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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R&D 트렌드]방사성 물질로 약을 만든다고?

  • 2024.07.26(금) 09:00

방사성동위원소와 의약품 결합 질병진단·치료
타깃 암 세포만 공격…해외서 ADC 만큼 주목

최근 유튜브 등 SNS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먹는 산나물이 이슈다. 국내에서는 비빔밥과 봄 제철 나물로 식탁에 흔히 오르는 고사리, 두릅, 원추리, 토란 등이 해외에서는 식용을 하지 않는 독초로 알려져 있어서다. 

실제로 생고사리에는 프타퀼로사이드라는 발암물질이 있으며 원추리에는 콜히친이라는 성분이 설사, 구토, 복통 등의 식중독 증상을 유발한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산나물을 먹고도 탈이 나지 않는 걸까. 찬물에 담갔다가 끓는 물에 데치는 등 조리과정을 거쳐 독성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원소에 따라 진단용과 치료용 개발

제약산업도 마찬가지다. 위험한 물질도 제대로 알고 다루면 약으로 쓸 수 있다. 대표적으로 최근에 신약 개발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 방사성의약품(RPT)을 들 수 있다. 방사성은 불안정한 원소의 원자핵이 붕괴하면서 알파선, 감마선, X선, 자외선, 가시광선 등의 방사선을 방출하는 성질을 말한다. 

방사선에 과다 노출될 경우 생체 세포의 유전자(DNA)를 파괴해 암이나 백혈병, 피부병 등 후유증 발병 위험이 매우 높지만 그 특성을 제대로 알고 활용하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방사성의약품은 방사성동위원소(원자핵이 불안정해 스스로 변화하는 원소)와 의약품을 결합해 제조한 특수의약품이다. 여기서 의약품은 약효 없이 체내에 방사성동위원소를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 방사성동위원소와 결합된 의약품을 체내에 투여하면 특정 부위에 도달했을 때 방사선이 방출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질병의 진단과 치료가 가능하며 반감기(방사선 물질이 반으로 줄어드는데 걸리는 시간)에 따라 극미량으로 사용시 독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사성의약품은 어떤 방사성동위원소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진단용과 치료용으로 나뉜다. 감마선이나 양전자선과 같은 투과력이 높은 방사선은 특정 부위에 도달했을 때 그 부위에서 방출하는 방사선을 탐지하고, 이 정보를 분석한 영상으로 질병을 진단하는데 사용된다. 

방사성의약품의 형태. /이미지=한국원자력의학원

치료용 방사성의약품은 알파선이나 베타선과 같이 투과력이 낮은 방사선이 이용된다. 이들 방사선은 투과력은 낮지만 암처럼 DNA에 변성을 일으키는 세포를 사멸시키는 성질이 강하다. 암에서 발현되는 특정 단백질을 선택적으로 사멸시켜 기존 항암제 대비 치료 효과는 높고 부작용은 적은 것이 특징이다. 세계적으로 치료용 방사성의약품이 주목받는 이유다.

노바티스 등 글로벌 제약사, 인수합병 활발

최근 들어 글로벌 제약사들은 방사성의약품 파이프라인을 확대하기 위해 줄줄이 인수합병을 진행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 중 가장 활발하게 방사성의약품을 개발 중인 곳은 노바티스다. 노바티스는 방사성 리간드(단백질 분자에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물질) 치료제 '플루빅토(전립선암)'와 '루타테라(위·췌장 신경내분비종양)'를 보유하고 있다.

노바티스는 지난 5월 방사성 리간드 치료제 후보물질 'MC-339'을 개발하고 있는 마리아나 온콜로지(Mariana Oncology)를 10억달러(약 1조367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향후 마일스톤 달성시 최대 7억5000만달러(1조원)를 추가로 지급할 예정이다. 또 지난 4월에는 일본 제약기업인 펩티드림과 총 28억9000만달러(계약금 1억8000만달러, 마일스톤 27억1000만달러)규모에 달하는 펩타이드 발굴 제휴관계 확장 계약을 체결했다. 자사의 방사성 리간드와 펩티드림의 펩타이드를 결합한 치료제 개발을 위해서다.

