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K이노엔의 위식도역류성질환 치료제 '케이캡(성분명: 테고프라잔)'의 미국 시장 진출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한발 앞서 동일 계열인 일본 다케다제약의 P-CAB(칼륨 경쟁적 위산분비 억제제) 치료제 '보퀘즈나(보노프라잔)'가 시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어 미국 시장 확대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HK이노엔, 미국서 다케다와 맞대결
HK이노엔은 올해 하반기 케이캡의 미국 임상3상을 마치고 미 식품의약국(FDA)에 품목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다. HK이노엔은 현재 미국 파트너사 세벨라와 함께 케이캡의 미란성, 비미란성 위식도역류성질환 미국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국내에서 비슷한 구조의 시험을 통과한 적이 있는 만큼 임상 평가지표를 충족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케이캡은 HK이노엔이 자체 개발한 P-CAB 계열 국산 30호 신약으로 미란성 위식도역류질환, 비미란성 위식도역류질환 등 국내에서 5개 적응증을 보유하고 있다.
케이캡은 1세대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PPI(양성자 펌프 억제제) 제제보다 빠른 약효발현과 긴 지속효과 등의 강점으로 출시 이후 곧바로 국내 시장을 제패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다케다제약이 미국 자회사 패썸 파마슈티컬스를 통해 차별화된 적응증과 용량 등으로 P-CAB 시장 진출에 성공, 빠르게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패썸 파마슈티컬스의 P-CAB 계열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보퀘즈나는 지난해 연말 FDA의 허가를 받고 '계열 내 최초 신약(퍼스트인클래스)'으로 미국에 진출했다. FDA로부터 승인받은 적응증은 '미란성 위식도 역류질환과 이로 인한 가슴쓰림 치료와 유지', '헬리코박터파이로이균 감염 치료'다.
앞서가는 보퀘즈나, 선두 공고히
케이캡은 보퀘즈나와 비교해 1년가량 뒤늦게 미국 진출을 앞두고 있는데다 보퀘즈나를 따라잡을 무기는 많지 않은 상황이다. 케이캡의 국내 임상과 보퀘즈나의 미국 임상 데이터를 단순 비교했을 때 케이캡은 보퀘즈나와 치료효과나 안전성 측면에서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케이캡과 보퀘즈나는 미란성 위식도역류성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에서 모두 PPI 제제보다 비열등성을 확인했다. 비미란성 위식도역류성질환의 경우 케이캡의 평가지표는 속쓰림과 위산역류, 보퀘즈나는 속쓰림 억제비율로 각각 43%, 44%를 기록했다. 비미란성 위식도역류성질환 임상에서 발견된 두 약물의 부작용은 메스꺼움, 두통 등 대부분 경증으로 모두 5% 내외로 보고됐다.
HK이노엔은 지난 2022년 케이캡과 보퀘즈나의 야간 위산 억제 효과를 비교했으나 큰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건강한 성인 16명을 대상으로 야간에 케이캡과 보퀘즈나를 투여한 결과 위산억제효과를 의미하는 '수소이온농도지수(pH) 4 이상' 시간이 케이캡은 전체 중 66%, 보퀘즈나는 60.5%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 결과를 두고 케이캡이 보퀘즈나보다 "약간 긴 위산 억제 효과를 보였으나 통계적 유의성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오히려 보퀘즈나는 약물 용량 측면에서 케이캡보다 경쟁 우위를 점하고 있다. 보퀘즈나가 미국을 포함한 각국 규제당국으로부터 허가받은 미란성 위식도역류성질환 치료제의 용량은 20mg으로 케이캡(50mg)보다 60% 적다. 통상 의사들은 저용량부터 시작해 효과가 없거나 낮게 나타날 경우 고용량으로 처방을 늘려나가는 경향이 있다.
또한 보퀘즈나는 미국에서 발 빠르게 적응증을 확대하고 있다. 보퀘즈나는 지난해 9월 비미란성 위식도역류질환 임상 3상을 마치고 미 FDA에 적응증 확대를 위한 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르면 올해 3분기 해당 적응증을 확보할 것으로 패썸 측은 내다보고 있다.
보퀘즈나는 소아, 청소년 비미란성 위식도역류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도 진행하고 있다. 청소년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1상은 지난해 6월 종료됐으며 소아 환자 대상 임상 1상은 현재 환자를 모집하는 중이다. 케이캡은 아직 국내에서 소아, 청소년에 대한 적응증을 확보하지 않은 상태다. 회사에 따르면 적응증 확대 계획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격차 뒤집을 한 수는 '안전성'
HK이노엔은 이같은 보퀘즈나의 독주를 막기 위해 케이캡의 안전성 데이터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HK이노엔은 현재 미국에서 미란성·비미란성 위식도역류성질환 환자에 대한 케이캡의 장기 안전성 시험을 준비 중이다. 여기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시 부작용 위험 부담을 덜고, 보퀘즈나가 1년 동안 미국에서 쌓은 실사용 임상 데이터와 격차를 좁힐 수 있을 전망이다.
특히 HK이노엔은 지난 5월 FDA로부터 불순물 검출 지적을 받은 보퀘즈나와 케이캡의 화학구조가 달라 안전성 측면에서도 차별성을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또 현재 미국에서 PPI 제제로 효과를 얻지 못하는 환자군이 전체 위식도역류질환자의 약 40%로 알려져 시장 진출이 늦었음에도 충분한 수요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HK이노엔 관계자는 "케이캡은 화학구조가 보퀘즈나와 다른 P-CAB 계열 제품들과 달라 불순물 이슈로부터 자유롭다는 게 차별화된 경쟁력"이라며 "미국은 위식도역류질환에 대한 미충족 의료수요가 높아 보퀘즈나와 함께 P-CAB 시장 점유율을 넓혀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