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의 맏아들로 태어나 조선 제10대 국왕이 된 연산군은 음식에 무척이나 민감했던 임금이다. 맛있는 음식, 진귀한 요리를 밝히는 것은 물론이고 음식재료의 보관과 관리에도 임금이 직접 나설 정도로 엄청난 신경을 쏟았다.
비행기 일등석의 마카다미아가 봉지에 들었는지, 접시에 놓였는지를 따지는 서비스 매뉴얼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산해진미를 밝혔던 연산군은 어두육미라는 말처럼 꼬리 요리를 아주 좋아했다. 옛날부터 꼬리 요리 중에는 짜리몽땅해 먹을 것도 없어 보이는 사슴꼬리를 최고로 쳤는데 연산군이 가장 좋아했던 꼬리 역시 사슴꼬리였다.
조선왕조실록에 연산군이 직접 각도 감사에게 공문을 보내 사슴 꼬리가 떨어지지 않도록 진상하라고 독촉했다는 기록이 보일 정도다. 냉장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못했던 옛날, 지방에서 올라온 사슴꼬리를 상하지 않게 제대로 보관하기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좋은 음식재료가 많이 상했는지 왕실 주방을 관할하는 사옹원(司饔院)에 교지를 내렸다.
음식 재료의 맛과 색깔을 잘 살펴서 나쁜 것이 생기면 담당자를 가려내 문초를 하는데 여섯 달 안에 세 차례 이상 지적을 당하는 자가 있으면 이전 인사고과가 아무리 좋더라도 파면을 시키라는 것이다. 왕실에 올리는 음식 재료 하나 때문에 벼슬자리가 떨어졌다 이어졌다 했던 것인데 남겨진 기록을 보면 연산군은 좋은 음식과 진귀한 식품에 병적일 정도로 집착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음식 때문에 두 번 죽임을 당한 신하도 있었다. 연산군 10년에 있었던 일로 조선왕조실록에는 사헌부 고위 관리였던 김천령이 음식으로 인해 두 번 죽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내가 일찍이 중국에서 나는 수박을 보고 싶어 했거늘 김천령이 강력하게 주장해 내 뜻을 막았다. 임금이 다른 나라의 진귀한 물건을 구하겠다는데 이것이 어찌하여 그르다고 감히 말하는가? 김천령의 목을 베어 저자 거리에 전시를 하고 그 자식들은 볼기를 때린 후 노비로 삼으라”
조선왕조실록에는 연산군이 김천령을 효수하라고 엄명을 내린 것으로 나오지만 사실 김천령은 이런 일이 있기 1년 전에 사망했다. 그러니 연산군의 명령은 무덤을 파내어 죽은 사람의 목을 베는 부관참시의 형벌을 내린 것이다. 도대체 김천령이 무엇이라고 했기에 연산군이 이렇게 노발대발했을까?
연산군이 북경으로 떠나는 사람으로 하여금 중국의 수박을 구해 오라고 했는데 김천령이 먼 곳의 기이한 물건을 억지로 가져오는 것은 옳지 않으며 또 오는 길이 몇 개월이 걸리니 가져오다 반드시 상할 것이므로 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지 말라며 강력하게 반대한 적이 있었다. 물론 연산군이 김천령을 부관참시한 까닭은 다른 데 있었지만 꼬투리를 삼은 것은 수박이 됐다. 당시 수박은 전해진지 오래지 않아 귀한 과일이었다.
연산군의 식탐은 계속 이어진다. 8월이면 귤이 제철이 아님에도 제주목사에게 명해 귤을 보내라고 독촉했다. 비록 귤이 열리는 철이 지난 것은 알지만 따서 저장해 놓은 것이 있으면 봉해서 올리고, 나무에 달린 것이 있으면 가지에 붙은 채로 올려 보내라는 것이다.
현지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러니 당시 제주도 주민들이 귤나무를 원수나무라며 베거나 뿌리 채 뽑아 버렸다. 500년 전, 연산군이 벌인 수퍼 갑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