이밖에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는 지난 3월 암 치료용 방사성접합체(radioconjugates)를 개발하기 위해 캐나다 바이오텍 '퓨전 파마슈티컬스'를 41억달러(5조6000억원)에 인수했고,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는 지난해 12월 액티늄 기반 방사성의약품을 개발 중 '레이즈바이오'를 36억달러(5조원)에 인수했다.

국내 치료용은 '걸음마' 단계

국내의 경우 진단용 방사성의약품은 다수 개발돼 있지만 치료용은 이제 하나둘 개발에 뛰어들고 있는 걸음마 단계다.

국내 진단용 방사성의약품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듀켐바이오는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뇌종양 등 진단용 방사성의약품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인체면역항암제, 치매, 진행성 핵상마비(PSP) 등 다수 진단용 방사성의약품을 개발 중이지만 치료용 방사성의약품 파이프라인은 아직 없다. 퓨쳐켐은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암 등 진단용 방사성의약품을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 전립선암 치료용 방사성의약품 'FC705' 임상2상을 진행 중이다.

듀켐바이오의 파킨슨병 진단용 방사성의약품 'FP-CIT'으로 뇌의 기능을 이미지화 한 모습. /이미지=듀켐바이오 홈페이지

SK바이오팜도 방사성의약품 개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SK바이오팜은 후보물질 발굴부터 출시까지 독자적으로 뇌전증 신약을 개발한 경험이 있지만 방사성의약품에 대한 전문성은 전무한 상태다.

이에 SK바이오팜은 방사성의약품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해 9월 방사성 의학 전문 연구기관인 한국원자력의학원과 방사성의약품 연구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최근에는 홍콩에 본사를 둔 '풀라이프테크놀로지스'로부터 방사성의약품(RPT) 후보물질 'FL-091'의 글로벌 개발·상업화 권리를 도입하며 본격 개발에 뛰어들 채비를 마쳤다. 계약규모는 총 5억7150만달러(7800억원)에 달한다. FL-091은 현재 전임상 단계에 있으며 SK바이오팜은 이르면 내년 말 임상1상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동아에스티의 항체약물접합체(ADC) 개발 전문 계열사 앱티스는 한 발 더 나아가 항체 기반 방사선의약품 개발에 뛰어들었다. 앱티스는 지난 4월 방사성의약품과 방사성리간드 전문기업인 셀비온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특정 암세포를 타깃 하는 항체와 약물 대신 암 세포를 파괴할 수 있는 방사성 동위원소 중 하나인 악티늄(Ac-225)을 결합한 신약 개발이 목표다.

2032년 글로벌 시장 19조원 규모로 성장 

진단용 방사성의약품을 개발한 경험이 있는 퓨쳐켐을 제외하고 국내외 제약사들은 인수합병, 업무협약 등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치료용 방사성의약품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기존 항암화학요법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장점이 분명해서다. 항암화학요법은 투여한 약물이 전신에 흡수돼 다른 장기와 세포에도 영향을 미치고 내성 등으로 치료가 점점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다. 반면 방사성의약품은 ADC처럼 암 세포만을 타깃으로 해 다른 부위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다.

이와 함께 글로벌 방사성의약품 시장도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프레시던스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방사성의약품 시장 규모는 지난 2022년 52억달러(7조원)에서 오는 2032년 137억달러(19조원) 규모에 달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ADC 만큼이나 방사성의약품이 차세대 의약품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은 자체 약물이나 기술과 접목할 수 있는 ADC 개발에만 집중하고 있다"면서 "정부 주도로 방사성의약품 개발을 지원하는 국가RI신약센터 등도 있으니 방사성의약품의 가능성에 좀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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