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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의 힘과 금융인의 명예

  • 2015.01.16(금) 15:09

대법원은 어제(15일) 국세청이 국민은행에 부과한 4121억 원의 법인세 부과가 잘못됐다고 최종 판결했다. 이 소송은 금융감독원이 지난 2003년 카드 대란으로 대규모 손실을 낸 KB국민카드를 합병하면서 9320억 원의 대손충당금을 추가로 쌓으면서 시작됐다. 금감원은 이를 회계처리 위반이라고 국세청에 통보했고, 국세청은 이를 근거로 법인세를 부과했다.

금감원은 회계처리 위반을 이유로 당시 김정태 행장과 윤종규 부행장(CFO)을 중징계했다. 이 징계로 이들은 은행을 떠났다. 금감원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으면 다른 금융회사에 취업할 수도 없다. 제척기간이 필요하다. 일종의 형기(刑期) 같은 거다.

故 김정태 행장은 그 뒤 금융계와 인연을 끊었다. 윤종규 현 회장도 은행에 진출하기 전 몸담았던 회계법인으로 가고 싶었지만, 이 징계로 여의치 않아 대학에서 강의하며 지냈다. 제척 기간이 끝나고 나서야 다시 KB금융지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당시 이 회계처리 위반 징계는 다소 무리라는 얘기가 많았다. 그래서 감독 당국과 관계가 원만하지 않던 김정태 행장을 찍어내기 위한 것이란 소문도 있었다. 조금 다른 차원의 문제긴 하지만, 과거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도 그렇다. 황 전 회장도 금감원의 징계로 시작한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그제(14일)는 임영록 전 KB금융 회장도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임 전 회장도 주 전산기 교체와 관련한 ‘KB 사태’ 책임으로 물러나고 그 이후 제기된 납품비리 의혹과 관련한 수사를 받았지만 어떤 부정도 없었다는 결론이다.

금감원의 힘은 세다. 법보다 주먹이 더 무섭다는 얘기가 달래 나왔겠는가? 금감원은 금융위원회가 각종 법부터 규정까지 모두 컨트롤하고 자신들은 검사만 할 뿐이라고 불평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금융당국은 가진 힘을 잘 써야 한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지만, 이 행정조치가 불편부당하진 않는지 꼭 살펴야 한다. 금융인들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하는 행정조치는 그저 힘센 당국의 갑질일 수도 있다.

故 김정태 행장, 윤종규 KB금융 회장, 금융투자협회장에 출마한 황영기 전 회장, 임영록 전 회장까지 공통점은 KB다. 주인 없는 KB에서 소리 없는 전쟁의 결과다. 이 전쟁에서 금융당국은 항상 이겼지만, 또 이렇게 항상 졌다. 조치의 정당성은 무너졌고, 관련 금융인들의 명예는 회복됐다.

금융당국은 이 과정을 잘 곱씹어야 한다. 금융시장을 관할하는 금융당국의 관치(官治)는 전 세계적으로 어느 정도 인정한다. 그러나 매우 제한적으로 그리고 엄격하게 사용해야 한다. 소위 금융시스템의 붕괴가 우려될 때다. 그 외엔 사실상 경영간섭에 가깝다. 그렇게 해선 창의적이고 혁신적으로 금융업의 활로를 모색하는 것은 애당초 없다.

금융인을 비롯해 많은 기업인은 혁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흔한 말로 틈새시장을 찾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결국 규제 회피에 가깝다고. 이 부서와 저 부서에 공통으로 해당하는 것이 결국 융합이 아니냐고. 이렇게 규제가 미처 만들어지지 않은 영역에서 떠오르는 일들에 정부와 금융당국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될 수도, 범죄가 될 수도 있다고.

어쨌든 말 많은 징계를 당하고, 늦었지만 명예를 회복한 윤종규 회장과 황영기 전 회장, 임영록 전 회장에겐 다행스러운 일이다. 단 한 분, 김정태 행장께는 이번 법원의 판결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여쭤볼 수 없으니 안타깝다. 그저 ‘그거 당연한 거 아니야’라며 천연덕스럽게 웃을 것만 같다.

지난 2일은 故 김정태 행장의 1주기였다. 이날 자택 묘역에 많은 분이 모였다. 이젠 금융인 생활을 떠나 태양광 사업에 뛰어든 백경호 아이솔라솔루션 대표는 “돌아가신 분은 말이 없지만, 그분의 뜻이 모인 모든 분의 마음에 있기에 따뜻하고 훈훈한 자리였다”고 추모식 분위기를 전했다. 이렇게나마 김정태 행장의 명예회복을 축하할 수 있어 기쁘다.

▲ 지난 2일 故 김정태 행장의 자택 묘역에서 열린 1주기 추모식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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