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첩은 미국 패스트푸드의 상징과도 같은 식품이지만 뿌리는 아시아다. 그것도 우리나라 까나리 액젓과 같은 생선 젓갈이 변해서 토마토케첩이 됐다. 베트남의 생선 간장인 넉맘, 태국의 생선 젓갈 남쁠라, 필리핀의 생선 액젓인 파티스 같은 음식이 케첩의 뿌리라는 것이다.
토마토케첩은 주재료인 토마토를 설탕, 소금, 식초를 비롯한 갖가지 양념에 버무려 만든다. 케첩을 만드는 여러 재료 중에 생선 액젓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근거로 토마토케첩의 뿌리가 아시아의 생선 액젓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얼토당토않은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케첩의 뿌리와 변신의 과정을 밝혀 줄 열쇠가 그 이름에 남아 있다. 토마토케첩 중에서 토마토라는 영어 이름이 남미 원주민인 인디오 언어에서 비롯된 것처럼 케첩(ketchup)이라는 영어 단어의 어원 역시 중국 남부와 동남아 일대에서 쓰는 언어인 민남어(閩南語)가 뿌리다.
민남어는 지금의 중국 남부 복건성과 광동성, 그리고 타이완에서 쓰는 중국어 사투리와 동남아 말레이 계통 언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17세기 무렵의 동남아와 중국 남부에서는 생선 소스를 케첩이라고 불렀다. 물론 지역에 따라 케첩, 쿠에찹, 코에챱 등으로 발음이 조금씩은 달랐지만 모두 생선 액젓을 나타내는 말로 한자로는 규즙(鮭汁)이라고 적었다. 따지고 보면 케첩의 첩도 우리말 즙과 발음이 비슷하다.
케첩의 원조라는 규즙은 어떤 식품일까? 규(鮭)는 구체적인 생선으로는 복어나 연어를 나타내는 한자지만 일반적으로는 생선요리를 가리킬 때 물고기 어(魚)자를 대신에 쓰는 한자다. 즙(汁)은 국물이라는 뜻이니 쾨챱, 즉 규즙은 문자 그대로 생선으로 만든 즙, 생선 액젓이라는 의미다.
▲ 삽화: 유상연 수습기자/prtsy201@ |
어원학적으로 토마토케첩의 뿌리가 동남아시아와 중국 남부지방에서 쾨챱이라고 부르는 생선 액젓에서 비롯됐다는 흔적이다. 네덜란드와 영국 동인도 회사 소속 선원들은 왜 하필 아시아의 생선 액젓을 유럽으로 가져간 것일까? 그리고 유럽으로 건너간 생선 액젓이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오늘날의 토마토케첩으로 변신을 했으며 토마토케첩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동인도 회사 선원들이 생선 액젓을 유럽에 가져간 까닭은 단순히 낯선 이국의 식품을 고향에 소개하거나 혹은 장기 항해 때 선원들이 먹기 위한 조미료 차원이 아니었다. 네덜란드와 영국 동인도 회사의 주도적인 생선 액젓 교역 품목이었던 것이다.
생선 발효 냄새가 지독한 싸구려 생선 액젓이 왜 동인도 회사의 교역 품목이 됐는지는 17세기 동인도 회사의 역할을 생각하면 분명해진다. 당시 동인도 회사는 후추를 비롯해 생강, 계피, 정향, 육두구를 비롯해 아시아의 차까지 각종 향신료 무역으로 돈을 벌었다.
생선 액젓도 예외가 아니었다. 동남아 현지에서는 값싼 생선 젓갈이었지만 유럽에 가져가면 동양에서 온 값비싸고 신비로운 조미료로 둔갑했다. 케첩의 뿌리가 생선 액젓이라는 사실, 어원이 중국어 사투리라는 것도 흥미롭지만 케첩의 발달과정에는 세상을 바꾼 조미료 후추처럼 동서양 향신료 무역의 역사가 담겨 있다는 사실도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