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좋아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해장음식은 술이다. 역사적으로 해장술 마신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만 그중 으뜸은 3세기 진나라 때 유령(劉伶)이 아닌가 싶다. 죽림칠현의 한 명으로 정권교체기에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 대나무 숲 우거진 마을에 숨어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평생을 보냈다. 얼마나 술을 좋아했는지 술은 술로 해장한다는 오두해정(五斗解酲)이라는 고사가 ‘세설신어’라는 책에 전해진다.
유령이 부인에게 술을 구해달라며 조르자 부인이 술잔을 깨트리며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 제발 술을 끊으라며 울면서 매달렸다. 그러자 유령이 “이제는 스스로 술을 끊을 수 있는 단계는 지났으니 천지신명께 기도해 끊겠다”며 먼저 제물로 술과 고기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다.
부인이 그 말을 믿고 제사상을 차리자 무릎 꿇고 기도하기를 “하늘이 나를 세상에 태어나도록 했을 때 술로써 이름을 날리게 했으니 한번 마셨다하면 열 말이요, 해장술로는 다섯 말을 마시도록 했다. 그러니 신명께서는 삼가 내 아내의 말을 듣지 마소서”라고 기도한 후 제사상에 차린 술과 고기를 먹고는 취해 쓰러져 잠이 들었다.
술로 쓰린 속을 술로 풀었다는 이런 주당의 이야기야 논외로 치고 술 많이 마시는 한국에는 다양한 해장국이 발달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속풀이국도 많은데 지금은 맛보기 힘든 향토 음식도 적지 않다. 전주 콩나물 해장국에서부터 부산 해운대 복국, 하동 재첩국, 서울의 청진동 선지해장국, 무교동 배춧국, 양평 뼈다귀 해장국, 서산 태안의 우럭젓국, 목포 무안 연포탕, 순천 장뚱어탕, 여수 광양 갯장어탕, 영동 보은 괴산의 올갱이국, 속초 주문진의 곰칫국, 강릉 물회국수, 양양의 섭국, 제주 갈칫국과 돼지국수 등등 추억의 해장국이 즐비하다.
이중에서도 가장 친숙한 음식은 역시 콩나물 해장국인데 콩나물국이 해장국으로 발달한데는 역사적인 이유와 근거가 있다. 콩나물에 풍부한 아미노산과 아스파라긴산이 숙취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이미 현대과학으로도 증명됐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도 진작부터 콩나물국이 술 마신 후 속 푸는데 좋다는 사실을 의학적으로 알고 있었다.
▲ 삽화: 김용민 기자/kym5380@ |
콩나물에 관한 기록은 6세기 초반 의학서인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 처음 보인다. 황권(黃卷)이라는 약재 이름이 보이는데 ‘황두아’를 햇볕에 말린 것이라고 했다. 황두(黃豆), 즉 노란 콩의 싹(芽)을 말린 것이니 바로 콩나물이다. 황권은 사실 요즘도 한의학에서 붓기를 빼고 근육통을 없애며 위의 열을 내리는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술 마신 후 콩나물국을 먹으면 왜 해장이 되는지 이유를 알 수 있다.
본초경에 주석을 단 ‘본초경집주(本草經集注)’라는 서적에도 검정콩으로 콩나물을 만드는데 5촌쯤 자란 것을 말리면 황권이 되며 끓여서 복용한다고 했다. 콩나물을 끓여서 먹는다고 했으니 바로 콩나물국인데 6세기 무렵 콩나물국을 약으로 썼다는 이야기다.
동의보감에도 콩나물을 먹으면 마음이 맑아지고 몸을 보할 수 있다고 했는데 대사를 촉진해 위의 울혈을 제거하며 피를 맑게 하기에 원기회복에 좋다고 했다. 요즘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술 마신 다음날 속을 푼다며 얼큰한 콩나물국을 찾는다. 콩나물국이 약 1500년 전부터 의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해장국으로 쓰였다는 사실이 의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