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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살리는 설날 만두

  • 2015.02.13(금) 08:15

▲ 삽화: 김용민 기자/kym5380@

만두는 중국 삼국시대 제갈공명이 만들었다. 사람머리 모양으로 만두를 빚어 제사를 지낸 것이 최초다. 역사적으로 실제 있었던 사건이었는지의 여부를 떠나 삼국지를 읽은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알고 있다. 어쨌거나 삼국지 만두는 중국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 최초로 만두를 먹었을까? 12세기 말인 고려 명종 때다. 소설인 삼국지와 달리 실제 역사적 사실의 기록인 고려사에 실려 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다소 엽기적일 수도 있는 이야기다.


“거란인으로 고려에 귀화한 위초의 아버지가 나쁜 병에 걸렸다. 의사가 ‘자식의 고기를 먹으면 치료할 있다’고 하자 위초가 스스로 허벅지 살을 잘라 만두를 빚어 부친을 공양하니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소식을 들은 왕이 위초의 효심이 고금에 없을 정도로 갸륵하다며 크게 상을 내렸다”


기록에서 몇 가지 주목해 볼 부분이 있다. 먼저, 만두는 중국에서 전해졌다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고려사를 보면 거란 출신을 통해 들어왔다. 만두의 본고장은 서역이다. 중국도 실크로드를 타고 전해졌다. 우리 역시 서역에서 직접 전해졌다.


또 하나, 소설 삼국지의 내용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제갈공명이 산 사람으로 제사를 지내는 대신 제물이 될 뻔했던 사람을 살린 것처럼 고려의 만두 역시 죽어가는 아버지를 살려낸 인간미 넘치는 음식이었다. 소설 속 창작이 됐건, 역사 기록이 됐건 왜 만두를 이렇게 휴머니즘이 넘치는 식품으로 묘사했을까?


고려사에는 만두 이야기가 또 한 번 나온다. 1343년 충혜왕 4년의 일이다. 그해 10월 어떤 자가 궁궐 주방에 침입해 만두를 훔쳤다. 왕이 화가 나 도적질을 했으니 죽이라고 명령했다. 만두로 인해 사람이 죽었다. 충혜왕이 극악무도한 패륜아적인 왕이기도 했지만 당시 만두는 훔치다 잡히면 사행을 당했을 정도로 귀한 식품이기도 했다.


만두가 얼마나 귀했는지를 약 80년 후인 세종실록 4년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태상왕의 영혼을 달래는 제사를 지내는데, 제사상에 놓는 만두를 제외하고 참석자들한테는 만두를 대접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유는 만두가 사치스러운 음식(侈美之食)이기 때문이다. 믿기 힘들지만 조선시대 초기까지만 해도 만두는 차례상에나 놓는 사치스런 식품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먹으면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고 믿었던 귀중한 음식이었다.


따지고 보면 만두는 그 자체로 하늘에 바치는 차례용 제물에서 비롯된 식품이었다. 만두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시대가 끝난 후 들어선 중국 진(晉)나라 때의 문헌인 병부(餠賦)에 실려 있다. 여기에 음양이 교차하는 시절에 맞춰 제사를 지내는데 만두를 준비한다고 노래했다.

 

음의 계절인 겨울과 양의 계절인 봄이 교차하는 시절이나 바로 지금의 설날이다. 이날 바람이 잔잔해지고 비가 그쳐 풍년들기를 기원하며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만두를 준비했다는 것이다. 사물의 역사를 적은 송나라 때 사물기원에도 만두는 정월 초하루 봄 제사 때 하늘에 바치는 제물이었다고 적혀있다.


설날 먹는 만두는 죽어가던 사람도 살아날 정도로 인간미가 넘치는 귀중한 음식, 새해 첫날 하늘에 복을 빌며  먹는 음복(飮福)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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