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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 맛 같다는 곤드레 밥

  • 2015.06.26(금) 08:31

사람 팔자 모르는 것처럼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음식 팔자가 아닌가 싶다. 요즘 거리에서 사먹는 음식 대부분은 예전 같으면 지배계급에서 먹었던 고급 음식이다. 궁중음식이었다는 떡볶이는 물론이고 순대와 곱창도 고대에는 귀족의 음식이었다.

 

반면 예전 같으면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할 수 없이 먹던 음식들이 지금은 참살이 식품이라는 이름으로 각광을 받는다. 무엇보다 칼로리가 적어 살이 안찌기 때문이다. 이런 음식 중 하나가 곤드레 밥이다.


▲ 삽화: 김용민 기자/kym5380@

 

곤드레 밥은 강원도 산골 오지마을에서 곡식이 떨어진 화전민들이 굶주림을 면하려고 먹었던 음식이다. 쌀은 진작 떨어진데다 그나마 감자, 옥수수 등의 양식마저 바닥나면 산나물인 곤드레를 따다 밥에 넣어 양을 부풀려 먹었다. 민요인 정선 아리랑에 당시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한치 뒷산의 곤드레 딱죽이 임의 맛만 같다면/올 같은 흉년에도 봄 살아나지/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

 

한치 뒷산은 강원도 정선군 동면에 있는 산 이름이고 곤드레, 딱죽이는 산나물 이름이다. 거친 산나물이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과 같아서 맛있게만 먹는다면 흉년에도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왜 반복하나 싶겠지만 사실 지금 우리가 먹는 곤드레 밥은 옛날 화전민들이 먹던 그 밥이 아니다. 지금은 쌀밥에다 곤드레 나물을 넣어 양념장에 비벼 먹지만 옛날 곤드레 밥은 밥이 아니라 곤드레 나물에 콩나물 잘게 잘라 섞은 후 죽을 쑤어 먹었다. 그나마 곤드레 나물마저 캐지 못하면 굶거나 다른 풀을 뜯어 먹었는데, 풀죽만 먹다 보니 부황이 들어 얼굴이 퉁퉁 붓는 고생을 했다.  

 

지금은 곤드레 밥이 맛있는 별미고, 참살이 식품으로 인기가 높지만 예전 산골 사람들에게는 춘궁기를 굶지 않고 살아 넘길 수 있을지 없을지를 좌우하는 생명줄이었던 것이다. 

 

곤드레 밥 못지않은 음식이 또 있으니 도토리 밥이다. 옛날 산간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가을이면 도토리를 따서 저장해 두었다가 겨울에 말린 도토리를 꺼내어 가루로 빻아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요즘 시각으로는 도토리로 묵을 만들면 맛도 좋고 허기도 메울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겠지만 배고픈 사람에게는 빵이 없으니 과자를 먹으라는 것과 비슷한 흰소리가 된다. 도토리를 빻아 묵을 만들면 양이 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든다. 그러니 긴긴 겨울과 춘궁기 배고픔을 이겨내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면 도토리를 방아에 찧어 가루로 만든 후 콩이나 옥수수 등과 섞어서 도토리 밥을 지으면 양도 푸짐한 것이 먹으면 든든해서 충분히 한 끼 식사를 대신할 수 있었다.

 

없었던 시절에는 이렇게 밥에다 다양한 나물이나 채소를 섞은 나물밥을 먹었다. 실제 조선시대 문헌을 보면 나물 넣어 짓는 밥의 종류가 적지 않다. 곤드레 밥을 비롯해 콩나물밥, 시래기 밥, 김치밥이 있고 무밥에 쑥밥도 있다. 영역을 넓혀보면 채소나 나물뿐만 아니라 감자밥, 고구마 밥과 도토리 밥에 칡 밥도 있다. 모자란 곡식을 대신에 양을 불리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영양이 넘쳐 다이어트를 고민해야 하는 현대에는 대부분 별미가 됐으니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요즘처럼 사는 것이 팍팍하다 싶을 때 먹으면 때로 여러 면에서 힐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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