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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집살이 in 유럽]⑤120년의 역사, 사회주택 비중 34%

  • 2019.08.05(월) 09:00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르포>
1901년 주택법 제정으로 시작..사회주택 비중 세계 1위
민간단체, 구성원 주거안정 위해 직접 주택 공급
전체 30% 이상 사회주택…건축미 갖추고 일반주택과 구별 어려워

[암스테르담=노명현 원정희 배민주 기자] "어떤 게 사회주택인가요? 어디에 가면 볼 수 있어요?"

"외관만 봐서는 사회주택과 일반주택을 구별하기는 힘들어요. 주택가 곳곳에 사회주택이 섞여 있다고 보면 됩니다. 특히 암스테르담은 열집 중 네집이 사회주택이니까 대부분 포함돼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사회주택(임대주택) 천국이라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여러 겹의 운하들 사이사이에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4~5층 수준의 낮은 건물들이어서 답답한 느낌보다는 정갈하면서도 지붕의 독특한 디자인이 운하와 어우러져 시선을 빼앗는다. 주택가 풍경도 다르지 않다. 최소 100년 이상된 건물들이 많아 고풍스러움을 더한다.

이런 주택가 풍경을 바라보니 '사회주택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돌이켜보면 첫 질문부터 잘못됐다. 사회주택을 일반주택과 구별하려고 한 것은 나도 모르게 임대주택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있었기 때문일 터.

실제 서울에 들어선 민영 아파트들은 고급스러운 외관과 화려한 조경으로 꾸며져 있다. 공공임대 혹은 공공분양 아파트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이러니 이곳의 아름다운 건물 곳곳에 사회주택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 놀라울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암스테르담에서는 사회주택을 따로 구별하는 게 불가능하다. 겉으로 보기에도 일반주택과 차이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일부 사회주택은 예술적 건축미를 뽐내기도 한다.

네덜란드 사회주택 역사를 볼 수 있는 '사회주택박물관' 역시 1911년~1920년에 120채의 사회주택과 우체국, 학교 등 다목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지어졌다. 독특한 외관을 뽐내는 이 건물은 현재도 83개의 주택에 거주자가 살고 있으며 일부는 박물관과 학교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에선 집값 떨어진다는 이유로 임대주택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고 차별적인 시선을 보내지만 네덜란드의 사회주택은 일반주택과 다르지 않고 다를 이유도 없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사회주택 박물관 및 사회주택 전경(사진: 노명현 기자)

◇ 사회주택, 넌 누구니

사회주택, 낯선 만큼 어렵다. 우리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사회주택을 공급해왔다는 유럽에서도 어떤 나라는 '사회주택(Social Housing)' 또 다른 나라에서는 '공공주택(Public Housing)'이라고 하는 등 명칭도 제각각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사회적 경제주체(혹은 기업)가 정부로부터 택지나 금융, 조세지원 등을 받아 주거에 어려움을 겪는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공급하기 위해 건설‧관리하는 집을 뜻한다. 비영리단체인 사회주택협회가 정부 지원을 받아 집을 짓거나 매입하고, 저소득‧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임대‧운영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SH(서울주택도시공사) 등 공기업이 하고 있는 역할을 비영리 민간단체(사회주택협회)에서 한다고 보면 된다.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사회주택이지만 네덜란드에선 주거복지의 한 축이다. OECD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네덜란드 사회주택 비중은 34.1%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2위인 오스트리아(26%)에 비해서도 8%포인트 가량 높다.

반면 한국은 사회주택 도입 초기단계다. 서울시와 전주시 등 일부 지자체가 관심을 갖고 사회주택을 보급하고 있다. 네덜란드처럼 대규모 사회주택협회가 생기기를 기대할 수준은 아니지만 예비 사회적기업이나 사회적 협동조합 등이 사회주택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대신에 네덜란드 사회주택협회 관계자들은 한국 LH와 SH 존재감과 역할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만한 규모의 자산(임대주택)을 보유한 회사는 없다는 것이다.

예룬 반 더 피어(Jeroen Van der Veer) 암스테르담 사회주택연맹 부대표는 "한국 사정에 맞게 사회주택 정책을 개발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국의 LH와 SH를 통해 상당수의 공공주택이 공급되고 있는데 이들과의 협력을 통해 사회주택 보급을 늘려나가는 것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120년 역사, 민간에서 싹튼 사회주택

사회주택 천국이 하루아침에 만들어 진 것은 아니다.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다져진 튼튼한 뿌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19세기말 산업화로 도시 인구가 급증하자 암스테르담에서도 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이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민간에서부터 시작됐다. 노동조합이나 종교단체 등이 주체가 돼 그들의 소속원들이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집을 제공한 것이 그 시작이다.

법적으로는 1901년 제정된 주택법(Housing Act)에 근거를 두고 있다. 민간사업자인 주택협회가 사회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1922년 네덜란드 사회주택협회는 1350개로 10여년 전보다 1000개 이상 늘었고, 자산도 10배 증가했다

1990년대 들어 사회주택협회에 큰 변곡점이 생긴다. 주택협회가 정부에 갚아야하는 대출금을 정부에서 받고 있던 보조금으로 탕감하는 이른바 부루터링(Brutering) 조치가 이뤄진 까닭이다.

부루터링 조치 이후 사회주택협회는 정부와의 복잡한 재정적 관계에서 벗어나 민간조직처럼 움직이며 사회주택을 공급하는 핵심 주체로 재탄생했다. 대신 정부로부터 받던 보조금이 사라지면서 일부 협회는 신규 공급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또 2005년 이후에는 EU가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는 주택시장에 자유시장 체제를 도입하도록하면서 사회주택 공급 대상이 기존 중산층에서 저소득층으로 한정되기도 했다.

보편적 복지에서 잔여적 복지 성격이 강해지기 시작한 셈이다. 이 때문에 네덜란드 내부에서는 점차 시장주의적 성격이 강해지는 주거복지에 대한 문제제기와 불만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사회주택 모습(사진: 노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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