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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국세청 게이트와 롯데·효성

  • 2013.08.02(금) 11:08

정치부 기자로 국회를 출입하던 2012년 봄 여의도 한 일식당에서 국세청 고위 간부 2명과 점심식사를 한 적이 있다. 개인적인 만남이었지만 기자와 공무원이 만나면 나누는 다양한 얘기를 화기애애하게 나눴다. 오후 1시 반쯤 자리를 파하며 악수를 하는데 그 간부 왈 "먼저 나가세요, 저희들은 조금 있다 나가겠습니다"


다소 의아했지만, 국세청 간부들은 사적인, 소규모 자리를 이런 방식으로 마무리하는 게 관행이라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CJ그룹 이재현 회장과 국세청 고위 간부들이 만났을 때도 비슷했다고 한다.

 

CJ그룹이 국세청을 상대로 벌인 로비에 대한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던 전군표 전 국세청장(재임 기간 2006.7~2007.11)이 조사를 받은 뒤 그 자리에서 곧바로 긴급 체포됐다.

 

검찰은 미리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놓고 있을 정도로 전 전청장의 혐의(미화 30만 달러, 고급 시계 수수)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당연히 다음 수순은 구속영장 청구다. 전 전청장과 CJ를 연결해준 허병익 전 국세청 차장은 이미 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

 

국세청의 전직 최고위 간부 뿐만 아니다. CJ그룹으로부터 골프접대 등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에 연루된 송광조 서울지방국세청장은 1일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지난 2006년 CJ그룹 세무조사 당시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총괄하는 조사기획과장이었다.

 

국세청의 전직 청장-차장, 현직 서울청장 같은 최고위층이 재벌로부터 로비,청탁을 받고 일제히 사법처리됐거나 될 처지에 처했다. 국세청 사상 초유의 일이다. 게다가 아직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고위 간부 아래 실무진까지 검찰의 칼이 들이 닥칠 가능성도 있다.

 

국세청이 받는 타격, 이만저만이 아니다. 국세청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록 세금을 내는 국민들의 저항은 더더욱 거세질 수 밖에 없다. 당장 국세청이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빼내든 각종 '칼'들이 무뎌질 수 밖에 없다. 변칙상속과 고소득자 탈세 등 지하경제 양성화에 해당돼 거액의 세금을 추징당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CJ-국세청 스캔들을 말하며 '유전무세 무전유세'(有錢無稅 無錢有稅. 돈 있으면 세금 없고, 돈 없으면 세금 있다)라고 부르짖는다면?

 

정치권은 '국세청 바로세우기 방안'을 앞다퉈 내놓을 것이다. 야당인 민주당의 장외투쟁으로 모든 정치일정이 '올스톱'된 상황이지만, 9월 정기국회와 국정감사 등에서 국세청을 질타하는 정치권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역시 국세청에 대한 감시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게 분명하다.

 

이런 국세청의 위기가 재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연초 무자비하게 세리의 채찍을 휘두를 것 같았던 국세청이 최근 들어서는 슬그머니 '친기업적' 입장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지난 2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이후 국세청은 '지하경제 양성화'를 기치로 내걸었다.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흐름에 발맞춰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등등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더 거두겠다고도 했다. 세무인력을 400명 이상 늘리고, 조사 건수도 1만 9000건으로 늘려잡았다.

 

하지만 경제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중소기업을 포함한 재계의 아우성에 이미 국세청은 올해 조사 건수를 당초 계획했던 1만9000 건에서 1000여 건 줄여서 1만 8000 건 정도로 마무리 할 계획이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비롯해 건설, 조선, 해운 등 어려움을 겪는 업종을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특히 대기업 계열사 120여개가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 대상 세무조사 기간도 줄였다. 매출 10조원 이상 대기업의 조사 기간은 최장 170일에서 110일로 줄어 들었다.

 

이 와중에 터진 CJ-국세청 게이트가 국세청의 '친기업적'적 변화 움직임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국세청이 CJ로 인해 구겨진 명예를 어떻게 회복하려 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재계, 특히 일부 대기업은 이 질문이 초미의 관심사다.

 

롯데와 효성이다. 국세청은 지난 5월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 기업인 효성그룹에 대한 세무조사에 전격 착수했다. 7월에는 롯데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롯데그룹은 MB정권에서 숙원사업이던 잠실 제2롯데월드 건설 허가를 받는 등 전 정권의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구속된 이재현 CJ그룹회장이 MB정권 핵심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운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국세청은 이같은 정치적인 이유로 이들 대기업을 조사한다는 데 대해 펄쩍 뛰고 있다. 하지만 역대 정권은 출범할 때마다, 1단계 국세청의 대기업 손보기, 2단계 검찰를 통한 정치권 사정이라는 방식으로 기업과 정치권을 손 봐왔다. 

 

CJ의 경우 1단계에서 2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국세청이 덤터기를 쓴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진행 중인 롯데, 효성에 대한 세무조사는 그야말로  '먼지털이식'으로 강화, 확대될 수 있다. 국세청이 CJ 때문에 뺨 맞고, 이를 롯데와 효성에 풀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정권이 어떻게 바뀌든, 여론이 어찌됐든 국세청은 투명하고 공정하게 세금을 거둬 나라 살림의 '재원'을 만들어야 한다. 이게 국세청 본연의 임무다. 외풍에 흔들려 특정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더 강하게 하거나 혹은 안하거나, 좀 약하게 해서는 그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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