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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의 전화위복]기형아 부작용에 사장될 뻔 '탈리도마이드'

  • 2025.02.24(월) 08:00

팔다리 없는 기형아 1만 이상…5년만에 판매금지
다발성골수종 치료제로…매출 15조 '블록버스터'

신약 개발에서 중요한 것은 안전성이다.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면 개발을 중단해야 한다. 의약품 부작용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이유다. 부작용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생각하지 못한 효능이 발견되기도 한다. 개발 과정에서 부작용이 나타나 운명이 뒤바뀌거나 또 다른 효능이 발견된 약들의 뒷이야기를 다뤄본다.[편집자주]

역사상 약물로 인체가 피해를 입은 최악의 약해사고는 단연 '탈리도마이드'를 꼽을 수 있다. 탈리도마이드 성분은 1957년 독일 제약사 그뤼넨탈이 처음으로 개발해 '콘테르간'이라는 제품명으로 출시됐다. 이 약물은 진정제, 수면제 용도로 사용됐는데 의사 처방 없이 약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입덧 완화 위해 먹은 임신부, 기형아 출산

임신부들 사이에서는 입덧을 진정시키는데 효과적이라고 알려지며 많이 사용됐다. 그러나 이 약을 개발한 제약사가 부작용이 없다고 광고를 한 것과 달리 약을 먹은 산모들에게 비극이 시작됐다. 

이들이 낳은 아이 중 손·발가락이나 팔다리가 없거나 짧은 기형아들이 태어나면서 탈리도마이드 성분의 위험성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신체적 결함뿐만 아니라 생존율도 낮았다. 세계에서 이 약물로 피해를 입은 아이들은 약 1만2000명으로 집계됐다. 50세 이전 생존율이 25%에 불과했고 대부분이 영유아기때 사망했다.

최초 피해자는 출시 1년 후인 1958년 독일에서 나왔지만 해당 제약사는 탈리도마이드 부작용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다 1960년 함부르크의 한 소아과 의사가 처음으로 콘테르간 복용과 기형아 출산의 관련성을 입증하면서 출시 5년여만인 1961년부터 1962년 사이에 세계에서 판매가 금지됐다. 

유럽 중심으로 피해가 가장 심각했고 일본에서도 피해 사례가 있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선 6.25 전쟁이 끝난지 몇년 지나지 않았던 때라 수입, 시판되지 않아 피해를 입은 사례가 없었다.

미국에서도 안전성 자료 부족을 이유로 6번이나 허가가 반려돼 피해 사례는 단 17건에 그쳤다. 미국에서 품목허가가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피해사례가 나타난 건 쉽게 구입이 가능했던 유럽에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생존한 피해자에 따르면 다수 피해자 모친들은 입덧이 심한 임신 초기에 탈리도마이드를 단 1알 복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단 한 번의 복용으로 태아에 심각한 부작용을 줄 수 있다는 위험성에 많은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탈리도마이드 피해자인 독일 유명 성악가 '토마스 크바스토프'가 2005년 출간한 자서전. /출처=교보문고

독일에서 1959년 태어난 유명한 성악가 '토마스 크바스토프'도 탈리도마이드 피해자 중 한 명이다. 그는 키가 132cm밖에 되지 않고 팔다리가 짧으며 손가락도 7개뿐이다. 

탈리도마이드 성분이 기형아를 유발하는 이유는 혈관 생성을 억제하는 기전 때문이다. 혈관은 태아의 세포가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해주는데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할 경우 혈관 생성을 막아 태아의 팔다리가 자라지 못하는 것이다. 

다발성골수종 치료제로… '블록버스터' 등극

아이러니하게도 혈관 생성 억제 부작용이 다른 질환에 치료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건 판매가 금지된 지 30~40년이 지난 후였다.

심각한 부작용으로 세계에서 영원히 사장될 뻔했던 탈리도마이드는 미국에서 1998년 한센병 합병증 치료제로 허가 받았다. 이스라엘의 한 의사가 한센병 환자들에게 수면제로 탈리도마이드를 사용하다가 나성결절에 효과가 있음을 발견하면서다.

또 미국 제약사 셀진(2019년 BMS에 인수)은 탈리도마이드와 유사한 구조의 레날리도마이드 성분을 개발해 2005년 FDA로부터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골수종 치료제로 허가를 받았다. 바로 '레블리미드'다. 

이 약물이 다발성골수종에 치료 효과를 보이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혈관 생성 억제 때문이다. 암세포가 커지고 전이하기 위해서는 혈관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하는데 혈관 신생을 억제해 암 세포가 자랄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한다. 레블리미드는 다발성골수종 외에 외투세포림프종, 골수형성이상증후군, 소포림프종 등 치료제로도 사용되고 있다. 

특히 다른 약제들은 부작용이나 독성 문제 등으로 장기간 사용이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레블리미드는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은 사용이 불가능하지만 경구 투여가 가능하고 장기 투여시 비교적 부작용이 적어 임상현장에서 선호하는 약물로 손꼽힌다.

레블리미드는 수년간 글로벌 의약품 매출 상위 5위 안에 드는 블록버스터 약물로 성장했다. 최고 매출을 기록한 건 지난 2021년으로 연매출 128억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15조6000억원)에 달했다. 현재는 제네릭 의약품이 대거 출시되면서 매출이 감소하는 추세지만 여전히 다발성골수종 치료제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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