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빅파마(거대 제약사)에 기술이전 성과를 낸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의 공통점은 '미충족의료수요'를 겨냥했다는 것이다. 미충족의료수요는 현재 사용 가능한 치료법으로 질병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어려운 상태를 뜻한다.
지놈앤컴퍼니는 최근 스위스계 제약사 디바이오팜에 ADC(항체약물접합체) 항체인 'GENA-111'을 4억2600만달러(5800억원)에 기술이전했다. GENA-111은 아직 치료법이 제한적인 간암, 난소암 등의 암세포에 발현하는 단백질(CD239)을 표적으로 한다.
프레데릭 레비 디바이오팜 최고과학책임자(CSO)는 "지놈앤컴퍼니의 항체가 타깃으로 하는 CD239는 미충족 수요가 큰 암종에서 높은 발현율을 보인다는 점에서 우리 ADC 개발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기술도입 배경을 밝혔다.
종근당은 지난해 노바티스에 부정맥의 일종인 심박세동 치료 후보물질인 'CKD-510'를 13억5000만달러(1조8600억원)에 기술이전했다. 이 중 반환의무가 없는 계약금만 8000만달러(1100억원)에 달한다.
CKD-510은 심장세포의 골격을 불안정하게 하는 효소(HDAC6)를 억제하는 원리로 심장박동을 조절한다. CKD-510은 심장박동을 직접 조절하는 기존 이온채널차단제가 가진 불충분한 약효와 높은 부작용 등의 미충족 의료수요를 해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임상 1상 시험에서 확인했다.
노바티스는 CKD-510의 연구를 넘겨받아 심박세동 등 심혈관질환 치료제를 개발할 계획이다. 앞서 노바티스는 심박세동 치료 후보물질 'HSY244'의 임상 2상 시험을 경영상의 이유로 중단한 바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미충족의료수요를 해소할 수 있는 신약후보물질을 도입하는 이유는 기존 치료법의 한계를 극복해 상업적 잠재력이 높은 데다, 규제당국으로부터 인허가 과정에서 혜택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길리어드사이언스가 개발한 C형 간염 치료제 '소발디'는 기존 치료제의 약효와 안전성 문제를 해결해 출시 1년 차에 매출액 100억달러(13조8000억원)를 거둔 바 있다. 소발디는 신약승인 과정에서 미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혁신치료제로 지정돼 인허가 검토기간이 단축되기도 했다.
국내 제약바이오 중에는 해외 제약사가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미충족 의료수요를 콕집어 이들로부터 기술이전 계약을 따낸 곳도 있다.
파인트리테라퓨틱스는 최근 아스트라제네카에 질병의 원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표적단백질(TPD) 치료제 후보물질을 기술이전했다. 파인트리는 이 약물이 아스트라제네카의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타그리소'의 내성 문제를 해소하고 약효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을 전임상에서 확인했다.
현재 아스트라제네카는 존슨앤드존슨 이노베이티브 메디슨(J&J)과 유한양행의 경쟁약 출시를 앞두고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다. J&J와 유한양행은 타그리소 처방에 따른 내성 등의 미충족 의료수요를 해결한 약물을 개발해 현재 미 FDA로부터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오름테라퓨틱은 지난해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에 ADC에 TPD를 결합한 치료제인 'ORM-6151'를 1억8000만달러(2500억원)에 이전했다. 오름테라퓨틱은 전임상에서 과거 부작용 문제로 개발이 중단된 적이 있었던 BMS의 약물과 비교해 ORM-6151이 약효와 안전성 등을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
조헌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전무는 "미충족의료수요는 치료대안이 아예 없거나, 이미 있지만 약효나 안전성 등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을 때 발생할 수 있다"며 "미충족의료수요를 극복한 약물은 시장수요가 커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수출하기 유리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