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사람을 쓰는 용인술, 인사가 대통령 당선 전과 후, 비포어(before) 애프터(after)가 많이 달라졌다. 당을 이끌 때와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천지차이…이 차이의 시작과 끝이 바로 사람을 쓰고, 내치는 '인사'다.
98년 대구 달성 재보선에서 당선되며 당에 들어온 박 대통령은 당을 이끄는 동안 '믿는 사람'을 '끝까지' 데리고 갔다. 하지만 당의 인사와 정부의 인사는 그 규모에서부터 비교 불가능이다. 동네 구멍가게 수준인 당 인사에 비해 정부 부처, 주요 기관의 인사 규모는 남대문시장 정도랄까.
당선 직후 인수위를 짤 때부터 박 대통령은 믿는 사람 보다는 능력과 전문성을 먼저 따졌다. 또 이달 초 아무도 예상못했던 청와대 인사에서 '끝까지'가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줬다. 대통령은 5년 단임, 박 대통령에겐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과거와 미래를 엿볼 수 있다.
◇ 함께 일한 적 없는…'깜짝 인사'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남덕우 전 총리, 김정렴 전 비서실장 등 경제를 잘 아는 최측근 인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치, 안보를 책임질테니 경제는 임자(박 전 대통령이 격의없이 부르는 호칭)가 맡아서 해줘"
현 부총리는 이런 말을 박 대통령으로부터 들었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현오석 부총리와 함께 일을 해본 경험이 없다. 현 부총리는 엄밀히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발탁한 MB맨이다. 747공약 등의 입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연으로 인수위에 들어갔고, MB정권 출범 후 2009년부터 국책연구기관의 대표 격인 한국개발연구원(KDI)원장을 지냈다.
현 원장은 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을 만나는 자리에 동석했다. 앞서 2011년 9월 새누리당 천안 연찬회에서 현 원장이 '재정건전성과 올바른 복지정책'이라는 주제로 발표할 당시 박 대통령과 조우했다.
당시 현 원장은 강연에서 박 대통령이 생각하고 있던 복지구상에 딱 들어맞는 강연을 해 박 대통령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드러난 인연은 이게 전부다. 전문성과 능력은 인정하지만 이를 실제로 확인해본 적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현오석 부총리에게 '임자'라는 호칭은 물론, 경제를 다 맡아 달라고 말했을 리가 없다.
애당초 초대 경제부총리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졌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권오규 전 재정경제부 장관, 심지어 민주통합당 이용섭 전 정책위 의장까지 거론됐다. 박 대통령의 선택은 현오석 KDI원장이었다.
◇ 충청도 양반…'설계자 아닌 집행자'
애초부터 박 대통령은 김진표, 강만수 처럼 전 정권의 경제사령탑 같은 역할을 현 부총리에게 기대하지 않았을 듯하다. 대통령 선거와 인수위, 그 이후 국정운영에서 전 정권1기 경제팀장이었던 김진표와 강만수씨는 대통령의 파트너였다.
하지만 현 부총리는 박 대통령 대선 공약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정권의 경제 밑그림을 그리지도 않았다. 현 정권의 화두인 '창조경제' 역시 측근 교수진의 작품이다.
임명 초기 현 부총리는 자신의 경제철학에 따라 한국 경제를 그려 나가기보다 박근혜 대통령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 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KDI 원장 시절에도 "국책연구원은 정부 정책을 보좌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세제개편안 파동을 보면 실제 현 부총리가 얼마나 '집행자' 역할에 충실한 지 보여준다.
현 부총리는 1950년 청주에서 태어났다. 외유내강(外柔內剛)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충청도 양반 스타일이다. 14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전임자들과 달리 관료로서 승승장구하진 못했다.
경제기획원 사무관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이 역점을 둔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에 참여한 게 박 대통령과의 인연이라면 인연. 재경부에서 경제정책국장, 국고국장 등을 지내다 세무대학장을 끝으로 1차 관료 생활을 마무리했다.
◇ 공약 이행 재원 마련?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경제민주화, 복지, 일자리로 요약된다. 특히 이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증세보다는 세원을 확보해 재원을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지하경제 양성화, 탈루 세금 추징, 비과세·감면제도 개혁 등이 항상 뒤따른다.
박 대통령이 평소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하는 두 단어가 있다. '신뢰' '약속'이다. "대선공약은 반드시 지킨다"는 말을 스스로 뒤집지 않는한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하는 게 현오석 경제팀의 지상과제다. 경제민주화 얘기가 최근 슬슬 잦아드는 와중에 세제문제 개편 사태가 벌어진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현 부총리와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당장의 증세보다는 비과세 감면제도 개혁을 통해 복지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의 평소 지론과 맞아 떨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세제개편의 핵심이 비과세·감면 축소였다. 결국 여론의 엄청난 반발, 여야 정치권의 반대, 이어지는 박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로 하룻 만에 바뀌게 된다.
'증세없는 복지확대'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여전히 박 대통령은 증세나 복지 감축 보다는 약속을 지키는 데 필요한 '실탄'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하다. 현 경제팀의 운명이 여기에 달려 있다.
◇ 위기 또 위기…10월이 고비
하지만 불과 한달 뒤 세제개편안 파동이 현 경제팀을 강타한다. 경질론, 자진 사퇴 요구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지만 아직 박 대통령은 묵묵부답이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 4월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단과의 오찬에서 역대 정권에서 장관들이 너무 자주 바뀌었다는 지적에 대해 "일을 마치기도 전에 또 새로 임명하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현 부총리는 첫 위기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부총리는 축구팀 감독과 같은 운명이다. 성적 나쁘면 경질되는 것 아니냐. 결과에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현 부총리는 박 대통령의 피고용인이다. 김진표, 강만수 처럼 대통령과 파트너십을 나눈 사이가 아니다.
불과 두 달 앞으로 다가온 10월 재보선은 최대 9곳(대법원 확정 판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이다. 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일을 마치는 시점' 또 현 부총리가 말하는 성적을 평가받을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