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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소고기의 역사

  • 2015.04.24(금) 08:31

한때 “기분 좋다고 소고기 사먹겠지요”라는 유행어 덕분에 웃었지만 따지고 보면 역사적으로 소고기가 사람을 웃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고종이 단발령을 내리자 완고한 조선 선비들이 머리카락은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이기에 머리를 자를지언정 상투는 자를 수 없다며 반발했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소고기를 먹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것이다.

 

1872년 2월 18일, 열 명의 자객이 메이지 일왕이 사는 궁궐에 침입하다 발각됐다. 신문 결과  소고기를 먹으라는 정책에 대한 반발이었다. 일본은 약 1,200년 동안 육식을 금지했다. 그런데 메이지 유신으로 갑자기 서양인처럼 체격을 키워야 한다며 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했다. 그러자 수구파 사무라이들이 부정 타게 고기를 먹으라고 한다며 목숨 걸고 개혁에 반발해 궁중에 뛰어든 것이다. 일본에서 소고기를 먹게 된 배경에는 이렇게 코미디 같은 사건이 있었다.

 

중국 소고기 사건도 어처구니없기는 마찬가지다. 주인공은 이태백과 더불어 당나라를 대표한 시인 두보다.

 

“나라는 파괴됐어도 산천은 그대로(國破山河在)/무너진 성에도 봄은 오고 초목 우거졌네(城春草木深)/시절을 느끼어 꽃도 눈물 뿌리고(感時花濺淚)/이별이 한스러워 새소리에도 놀란 마음(恨別鳥驚心)”

 

‘춘망(春望)’이라는 시로 전쟁 통에 헤어진 가족을 그리워하며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야 하는 아픔이 녹아 있다. 두보는 낭만파였던 이태백과는 달리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때문에 두보의 죽음은 어딘가 비장하고 비극적이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슬프면서 해학적이다. 소고기 과식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 삽화: 김용민 기자/kym5380@

 

‘신당서(新唐書)’와 ‘구당서(舊唐書)’에서는 모두 열흘 동안 굶주렸던 두보가 갑자기 독한 술을 마시고 소고기를 과식했던 것을 사망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동정호의 사당을 구경하다 폭우로 섬에 갇혔다. 열흘 동안 고립돼 아무 것도 먹지 못하다가 소식을 들은 현령이 보내 준 술과 소고기를 받고 급하게 먹다 사망했다. 위대한 시인이 굶주림 끝에 과식으로 체해 세상을 떠났으니 슬픔을 넘어 허탈한 웃음이 나오는 이유다.

 

진짜 웃기는 소고기는 우리나라에 있다. 고려 때 문장을 날렸던 이규보가 지금 담배 끊은 사람이 금연 수기 쓰 듯 ‘소고기를 끊다(斷牛肉)’라는 시를 남겼다. 

 

먼저 시 앞부분에 대단한 소고기 사랑이 엿보인다. 왕년에 소고기를 그만 먹으려 했지만 눈으로 보고는 먹지 않고 견딜 수 없었기에 차마 글로 남기지는 못했는데 이제 소고기를 보고도 먹지 않을 수 있기에 시를 짓는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소고기를 끊었다는 시의 내용이 개그 수준이다. 

 

“소는 넓은 밭을 가는데 능하여 / 많은 곡식을 가꿀 수 있다네 / 곡식이 없으면 사람이 어찌 살랴 / 사람 목숨 모두 여기에 달려있네 / 게다가 무거운 짐까지 운반하여 / 모자란 인력을 보충해 주네 / 이름이 비록 소이지만 / 천한 가축으로 보면 안 된다네 / 어찌 차마 그 고기를 먹고 / 불록한 배를 채우랴 / 가소롭다, 두보가 / 죽는 날 배불리 소고기 먹은 것이”

 

세상에 이런 오리발이 따로 없다. 실컷 먹다가 간신히 끊었다고 해놓고는 소고기 먹는 사람을 인정도 없고 기본이 안 된 사람으로 몰아세웠다. 급기야 열흘을 굶었다 소고기를 과식해 세상을 떠난 두보를 비웃기까지 했다. 오리발로 개그맨 못지않게 웃기는 이규보지만 요즘 정계에 강적이 나타났다. 내미는 오리발의 차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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