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들이 먹는 음식이 선식(仙食)이다. 선식은 동양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양에도 신들이 먹는 아침식사가 다. 바로 시리얼이다. 곡물로 만든 콘플레이크에다 우유를 부어 먹으니 신선까지는 몰라도 요정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시리얼(cereal)의 어원은 세레스(Ceres), 로마신화에 나오는 곡식의 여신이다. 때문에 시리얼이라는 이름도 상징적이다. 세레스가 인간이 생명을 이어갈 수 있도록 곡식을 보내준 여신인 것처럼 시리얼 역시 인간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든 식품이기 때문이다.
시리얼로 먹는 콘플레이크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120년 전인 1894년이다. 미국 미시간 주의 요양원에서 일하던 의사, 존 켈로그가 만들었다. 존 켈로그는 채식주의자였는데 환자들에게 고기 대신에 밀이나 호밀, 보리, 쌀, 옥수수 같은 채식이 좋다고 강조하면서 환자를 위해 직접 여러 가지 곡물을 조합해 콘플레이크를 만들었다.
많은 발명품들이 그런 것처럼 콘플레이크 역시 우연의 산물이었다. 존 켈로그 박사는 동생인 윌 켈로그와 함께 같은 요양원에서 일을 했는데 둘이서 통밀로 환자를 위한 음식을 만들다 급한 일이 생겨 조리하던 곡식을 그대로 둔 채, 자리를 비웠다. 며칠 후 되돌아와 보니 통밀이 숙성되면서 곰팡이가 피었다.
원칙대로라면 통밀을 버리는 것이 맞지만 상한 것도 아닌데다 예산이 부족했기 때문에 다시 재가공해 요양식을 만들었다. 켈로그 박사가 의사인데다 요양원의 환자에게 주는 음식이었던 만큼 철저한 위생검사를 거치고 안전성을 확인했던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통밀이 숙성돼 맛이 좋아졌고 먹기도 편해져 환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시리얼이 건강식품이었던 이유다.
그렇다고 지금의 시리얼도 건강에 좋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논란의 소지는 있지만 시중에서 판매되는 상당수의 시리얼, 특히 과일 맛이나 초콜릿 맛 같은 콘플레이크는 첨가물과 함께 설탕이 추가돼 장기간 먹을 경우 건강에 이롭지는 않다고 한다. 하지만 밥 먹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는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하니까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다. 반면 철저하게 건강식으로 만든 시리얼은 선식에 가까워 어른도 맛있게 먹기 힘들다.
콘플레이크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켈로그 형제는 아예 회사를 차릴 궁리를 했는데 시작부터 건강이 우선인지, 맛이 우선인지를 놓고 갈등이 시작됐다. 맛은 없지만 철저하게 건강식품 위주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이익을 고려해 건강보다는 맛을 우선시할 것인지를 놓고의 갈등이었다.
존 켈로그는 의사였기 때문인지 건강식을 만들자는데 초점을 맞췄다. 가공물을 최소화해서 순수하게 곡식으로 건강에 좋은 식품을 만들자는 입장이었던 반면, 동생인 윌 켈로그는 경영 마인드가 있었는지 그렇게 만들면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한다고 주장했다. 건강식품인 콘플레이크를 보급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니까 맛을 낼 수 있을 정도로 설탕을 첨가하자는 입장이었다.
둘은 끝까지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해 결국 따로 회사를 차렸다. 설탕을 첨가해서 맛있게 만들자고 주장한 동생, 윌 켈로그의 회사는 발전을 거듭해 현재 우리가 아는 회사가 됐다. 반명 형이 세운 회사는 식품업계에 적지 않은 족적을 남겼다. 땅콩버터를 만들어 보급했고 미국에 두유를 보급한 것도 이 회사다.
참고로 존 켈로그나 윌 켈로그 두 사람 모두, 아흔 한 살에 사망했다. 1940, 50년대니까 당시 기준으로는 엄청나게 장수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