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관광 살리기
K컬처가 전세계를 강타하면서 한국을 찾는 관광객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은 1900만명에 육박했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달 말, 2029년 외국인 관광객 3000만명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관광객 수출국에서 관광객 수입국으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고질병인 '수도권 편중 현상'은 관광 산업에서도 통용된다. 관광객 대부분은 서울과 제주에 집중돼 있다. '5대 광역시' 중에서도 부산 정도가 살아남을 뿐이다. 외국인 관광객뿐만이 아니다. 내국인들조차 지역 명소를 찾기보다는 잘 알려진 유명 관광지에 몰리거나 해외로 떠난다.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비슷비슷한 콘셉트의 지방 축제, 맛집과 포토스팟 몇 군데가 대부분인 명소로 눈높이가 한껏 높아진 관광객들을 끌어모으는 건 불가능하다. 수도권의 인프라와 편의성, 해외의 이색적인 경험과 경쟁할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대구시의 내로라할 '핫 스팟'들이 모여 선보인 '예술과 힐링' 콘셉트의 협업은 그런 의미에서 시의적절하다.
대구를 관광도시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대구만큼 관광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도시도 없다. 증거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하는 '한국 관광의 별'에 선정된 곳이 2024년에 선정된 '간송미술관', 지난해 선정된 '사유원(思惟園)' 등 두 곳이나 된다.
마침 사유원과 간송미술관, 여기에 대구 최초의 5성 호텔인 인터불고 대구와 더현대 대구가 모여 대구의 문화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패키지 '2026 아트 앤 힐링 스테이 in 대구'를 선보였다. 관의 도움 없이 민간 기업끼리 손잡고 만들어 낸 프로젝트다. 대구와 아트·힐링은 어울리는 조합일까. 지난 6일과 7일 대구시를 찾아 대구의 문화적 정수를 즐겨 보기로 했다.
사유원 소요헌 벽에 기대 미인도를 보았다
대구에 도착해 가장 먼저 방문한 사유원은 뒤로는 대구 팔공산, 앞으로는 창평저수지가 펼쳐진 수목원이다. 부지 면적 23만평, 산책로는 6.4㎞에 달한다. TC태창의 유재성 전 회장이 일본으로 수출되던 300년산 모과나무를 사들여 심으면서 시작돼 지금은 10만평짜리 수목원이 됐다.
단순히 넓은 수목원이라는 것만으로 대구 문화 관광의 출발지로 꼽을 수는 없다. 아름다운 조경의 화룡점정은 사유원 곳곳에 자리잡은 건축물이다. 1992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포르투갈의 거장 알바로 시자(Álvaro Siza), 우리나라의 대표 건축가인 승효상 등이 사유원에 자신의 작품을 남겼다. 정원과 건축 박물관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보기 드문 관광지다.
드넓은 사유원을 걷다가 만나는 예술 작품들은 마음의 풍요로움을 느끼게 해 준다. 이 중 백미는 역시 알바로 시자의 '소요헌(逍遙軒)'이다. 유 전 회장이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전시하기 위해 만든 소요헌은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음에도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예술이다. 그늘과 빛을 교차해 삶과 죽음을 표현했다는 소요헌 하나를 보기 위해 대구를 찾는 '건축 덕후'들도 많다고 한다. 개장 첫 해인 2021년 2300여 명이었던 방문객도 2022년 2만9000여 명, 2023년 3만4000여 명, 2024년 4만4000여 명 등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사유원에서 자연과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즐긴 다음에는 또다른 '한국 관광의 별' 대구 간송미술관을 찾았다. 간송미술관은 일제시대 때부터 우리 문화유산을 수집해 왔던 간송 전형필의 소장품들을 전시하는 미술관이다.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 오원 장승업의 '삼인문년' 등 교과서에 실릴 법한 그림들과 추사 김정희의 서예 작품 등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이라도 알 만한 작품들이 많아 눈이 즐겁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어린아이나 초보자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디지털 아트를 결합했다는 점이다. 3전시실에서 진행 중인 '신윤복<미인도>xDGIST AI' 전시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고흐·르누아르·에곤 쉴레 등 대표적인 서양 화가가 재해석한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여준다. 반대로 그 옆에서는 신윤복이 해당 작가들의 대표작을 '혜원 스타일'로 재해석한다.
