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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완화정책 새 키워드 '포워드 가이던스'

  • 2014.01.06(월) 14:08

갑오년 정초부터 환율이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하루 이틀의 얘기는 아니었지만, 해가 바뀌자 마자 엔-원 환율이 1000원선까지 뚫고 내려갔기에 화두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우리 고위 당국자들의 경고성 발언들도 잦아지고 있다. 지난해의 '속수무책'을 버리고 뭔가 액션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들에서는 중앙은행들이 경제정책이 주도해 왔기에 한국은행의 새해 행보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은이 내놓은 새해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 보고서와 김중수 총재의 신년사는 의미심장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주요국 중앙은행의 완화정책에 대한 맞대응을 시사하고 있다. 핵심 키워드는 '포워드 가이던스' 즉, 장기간의 저금리 제공 약속이다.

 

1. "低인플레이션 추세 지속 가능성"

 

한국은행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 보고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저(低)물가에 대한 경계감이다. "(지속적인 저물가로) 기대인플레이션이 낮아져 2차 효과를 유발, 경제활력을 저하시킬 가능성에 대해 신중하게 점검"하겠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한국은행의 기본 시나리오는 최근의 저물가가 일시적인 현상이라는데 맞춰져 있다. "실물경제 면에서 심각한 수요위축을 반영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다수의 일시적 공급요인과 제도변경의 효과가 중첩돼 나타난데 주로 기인하는 것으로 점차 완화될 전망"이라는 설명이다.

 

김중수 총재의 신년사도 이 시나리오를 재확인하고 있다. "최근의 저(低)인플레 상황은 국제유가와 원자재 및 곡물가격의 하향추세에 주로 기인하고, 국내적으로는 무상보육 및 복지정책에도 부분적으로 기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은의 '저물가' 대응은 일차적으로 '커뮤니케이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가상승률이 일년 넘게 목표 하한선을 밑도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배가"함으로써 불필요한 디플레이션 기대심리의 발현을 차단해야 한다는게 김 총재가 신년사를 통해 직원들에게 주문한 사항이다.

 

하지만 김 총재는 신년사에서 동시에 "아직도 학계 일각에서는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흑자국가들의 과잉저축에 따른 글로벌 불균형, 고령화, 생산성 하락, 자본재 상대가격 하락에 따른 단기적 투자규모 축소 등 다양한 요인들이 지적되고 있으니 이러한 논의에도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의 통화신용정책 보고서 역시 "글로벌 성장세 둔화 및 저(低)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현 추세가 지속될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한은은 "성장 회복이 지속되도록 지원하는 가운데 중기적 시계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 범위 안에서 유지되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고 정책을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이것을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으로까지 확대해석 하는데에는 어려움이 있겠으나, 완화적 편향(bias)이 있음은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비록 '기본 시나리오'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중앙은행이 '저(低)물가' 문제를 언급한 사실은 그 자체로 의미심장하다.

 

2. "많은 정책변화"

 

김중수 총재는 신년사 앞머리에서 "새해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 전세계적으로 펼쳐지는, 즉 경제운영에 있어서는 과거와는 판이하게 구별되는 새로운 시도가 이뤄진 전환점으로 후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역시 의미심장한 화두다. "선진경제의 비전통적 수단이 통화정책의 주류를 차지했던 시대로부터 다시 예전으로 복귀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수단들이 계속 개발될 것인지 기로에 설 것"이라는 설명이다. 신년사의 전반적인 뉘앙스로 보건데, 김 총재의 전망은 '후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면서 김 총재는 유연성을 강조했다. "금년에는 대외적 환경의 변화에 못지 않게 한국은행의 정책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사전에 세워놓은 원칙에 맞추어 정책을 경직되게 수행하겠다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현명하지도 않은 전략이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에 의한 정책실패에 따른 하방위험이 매우 클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김 총재는 말미에서도 다시 "과거 시대환경이 달랐을 당시에 도입됐던 제도들이 지금도 그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지 재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 "다이버전스(divergence)"

 

그렇다면 김 총재가 말하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이란 무엇일까. 신년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주요국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다이버전스(divergence)'다. 통화정책의 강도(强度)가 국가별로 판이하게 갈라진다는 의미다.

 

김 총재는 "우리에게는 미국의 정책변화를 예상하고 대응해야 하는 과제 이외에도 미국, 유로존, 일본, 영국 등 소위 G4가 이제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정책기조를 변화시킬 때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신속하게 파악해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통화정책 다이버전스로 인해 발생하는 가장 가시적인 현상은 엔화의 급등세다. 미국이 양적완화를 축소키로 결정했고, 유로존은 추가 금리인하에 소극적인 반면, 일본은 '물가상승률이 2%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될 때까지' QE를 지속하겠다고 밝힘으로써 양적완화의 기한을 사실상 연장해 버린 결과다.

 

즉, 김 총재는 신년사에서 우회적인 표현("서로 다른 방향으로 정책기조를 변화")을 통해 급격한 엔 약세에 대한 경계감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이 발언 대목에서 김 총재는 다시금 "경직되지 않은 사고로 유연하게 대처해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의 세번째 키워드(다이버전스)는 첫번째 키워드(저물가 지속 가능성) 및 두번째 키워드(유연성, 많은 변화)와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다.

