 주주의 이익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지 법·제도를 만드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KT 등 소유분산 기업뿐 아니라 재벌 기업 역시 상속으로 지분율이 희석되고 있다"며 "거버넌스의 핵심은 이사회에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우리가 어떤 스탠스(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고민해 봐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