오원 장승업의 대표작인 '삼인문년' 진품이 전시 중인 2전시실에서도 디지털 아트를 통해 장승업이 어떤 안료를 사용해 색을 구현했는지, 그림의 각 부분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알찬 전시가 가득해 밀도있는 관람을 즐길 수 있었다.
대구 핫플 둘러볼까
사유원과 간송미술관에서 '마음의 양식'을 채웠다면 '몸의 양식'도 채우는 게 마땅한 수순. 대구 호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터불고 대구'로 향한다. 인터불고 대구는 대구시 최초의 특1급(5성급) 호텔이다. 320여 개의 객실과 온천수가 나오는 사우나·키즈풀이 차별점이다. 사유원과 간송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쌓인 피로가 단숨에 풀린다.
인터불고 대구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식사'다. 대구 빵 맛집으로 유명한 '대인베짱'과 서울에도 여러 곳에 매장이 있는 '심비디움'도 인기지만 조식과 디너를 제공하는 뷔페 '더 뷔페 앳 인터불고'는 말 그대로 감동이다. 주말이면 하루 2000명 이상이 찾는 대구의 대표 '핫플'이다. 1인당 10만원이 채 되지 않는 가격에 서울의 유명 특급 호텔 뷔페를 능가하는 메뉴들을 선보인다.
인터불고 대구에서 숙박을 마치고 나면 마지막으로 대구의 중심 달구벌대로에 위치한 2030의 성지 '더현대 대구'에 갈 차례다. 더현대대구는 현대백화점 점포 중 비수도권 점포 매출 1위를 자랑하는 핵심 점포다. 지난 2022년 말 '더현대 대구'로 리뉴얼한 뒤 대구 MZ들의 핫플로 자리잡았다.
더현대의 아이덴티티인 '팝업스토어'를 더 강화해 지하 2층부터 지상 8층까지 전 층에 기획 팝업을 유치하는 등 볼거리를 늘려 일반 백화점과 차별점을 뒀다. 또 지하 1층에는 대구의 유명 맛집부터 서울에서 핫한 맛집까지 모은 '테이스티 대구'가 자리잡았고 지상 9층에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Jaime Hayón)이 디자인한 '더 포럼', '게이츠 가든'이 있다. 더 포럼과 게이츠 가든만 보고 가도 '본전'은 뽑는다.
이번 '협업 패키지' 고객이라면 더현대 대구의 자체 브랜드 카페 '워킹컵'에서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건 물론 무료 주차권과 리유저블백도 받을 수 있어 인근 동성로 등 시내 관광도 편리하다. 더현대 대구 인근에는 사유원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송미술관에서 미술의 아름다움을 경험한 뒤 대구의 중심상가에 자리잡은 더현대 대구를 방문해 대구의 현재를 즐길 수 있는 코스다.
이번 방문 이전까지 '대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단순했다. '막창'·'삼성 라이온즈'·'더위' 그리고 지난해 다녀왔던 '치맥축제' 정도가 대구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방문을 통해 대구에 대한 인상도 살짝 달라졌다. 예술과 자연, 힐링을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있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아쉬운 건 외부에서 대구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준비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인프라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당장 사유원과 간송미술관, 더현대대구, 인터불고 호텔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자차나 택시 외 선택지가 없다. 각 관광지 간 거리도 꽤나 멀다. 시가 나서서 이들을 연계하는 셔틀 등을 운영한다면 관광객들의 부담을 덜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