 

4. 포워드 가이던스

 

그렇다면 새해 한은은 어떠한 정책기조와 수단으로써 이 키워드들을 포괄할 것인가. 특히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에 대응할 "많은 정책 변화"는 어떠한 모습을 띨 것인가.

 

이 의문을 갖고 김 총재의 신년사를 다시 읽어 본다면, 시선은 단연 "포워드 가이던스"라는 용어로 고정된다. 그는 "선진경제에서 포워드 가이던스 정책이 풍미하고 있다. 우리도 이것을 오랜 기간 외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포워드 가이던스란 미래의 통화정책 기조를 미리 약속해 두는 정책수단을 말한다. "물가상승률이 2%를 밑도는 동안에는 실업률이 6.5% 훨씬 아래로 떨어지더라도 금리를 인상하지 않겠다"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천명이 대표적이다. "현재 수준 또는 이보다 더 낮은 수준의 기준금리를 보다 연장된 기간동안 제공한다"고 밝힌 유럽중앙은행(ECB)을 비롯해 영국과 일본 등 G4 중앙은행들은 저마다의 포워드 가이던스를 사용하고 있다. 통화정책 변경 불확실성을 제거함으로써 완화정책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비전통적 정책수단의 핵심이다.

 

김중수 총재의 신년사 발언을 보면, 그는 포워드 가이던스의 '유효성'에 대해서는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러한 정책을 시도하는 도전"에 무게를 두고 있다.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 같다. 우리 경제의 성장 속도와 물가상승률이 올 들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주요국들은 모두 포워드 가이던스를 활용해 초저금리 장기 유지를 약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와 G4 통화정책 기조의 다이버전스를 의미하며 이는 원화를 급격히 강세로 이끄는 동인 중 하나다.

 

포워드 가이던스에 관한 논의는 지난 12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이뤄졌다. 의사록을 보면 연준의 이른바 '옵티멀 컨트롤 룰(optimal control rule)'까지 거론됐는데, 한 금통위원은 이러한 동태를 새해 경제전망에 반영할 것을 주문했다.

옵티멀 컨트롤은 재닛옐런 미 연준 의장 지명자가 지난 2012년 11월 연설에서 공개한 포워드 가이던스의 새로운 유형이다. 연준이 사용하는 경제전망 모델은 금융시장의 그것과 달리 저물가가 더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으며, 따라서 제로금리 정책도 시장의 예상보다 더 장기간 제공될 것임을 시사했는데, 이 것이 구체화된 것이 지난해 12월 FOMC의 '새로운 포워드 가이던스'였다.

 

한은의 포워드 가이던스가(만약 도입된다면) 어떠한 형태가 될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다만, 예를 들어 성장지원과 물가상승률 회복에 무게를 둔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장기간 유지한다는, 구체적인 경제지표 수치는 제시하지 않는, ECB 스타일의 다소 느슨한 문구부터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이는 그 자체로 한은의 완화적 편향(bias) 신호로 시장에 인식될 수 있으며, 원화 강세에 일정정도의 제동을 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동시에 경기회복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대폭 인하하지 않고도 내수를 부양할 수 있는 정책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ECB처럼 "현 수준 또는 지금보다 더 낮은 금리"라는 문구를 통해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을 명시적으로 열어둘 수도 있겠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은의 새해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 보고서에서 우리는 몇 가지 관심을 끄는 대목들을 더 찾아 낼 수 있다. 첫째는 "해외요인에 의해 수익률 곡선이 급격히 가팔라지는 현상을 방지할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한 점이다. 수익률 곡선의 스티프닝(steepening)은 장기금리 인하책인 양적완화가 축소되는 가운데, 단기금리에 영향을 주는 기준금리는 포워드 가이던스 강화를 통해 계속 낮게 유지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만약 한은 역시 포워드 가이던스를 도입한다면 우리나라의 장기금리에도 하락압력이 가해지면서 스티프닝이 완화되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한은 보고서는 또한 "보유국채의 활용도를 점진적으로 늘리고 증권대차 등을 적극 활용하는 등 공개시장 조작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지난해 12월 금통위 발언내용과 연계해 추측해 본다면, 포워드 가이던스 시행을 위한 정지작업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금리정책 파급경로의 저해요인을 완화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한 대목도 같은 맥락이다.

 

한은이 말한 "보유국채 활용"이나 "증권대차" 등은 주로 환매조건부채권매매(RP) 시장과 연관돼 있다. 이 시장은 한은 금리정책이 민간에 전달되는 첫번째 관문이기 때문에 활성화가 긴요하다. 연준 역시 최근 들어 단기 시장금리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역 레포(reverse repo, 우리식으로는 RP매각) 조작 실험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포워드 가이던스의 부작용 가능성을 제한하는데에도 보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포워드 가이던스로 인해 저금리정책 철회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역 레포 또는 한은의 RP매각은 완화기조를 제한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안근모 글로벌모니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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