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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규직이 뭐길래]③ 박근혜 정부는 가능할까

  • 2014.12.08(월) 10:29

사회적 합의, 법안 통과 등 첩첩산중
민노총 차기 지도부 '전면투쟁' 불보듯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중규직'을 만들겠다는 기획재정부의 구상은 노동계는 물론 고용노동부의 반발에 부딪혔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국정과제로 제시해 사실상 기재부의 손을 들어줬다.

 

돌이켜보면 IMF 당시 정리해고 도입 이후 노동시장 양극화 현상은 심화됐다. 이런 까닭에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주요한 목표로 삼고 ‘유연안정성(Flexicurity)’을 화두로 삼았다. 하지만 경직된 쪽의 유연성(Flexibility)도 제고하지 못했고 비정규직과 불안정 노동층의 안정성(Security)도 확보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 역시 대선 공약이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선 유연성과 안정성을 함께 내세웠지만, 최근엔 확연히 유연성 제고 쪽으로 기울었다. '중규직'이란 용어로 대변되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최근 논의 전개와 과거 정부의 여러 시도, 해외 사례, 정치사회적 역학관계와 실현 가능성 등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월1일 청와대에서 열린 노사대표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중규직이라는 이름이 됐건 다른 이름이 됐건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난제 중의 난제다. 정리해고 도입이 IMF라는 특수성 때문에 그나마 저항이 덜했을 뿐 김영삼 정부,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등 민주화 이후 모든 정부들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야당의 지지율 보다 훨씬 높긴 하지만, 현 정부에서도 쉽진 않아 보인다. 단기적으로도, 중장기적으로도 장애물이 많다.

◇ '2015년..1년 밖에 없다'

지난 1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독일의 사례를 들며 노동유연성 제고를 역설했지만 언론과 대중의 관심은 비껴갔다.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동'에 대한 박 대통령의 첫 언급에 온통 관심이 집중된 것이다. 이에 대해 여권 핵심 인사는 "노동시장 개혁은 커녕 연내 공무원 연금 개혁이고 뭐고 당장 무슨 일이 되겠냐"고 개탄했을 정도다.

핵심적 국정 목표인데다가 대통령의 신임이 워낙에 두터운 최경환 기재부 장관이 앞장서기 때문에 밀고가긴 밀고 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실현 동력이 있냐는 것은 별개 이야기다.

▲ 지난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노동시장 구조개선특위 전체회의.

사회적 합의 내지는 여론의 지지 없이 노동시장 구조가 바뀐 사례는 국내외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현 정부의 사회적 합의 기구인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에는 민주노총은 참여하지 않고 있다. 한국노총조차 "이대로라면 전면투쟁이다"라며 철수 의사를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게다가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 유연성을 확보하는 등 새로운 고용형태를 만드는 것은 법률 개정사항이다. 국회선진화법 이후에는 야당이 반대해도 여당이 물리력을 동원해 법안을 밀어붙이는 것이 옛날 이야기가 됐다.

참여정부 당시 비정규법의 경우 1야당이던 한나라당도 힘을 실었지만 통과되는 데 2년이 걸렸다. 2016년이 총선이 있는 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박 대통령에게 주어진 시간은 2015년 1년 뿐이다.  최근 정부쪽에서 "정리해고 요건을 손대진 않겠다. 고용 경직성 보다 임금 경직성이 더 문제니 호봉제와 성과급제, 임금피크제를 섞는 복합 임금체계를 검토하고 있다"는 등 마치 한 발 물러서는 듯한 말이 흘러나오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 정치적 리더십과 사회통합 없이는 불가능

노동시장 구조개혁 성사를 위해선 좀 더 거시적 관점의 접근이 필요할 수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10년 째 부러워하는 독일의 아젠다 2010  사례가 그렇다.

아젠다 2010은 2000년대 초반 사민당 정권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Neue Mitte(신중간)' 노선의 일환이었다. 이는 당시의 세계적 조류 및 독일 정치환경의 근본적 변화와도 연결된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민주당과 노동당의 전통적 지향에서 우클릭하면서 '제3의 길'을 채택했고 슈뢰더 역시 이에 발을 맞춘 것이다. 독일 내부 환경을 보자면  보수정당인 기민기사연합은 조금 왼쪽으로 이동했고 진보정당인 사민당이 조금 오른쪽으로 옮아갔다. 이런 큰 정치적 변화의 결과물로서 노동시장구조개혁안이 나왔고 여야가 힘을 모은 것이다.

다른 정책 사안들도 그렇겠지만 노동시장구조개혁의 경우 정치적 리더십과 합의가 필수 요건임을 독일이 보여줬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여야의 정쟁과 갈등양상이 잦아들고 사회 전반적으로 통합력이 강화가 선행되지 않고선 난망한 일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 비정규법이나 독일의 아젠다2010을 진보성향의 정권이 추진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항이 덜했을 수 있다는 분석을 감안하면 보수성향의 박근혜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성사시키기 위해선 유무형의 비용이 더 클 수 있다. 장악력이 약해져가는 국면에서 노동법을 무리하게 개정하려다 전국민적 저항에 직면했던 김영삼 정부가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 지난 9월19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등 노조단체들이 '기획재정부의 강압적인 단협개악 협박에 대한 노사정 대화거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포커스] 민주노총 선거도 영향 미칠까?

민주노총 임원 선거가 최초로 조합원 직접 투표로 진행되고 있다. 3일부터 9일까지 투표가 진행되는데 과반 득표에 성공한 후보가 없을 경우 17일부터 23일까지 결선투표가 진행된다.

위원장직에 출마한 네 명의 후보들은 지난 2일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비정규직 고용기간 제한을 허물고, 정규직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며, 전체 노동자의 임금을 하향평준화하는 임금체계 개편을 시도하고 있다"며 "고용을 무기삼아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정부·여당의 협박정치에 맞서 결코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입을 모았다.

한 노동계 인사는 "후보들이 상대적으로 온건한 쪽도 있고 강경한 쪽도 있지만 노동시장구조개혁 앞에선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현장 조합원 중의 의견이 조금은 엇갈리기도 하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대해서도 모든 후보들이 다 반대하는 판인데 '중규직' 반대는 말하나 마나 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래서 선거 자체에 영향을 미치진 않겠지만 투표율은 좀 올라갈 수 있겠다"면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전면투쟁을 선언할 것이 뻔하다"고 덧붙였다.

'힘'이 예전만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민주노총은 위원장 직선제를 혁신과 재정비의 돌파구로 삼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해고요건 완화나 '중규직' 제도화 등을 들고 나올 경우 오히려 노동계가 힘을 모을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 연금개혁선에 노동시장 구조개혁까지 더해지면 노정갈등의 전선은 훨씬 더 넓고 깊어질 수밖에 없다.  


 

[중규직이 뭐길래] 기획 시리즈는 외부 전문가와의 협업(co-work)을 지향한다는 편집방향에 맞춰 외부 기고를 통해 작성됐습니다. 본 기사는 '의제와 전략그룹 더모아'의 윤태곤 이사(taegonyoun@gmail.com)가 취재 및 작성을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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