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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규직이 뭐길래]① 왜 지금 '중규직'인가

  • 2014.12.05(금) 11:51

▲ 대형마트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사에 맞서 투쟁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 '카트'의 한 장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중규직'을 만들겠다는 기획재정부의 구상은 노동계는 물론 고용노동부의 반발에 부딪혔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국정과제로 제시해 사실상 기재부의 손을 들어줬다.

돌이켜보면 IMF 당시 정리해고 도입 이후 노동시장 양극화 현상은 심화됐다. 이런 까닭에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주요한 목표로 삼고 ‘유연안정성(Flexicurity)’을 화두로 삼았다. 하지만 경직된 쪽의 유연성(Flexibility)도 제고하지 못했고 비정규직과 불안정 노동층의 안정성(Security)도 확보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 역시 대선 공약이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선 유연성과 안정성을 함께 내세웠지만, 최근엔 확연히 유연성 제고 쪽으로 기울었다. '중규직'이란 용어로 대변되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최근 논의 전개와 과거 정부의 여러 시도, 해외 사례, 정치사회적 역학관계와 실현 가능성 등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 운 띄우고, 힘 싣더니..대통령이 마침표

지난달 24일 정부세종청사 기자실. 이찬우 기재부 경제정책국장은 "기업 부담을 덜어주는 차원에서 정규직에 대한 해고 요건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고용의 유연성이 균형을 잡는 쪽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방향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날인 25일 천안 국민은행 연수원 기재부 출입기자단 정책세미나.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 때문에 기업들이 정규직을 겁이 나서 못 뽑는 상황이다. 60세까지 정년을 보장하는 것이 대표적인 정규직 과보호 사례"라고 했다. 최 부총리는 "(정규직에 대한) 해고를 쉽게 하기보다는 임금체계를 바꾸는 등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2월 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사진). 박근혜 대통령은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임금 격차, 노동시장의 경직성, 일부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 등은 노사 간, 노노 간 갈등을 일으켜 사회 통합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장애물"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날 정부 고위 관계자는 "고용지원 정책을 재점검하는 한편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대하기 위해 임금체계 등 정규직 과보호 장치를 손질하고 비정규직 보호 방안의 일환으로 이같은 새로운 직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장관이 국장의 발언을 확인하고 대통령이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정부가 이달 내놓을 '2015년 경제정책방향'에 이 내용들이 반영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어떤 그림을 그리나

새로운 고용체계에 대한 구체적 그림은 이렇다.

급여나 4대 보험 같은 대우는 정규직 수준이지만 정년에 얽매이지 않고 고용 계약기간을 한정한다는 것. 경직된 정규직과 불안정한 비정규직 사이의 체계를 목표로 두고 있으니 '중규직'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양극화된 노동시장 구조를 바꿔보겠다는 현 정부의 시도는 이미 진행형이다. 현 정부의 핵심 고용정책 중 하나인 시간제 일자리가 대표적 예다. 임신·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저출산·고령화시대에 맞춰 장시간 노동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다. 2017년까지 괜찮은 시간제 일자리를 93만개 만들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으로 시간제 일자리는 지난 해 보다 15만개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30대 여성의 시간제 취업 비중은 오히려 줄었고 20대와 60대 취업자가 늘어난 자리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현재까지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이다. 새로 중규직 이야기가 나온데는 이런 배경도 자리 잡고 있다.

◇ "이대론 안 된다" vs. "본질적으론 비정규직"

노동시장 개혁, 중규직 논란의 쟁점은 결국 두 가지로 귀결된다. 첫째, 경제성장과 고용확대의 모멘텀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둘째, 실현이 가능할 것인가? 실현 가능성 여부는 세 번째 글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째 부분에 대해선 노사 간의 견해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재계는 어떤 식으로든 유연화가 확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얼마 전에 현대자동차에 대해서 황당한 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출근한 것처럼 꾸미고 무단결근한 채 해외여행을 다녀온 현대자동차 생산직 조합원이 해고무효소송에서 이긴 것을 말한 것이다.

이 임원은 "사실 고용 유연화가 된다고 안 할 투자를 하는 건 아니겠지만 심리적 요인은 상당히 크다"며 "예컨대 생산라인을 늘리고 싶어도 사람 쓰는 게 겁나서 못 쓰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한 목소리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해 노사정 협의기구에 들어있는 한국노총의 김동만 위원장은 "정부가 너무 큰 사안을 너무 쉽게 건드리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내년 초에는 전면투쟁, 전쟁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노동계 입장은 비정규직의 문제를 해결해 상향 평준화로 가는 방향을 잡아야지 정규직을 낮춰서 하향평준화로 가는 방향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노동문제 전문가인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박종식 박사는 "기업 입장에서는 정규직의 임금 수준 전체를 낮추거나 해고 유연성을 확대하거나 둘 다 되면 좋고, 둘 중 하나라도 좋다는 식일 것이겠지만 이 자체로 고용이 확대될 진 예측불가"라고 말했다.

박 박사는 "노동 쪽을 보면, 정년이 얼마 남지 않는 생산직 숙련 노동자나 은행 창구의 텔러 같은 한정된 직종에는 메리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머지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중규직이라는 게, 대우를 좀 더 좋게 해준다는 것이지 본질적으론 비정규직 아니냐"고 덧붙였다. 

 

[중규직이 뭐길래] 기획 시리즈는 외부 전문가와의 협업(co-work)을 지향한다는 편집방향에 맞춰 외부 기고를 통해 작성됐습니다. 본 기사는 '의제와 전략그룹 더모아'의 윤태곤 이사(taegonyoun@gmail.com)가 취재 및 작성을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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